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자족 그리고 인생 제2막
감사할 일이 많은 요즘이다. 결혼을 앞두고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관례 때문이든 관계 때문이든, 축하를 받는 건 기분이 좋고 감사한 일이다.
직접 오지 못해도 전화를 주시고, 잠깐이라도 보러 오겠다고 마음을 써주신다. 얼굴을 본 지 15년도 더 된 고향 친구가 아무 말 없이 계좌로 축의금을 보내온다. 괜스레 "내가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는 게 어색해서 그런 게 아닐까.
이 모든 축하는 나의 능력 때문이 아니다. 온전히 내가 쌓아온 덕 때문도 아니다. 나의 노력과 별개로 주어진 인연들. 그들로부터 받은 많은 호의들. 생전부터 부모님이 쌓아온 신뢰. 그리고 삶 속에서 우연히 만난 괜찮은 사람과, 기가 막힌 타이밍까지. 이는 일종의 '운'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어느 하나 감사하지 않을 게 없다.
남들과 같다.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뿐, 하지만 이 모든 건 행운의 축복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내가 뿌린 씨의 결실이 아니다. 어느 하나 내 힘으로 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더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 떠올려 봐도 그렇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제대로된 직장도 없고 소득도 없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조건대로라면 결혼이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무료히 일상을 견디던 어느 날, 구청으로부터 서류 한 장을 받았다. 소득이 낮아 차상위계층으로 등록됐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추진하는 제도를 우연히 보고 지원했다. 청년에게 전월세 보증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였다. 그 덕에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반지하였지만 홀로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내겐 과분한 보금자리였다. 그 제도를 연장해 지금의 혼인집도 구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청년취업지원제도를 통해 지원금을 받으며 취업도 준비할 수 있었다. 국가에 감사할 일이다. 누군가는 헬조선이라 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잘만 찾아보면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은 분명히 있다. 감사가 또 나올 대목이다.
혼인집을 구하기 위해 방을 옮겨야 할 때는 보증금이 부족했다. 수천만 원 대출을 내야 하나 고민도 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신기하게도 그 타이밍에 가족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넉넉한 형편이라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뿐이었다.
양가 부모님께서도 풍족하진 않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라고 해주신다. 그 외의 가족들도 모두 축하를 전해주신다. 이 모든 게 어떻게 나의 힘으로 됐을 일인가. '운'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세상에 태어났다면, 자신을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복을 받았다는 것. 'Everything is OK'. 유튜브에 나온 한 외국인 청년의 말처럼, 아직 건강하고, 일할 곳이 있고, 잠잘 곳이 있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 모든 게 만족스럽고 감사하다는 그 말이 참 좋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넘치도록 풍족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했고 오히려 약간은 부족했다. 하지만 그래서, 그래서 더 감사할 수 있었다. 우연히 대한민국의 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고, 잘 자랐다.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많이 축약된 인생 1막이지만, 어느 하나 감사하지 않을 일은 없었다.
물론 세상에는 내가 누려온 이 평범함마저 누리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의 타고난 환경은 다를 테니까. 그저 내가 목격한 건, 힘들고 처절한 환경에서도 웃는 이들의 미소는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다. 웃어야 한다고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다. 누구도 그렇게 말할 자격은 없다. 대신 살아줄 수 없다면 말이다. 평범하게 사랑받고 자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안다면.
누군가는 부자나 금수저라고 하는 이들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다. 저들은 부모 잘 만나서 그렇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그건 부자들이 타고난 덕이다. 분명 그런 덕을 타고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진 자들과 달리 평범한 이들만이 가진 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주변의 축하와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덕이다.
하나부터 끝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감사할 일은 하나도 없지만, 모든 일이 어떻게 그렇게 가능했는지를 생각하면, 삶에 감사하지 않을 일은 하나도 없다. 그 마음 자체가 살아갈 핌이 된다. 그게 감사의 가치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결코 우리의 노력만으론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