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르니에, 라파예트 백화점 그리고 에펠탑
"처음 유학갈 나라를 선택하기 전에 느낌이 궁금해 세 나라(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를 각각 여행했었는데요. 먼저 파리(프랑스)는 처음 갔을 때 입이 딱 벌어졌어요. 여긴 건물이 화려하고 사람들도 멋지고, 건물도 감성적이고... 와 여기는 진짜 거대한 명품 백화점 같았어요."
이탈리아 돌로미티(거대한 백운암 산맥) 투어에서 만난 가이드분은 파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파리에 다녀온 지금, 난 그 말에 공감한다. 걷는 내내 도시의 분위기에 매료돼 어벙벙한 느낌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느낌은 명품 백화점보다는 '거대한 박물관' 같았다. 화려함보다는 우아함이. 웅장함보다는 정교함이 가득했다.
거리 곳곳에 놓인 조각물들은 마치 오랜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아주 활기찬 인사보다는 무뚝뚝한 듯 뭔가 사연을 품고 살아온 예술가 같이 말이다.
첫 입국날 우리를 호텔로 픽업해 준 아저씨는 우리가 머무는 3일 내내 비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원래 겨울의 파리는 우기(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2달에 5번 이상 보면 많이 보는 거라고. 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가 머문 3일 동안 파리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분명 '신의 축복'이었다.
이 도시의 역사를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만약 깊이 알게 된다면 왠지 모르게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될 것만 기분이 들었다. 그 비밀을 알고도 이 도시에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이 나라는 그 유명한 나폴레옹의 도시가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내 머릿속에 듬성듬성 남아 있는 몇몇 인물들을 떠올렸다. 나폴레옹, 샤를 보들레르(시인), 랭보(시인), 클로드 모네(화가), 마르크 샤갈(화가)...
웅장함 그 속에 담긴 예술에 대한 집념, 오페라 가르니에
파리의 첫 아침,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파리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는 '오페라 가르니에'였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돔과 정교한 벽화와 조각상들, 우아한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다. 단연, 파리의 예술과 문화를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https://maps.app.goo.gl/zEVQPT4cARB5BuYy6
오전 10시경 도착한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는 줄을 선 몇몇 관광객들이 있었다. 티켓팅 후 보안 검색을 마치고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돔 형식의 천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 공간을 지나자 웅장한 계단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분위기가 사람을 압도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샤를 가르니에는 건물에 신 바로크 양식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곳곳에 세워진 흉상 조각상들이 눈에 띄었다.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는 층층이 다양한 좌석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신분과 부에 따라 좌석의 위치가 결정됐다고 한다. 오늘날의 VIP석과 일반석을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건물 중심부에 위치한 메인 극장의 천장에는 아주 다채로운 색상의 천장화가 그려져 있다. 바로 화가 마르크 샤갈의 작품 '꿈의 꽃다발'이다. 이 그림은 오페라 가르니에에 있는 작품 중 가장 거대하다. 꿈을 한 다발로 안겨주듯 작품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샤갈은 무슨 생각을 하며 저 벽화를 다 그렸을까 생각하다가, 질문이 잘못되었거니 여겼다.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같은 음악가들의 작품을 테마로 했다고 하는데, 그 선율과 감정선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뇌했을까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며칠 후 간 '바티칸 시국'에서 미켈란젤로가 그런 '천지창조(실제 이름은 천지창조가 아니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다)'를 보고서도 생각했다. 위대한 천재들은 수년동안 거대한 천장화를 그리며 무엇을 표현했을까. 작품에 몰입하는 한 순간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 몰입의 순간을 나도 살면서 한 번쯤 맛볼 수 있을까 하고.
나에게도 창작 행위에 몰입하며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 '시인의 거리'라는 기획 전시를 열며 며칠 밤을 새워 가며 작품을 만들고 배치했던 때가 그랬다. 뭘 위해 그렇게 표현하고 만들었을까.
'지금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은 못 하겠다. 다만 언젠가 다시 할 거라고만 말하고 싶다.
<참고 : 시인의 거리 5 '언어의 숲'>
https://blog.naver.com/rhkrwndgml
유럽 음식 얘기를 좀 해보려 한다. 여행 중에 가장 큰 행복 중 하나가 먹는 재미다. 여느 관광객처럼 우리도 끼니에 맞춰 곳곳의 맛집을 찾아다녔다. 대다수는 만족스러웠지만 의도하지 않게 호구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건 이탈리아에서의 얘기다) 파리의 음식들은 대부분 먹을 만 하지만 느끼한 건 사실이다. 2일에 한번 꼴로 매콤한 걸 찾았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한인 마트에서 컵라면을 사고, 중식당에 가서 마라탕을 흡입하기도 했다.
