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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Oct 15. 2020

퓰리처상 사진전

사진에 이야기를 담다

최근 나의 최대 관심사는 사진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사진을 찍는게 싫었는데 중3때를 기점으로 사진에 대한 생각이 완전 달라졌던 것 같다. 탈도 많고 말도 많던 중학교 생활이 끝날 무렵 어쩌면 지금 친구들과 영원히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중3때 항상 디카를 같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 놓는다는 생각으로 찍었던 것 같다. 그때 그 버릇이 현재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사진을 좀 더 전문적으로 좀 더 예쁘게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이런 나의 관심에 맞게 퓰리처상 사진전을 한다고 해서 전시회를 보러 갔었다. 보고나서 퓰리처상의 의마와 사진의 대한 생각을 좀 달리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의 나는 사진이란 잘 찍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색감이 예쁘고, 피사체가 아름답고 구도가 중요하고,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퓰리처상의 수상된 사진들은 모두 그런 사진은 아니었다. 물론 이 것외에 더 수 많은 사진들이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초점이 흐리거나 색감이 그다지 예쁘지도 않았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들은 모두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사진의 이야기, 그 시대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상한 사진들을 보며 사진에 대해서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됐던 계기였다.


지금도 가끔 여행을 가거나 하면 하는 소리가 남는건 사진밖에 없다라는 소리를 자주 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나도 나의 사진에 나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건데 그걸 너무 외관, 잘 나온거에만 의미를 두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었다. 사진의 순간이란건 초점이 잘 맞고 화질이 좋은 것 보다 더 의미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앞서 말한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처절함, 애절함,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이 사진들 속에 녹아 있었다. 40년대 부터 수상한 사진들이 전시됐는데 사진을 보면 그 시대의 쟁점, 이슈, 시대적 배경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한국전쟁의 모습을 찍어 수상한 사진인 다리에 매달린 피난민들(맥스데스포)을 보며 625전쟁의 처절함, 살고자하는 간절함, 그 모든게 사진 한장에 담겨 있는 기분을 느꼈다. 한국 전쟁 뿐만 아니라 세계 대전, 베트남전쟁 등의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 수 없었던 그들의 고충, 괴로움, 한스러움, 광기. 사람들의 이면을 비춰주는 느낌이었다. 이 시대를 수도 없이 난도질했던 전쟁의 모습들. 지금의 평화를 가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을까? 물론 사회적 이슈가 전쟁 뿐만은 아니었다. 인종차별, 스캔들, 내전까지.


특히 내전이나 인종차별을 보면서 정의란 어떤것인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승리자에 의해 역사가 써내려간다지만 이 사진들 속에 이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승리했으니 정의가 되는 걸까, 정의가 있어 승리했던 걸까. 하지만 죽음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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