여행도 하나의 습관이다. 사람은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훌쩍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익숙한 곳에서 멀어져 나를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느끼는 홀가분함,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그렇게 훌훌 털고 떠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해 본 사람이 또다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하며 여행을 꿈꾼다.
처음 튀르키예 여행 계획을 세웠을 때는 오랜만에 비행 10시간 이상 하는 나라를 가는 거라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비행기로 10시간 이상 날아가야 하는 나라라니. 얼마나 먼지 실감도 제대로 되지 않지 않나?
하지만 딱 그만큼 기대됐던 것도 사실이다. 가깝고 익숙한 나라를 벗어나 정말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거 같은 곳으로 떠나는 그 느낌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어쩌면 약간은 두렵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한 그 느낌. 하지만 그만큼 설레는 이중적인 마음이랄까?
지방도시는 투어를 이용해 다녔는데 크게 에페수소, 쿠다사이, 파묵칼레, 안탈리아, 카파도키아, 소금호수 순으로 이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꿈을 꿨던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아득하게 먼 과거의 일인 거 같다. 불과 6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실감이 되지 않는다.
이 여행을 하면서 사진과 같은 그림 같은 순간도 있었다. 저 커플에게는 저 순간이 어떻게 기억됐을까? 비록 나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커플이지만 이 커플이 저 순간만큼은 오래오래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했음 좋겠다. 인생에 있어서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의 관계를 맺으면서 다 좋고 행복한 기억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한 번의 어긋난 관계로 인해 좋았던 추억까지 모두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좋았던 순간은 좋았던 기억으로 남기는 게 나에게 있어서도 좋은 추억 하나를 더 남겨 둘 수 있는 거 아닐까?
헤어졌다고 함께했던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있어 그 시간을 함께해 준 인연이 그 시간 안에 존재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좀 더 웃으면서 기억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까?
흔히 여행을 함께 가 보면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말이 있다. 너무 잘 맞거나, 혹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최악을 경험하거나. 여행은 어떤 면에서는 정말 고된 일이다. 특히 장기,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온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 떠나 머나먼 타국에 가서 음식도 안 맞고, 기후도 안 맞고 기타 등등 새롭게 적응해 가야 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생긴다면 결코 평소 같은 성격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인간은 감춰왔던 본성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 본성을 겪고도 큰 트러블이 없다면 영혼의 단짝임인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더더욱 잘해야 한다. 여행은 단순히 즐겁기만 하지 않다. 막상 실제로 여행을 해 보면 즐거운 시간 사이사이에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난 그 순간이 나를 좀 더 알고 상대방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우리가 여행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 안에 역경, 고난 같은 건 많지 않다. 하지만 모든 경험은 실전이다. 실전은 현실이고 현실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난 여행을 단순 돈 쓰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단순한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흔히 여행을 간다고 하면 부럽다, 좋겠다 등에 대한 피드백이 오곤 한다. 물론 큰돈 쓰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 가는 거니 당연히 좋고 즐거움을 기대하며 갈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 오고 여행은 그 순간을 가장 자주 많이 맞이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순간을 얼마나 유연하게 잘 대처하는지에 따라 내 인생 경험이 오르고 시간이 흘러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즐거운 에피소드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행 에피소드가 참 많은 편이다. 10년 전 이야기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도 있고, 아직까지도 말할 때마다 깔깔거리며 웃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에는 몹시 당황스럽고 개탄스러웠던 이야기들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인생에 그런 순간도 있었구나, 그땐 어떻게 그렇게 했지?라는 나에 대한 존경심과 근자감이 갑자기 올라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여행을 한다는 건 적당한 단순함과 철저한 계획이 언제든지 깨질 수도 있구나 하는 강인한 마인드를 장착해 나가는 것이다.
튀르키예로 명칭이 바뀐 터키의 지방 도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도시는 안탈리아와 카파도키아였다. 안탈리아는 지중해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휴양지 같은 곳이었다면 카파도키아는 사막 같은 느낌의 약간 건조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각각의 도시의 매력들이 다 다른만큼 여유가 된다면 꼭 지방도시까지 다 돌아보고 오면 좋을 것 같다. 이스탄불은 전형적인 서울과 같은 느낌이라서 관광지도 많고 먹을 곳도 많았지만 딱 기대했던 풍경에서 벗어나지 않아 오히려 막 새롭다는 느낌보다는 예상 대로다, 혹은 트래픽이 엄청 나군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거 같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곳을 발견한다거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걸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대했던 곳이 딱 기대만큼 좋은 경우도 좋지만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재미와 신선한 충격. 흥미로움을 유발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느낌, 생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안탈리아는 기후가 약간 후덥지근하고 습도가 높은 편인데 아무래도 지중해 기후라서 그렇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여행하는 기분이었던 거 같다. 나는 여행할 때 한국과 기후 차이가 나는 곳을 가면 더더욱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한국은 겨울인데 여름인 나라를 여행한다던지, 한국은 여름인데 선선한 나라를 여행한다던지? 계절만큼 확 차이 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도 같다.
내가 몇 시간 전에는 덥다고 반팔을 입었는데 여기서는 패딩을 입어야 하네? 와 진짜 내가 다른 곳에 오긴 왔구나 뭐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졌던 거 같다. 특히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추울 때 따뜻한 나라로 여행 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여행만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계절의 나라만 찾아다니면 얼마나 꿈같을까? 같은 생각도 해 본다. 누구나 꿈꾸는 여행에 대한 로망 하나쯤은 있지 않나? 그게 나는 계절감인 거 같다.
그리고 여행하면 빠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사진이 아닐까 싶다. 여행과 사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내가 처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중2병이라고도 불리는 질풍노도의 그 시절에 친구 빼면 시체인 바로 그 시절, 1년 뒤면 이 친구들과 모두 헤어져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그 당시 디지털카메라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했던 거 같다. 덕분에 우리 집 앨범은 내 학창 시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가끔 꺼내보며 이런 사진은 이제 불태워야 하지 않을까? 싶은 사진도 추억 삼아 넘겨 보곤 한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발달로 굳이 무거운 카메라를 따로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는 만큼 사진에 좀 더 다가가기 쉽고 웬만한 전문가는 명함도 못 내밀만큼 전문적으로 찍는 취미 사진러가 많아진 요즘이다. 사실 나도 취미로 하는 부분인 만큼 사진은 아직도 나에게 있어 첫사랑 같은 거다. 학교 다닐 때는 차마 사진학과라는 도전적인 곳에 갈 엄두도 생각도 못했고, 나이가 든 지금은 취미를 넘어 프로의 세계로 갈 만큼의 용기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진을 아직까지도 좋아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행 가면 아직도 영상보다는 사진을 많이 담아내곤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너도 영상 쪽으로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듣지만 영상과 사진의 감성은 다른 것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사진 찍을 때 무조건 인물 사진 위주였다. 나 말고도 친구들, 우리를 찍는 거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풍경보다는 인물 사진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좀 바뀌었다. 혼자 여행하는 취미를 갖고 난 후부터는 인물보다는 풍경 사진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 간 것도 있고, 요즘 같이 하루가 다른 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다 보니 그 풍경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어 버리곤 해 그 시절, 그 시간을 고스란히 남겨 놓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인물을 찍을 때는 그 사람의 흐르는 시간을 볼 수 있어 재밌고 풍경을 찍을 때는 계절의 변화, 자연의 변화가 주는 색다름이 재밌는 것 같다.
하지만 SNS가 발달한 요즘은 여행 자체의 의미보다 사진의 의미가 더 커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정말 내가 원하고 가고 싶었던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게 아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 찍으러 여행 가는 느낌이랄까?
무엇이든 본인이 만족하고 행복하면 괜찮겠지만 그 중심이 타인이 아닌 본인에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언가를 관리하고 꾸며내는 건 직업인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행복은 본인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느꼈으면 좋겠다. 보여주기 위해서만 삶을 산다는 건 나에게 있어 조금 가혹한 일 아닐까?
나는 꽤 자주 혼자 여행을 떠나는데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함께라면 보이지 않았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종종 있다. 둘이라면 용기 있게 도전해 봤을 곳이라든지, 식당 가서 맘껏 음식을 주문한다던지? 혼자 있어 봐야 그런 순간들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또는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순한 나의 감상, 생각? 같은 것들도 혼자 해봐야 느낄 수 있다.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첫 번째 위험하지 않아? 두 번째 심심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다. 우선 답변을 해보자면 위험한 곳은 안 가면 되고, 심심함도 가끔은 느껴 볼만 하지 않은가? 물론 나는 꽤나 독립적인 성향으로 심심함 보다는 자유로움을 더 많이 느끼지만 여럿이 가서 빡치고 관계에 금 가는 것보단 약간의 심심함 정도는 견뎌 볼만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심심함이 결코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바쁘고 고달픈 인생에 심심함은 달콤한 휴식일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 있는 일상 속에서 심심함이라니! 그런 꿈같은 소리라니!!라고 생각해 보면 오히려 좋을지도?
사실 여행은 그렇게 거창하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일상의 특별함을 더해 생각해 본다면 동네 좀 좋은 카페 가는 것도, 평소 가고 싶었던 맛집에 가는 것도 다 여행이지 않을까? 꼭 여행이 멀리 가야지만 여행인가? 집 밖을 나가서 내가 평소 가고 싶었던 곳을 가는 것도 크게 보면 여행이지 않을까?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생각하는지이다. 아무리 멀리 가고 좋은 데를 가도 내 마인드가 쓰레기고 생각이 비관적이면 아무 쓸모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때 튀르키예를 같이 간 나의 지인은 이 여행을 어떻게 기억할지 가끔 궁금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난한 여행이었는데 지인은 음식이 안 맞아 열흘 동안 거의 아무것도 못 먹고 엎친데 덮친 겹으로 배탈까지 나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었다. 그래도 같이 간 나를 생각해 재밌었다고 이야기해 주긴 하지만 절대 두 번은 안 갈거라 덧 붙이는 말에 이 여행의 진짜 진심은 무엇일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여행 가서 배탈이 나거나 음식이 안 맞았던 적이 없어 매우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사실 여행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픈 거랑 음식 입에 안 맞는 거라고 한다. 나는 습관성 편두통으로 머리가 아픈 적은 더러 있었지만 상시약을 가지고 다녀 약 먹으면 또 바로 괜찮아져 정말 크게 아프거나 다쳐본 적도 없고 음식이 안 맞아 적도 아직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가 여행에 대한 환상이 가득한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나름 많이 다닌다고 자부하지만 항상 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도시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
하지만 정말 큰 이슈가 없는 한 나는 앞으로도 쭈욱 여행을 꿈꾸며 여행에 대한 로망을 품고 살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떨지 궁금하다. 나처럼 여행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을지 현실에 고달픔에 그런 건 사치라 생각하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