단,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메뉴들이 있다. 바게트빵, 프랑 같은 디저트류, 핫초코, 뱅쇼는 진짜다. 총 3곳의 빵집에서 바게트를 먹었다. 가게마다 식감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겉바촉촉의 정석이었다.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그들이 왜 바게트에 자부심을 가지는지 알 것 같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마르게리따 피자와 젤라토, 그리고 카푸치노의 향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라파예트 백화점 근처, 레스토랑의 종업원들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한 손에는 쟁반을 들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오가며 주문을 받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나이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마냥 어려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느낀 건, 전문성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직업은 그저 스쳐가는 아르바이트에 불과할까. 아니면 평생의 직업, 혹은 즐기며 할 수 있는 하나의 일일까. 옆 테이블에서는 한 팀이 와인 한 병과 각자의 피자를 시켜 먹고 있었다. 1인 1 피자가 룰이었다. 와인을 물처럼 식전주로 마시는 문화도. 그들의 언어처럼 음식을 시키고 다루는 모습에서도 여유와 자유, 다채로움이 엿보였다.
*유럽에서 음식점을 방문할 때는 구글의 별점을 꼭 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3점 이하인 곳들은 대체로 만족도가 낮을 가능성이 높다. 평점만 믿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간 곳들이 대체적으로 평점과 일치했다. 역시 구글의 데이터 수집력은 대단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기나 스테이크류를 시킬 때는 익힘 정도를 꼭 제대로 얘기해줘야 한다. 생각과 다르게 완전히 날 것(?)이 나올 수도 있다.
파리는 전 세계 명품의 본거지다. 파리에서 가장 큰 백화점 중 하나인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명품 매장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있다. 명품을 잘 모르기에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파리에 온 만큼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그녀의 말로는 요즘에는 '셀린느'라는 브랜드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뜬다고 한다.
"음, 그럼 하나쯤 사가야지." 하고 폼을 잡으며 매장으로 향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됐냐고? 아무래도 비밀로 남겨두는 게 좋겠다. 파리를 추억과 싶은 마음에, 바케트빵 모양의 자석과 에펠탑이 새겨진 엽서, 그리고 센강이 그려진 마그넷을 샀다. 표현의 디테일이 살아있어 좋았다.
꼭 명품이 아니라도 라파예트 백화점은 한 번쯤 둘러볼 만하다. 단순히 매장 외에도 화려한 장식과 조형물들, 그리고 파리의 여러 문화를 담은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모두 모여 있다. 기념품을 사거나 근사한 아이템을 사기에도 좋다. 그리고 파리 사람들의 쇼핑 문화를 살펴보기에도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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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그곳은, 바로 '에펠탑'이었다. 에펠탑을 주제로 한 '에펠'이라는 영화를 이미 한국에서 보고 온 터라 역사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실체를 보진 못했다 보니 기대가 더 컸다. 에펠을 만나러 가는 길, 파리의 지하철을 탔다. 처음 마주한 파리의 지하철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영화 '에펠' 예고편
파리의 지하철은 한국의 지하철보다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했다. 서울로 치면 2000년대 초반의 지하철의 느낌이라고 하면 비슷하겠다. 일단 스크린도어가 많지 않고 내부 인테리어도 오래전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개미굴처럼 요목조목 길이 나 있다. 센티하고 옛 양식을 보존하는 걸 좋아하는 파리의 분위기에는 그 지하철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서울보다 면적이 작아서 그런지, 역과 역 사이의 간격이 그렇게 길지는 않다. 1~2분을 넘기지 않는다.
지하철은 파리 사람들에게 일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여행객인 내게 파리의 지하철은 모든 게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가 한국이 아닌 여기 파리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뭐 하면서 살고 있었을까?"
"그러게, 왠지 당신은 더 자유롭게 살고 있었을 것 같아. 시 쓰면서 (웃음)"
더 자유롭게? 물론 '더 자유롭게'라는 말이 '더 행복하다'는 걸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는 말. 혼자 상상해 본다면 아마 좀 더 가볍고, 좀 더 자유로우며, 좀 더 예술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건 나의 상상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떠올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게 어디든 나는 그런 삶을 꿈꾸고 있을 테니.
에펠탑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 있었다.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 그중에 가장 당기는 것은 역시 뱅쇼였다. 뱅쇼는 '따뜻한 악마'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수록 따뜻하게 취기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날씨가 생각보다 추웠다. 거대한 에펠탑의 미를 감상하다가도 싸늘한 칼바람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에펠탑은 정각 때마다 가만히 품고 있던 불빛을 깜빡였다. 그때면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펠탑 역시 눈으로만 온전히 담을 수 있다.
"어쩜 이렇게 도시와 잘 어울리는 탑을 세울 수 있었을까"
*에펠탑은 1층과 2층 그리고 옥상층으로 구분돼 있다. 1~2층은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다. 입장권을 구매할 때 매표소에서 어디까지 걸어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잘 몰라서 2층까지 걸어 올라간 후(약 3~40분 소요)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층으로 올라갔지만, 날씨가 덥거나 추울 때는 1층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를 추천한다. 아니면 아이스크림이 되거나 눈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https://maps.app.goo.gl/HrpWgRjCYaaySoGU9
"에펠탑이 파리의 마스코트라면 내 삶의 마스코트는 뭘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사연을 몰라도 에펠탑을 보기 위해 이렇게까지 파리에 찾아오는데, 내게도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나만의 마스코트가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 어릴 때부터 나만의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것도, 때론 특이하게 옷을 입는 것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도 모두 나만의 무언가를 찾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이 안에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아직까지도 나만의 그 무언가를 찾지는 못했다. 글을 쓴 지도 15년이 다 되어 간다. 빛을 바라지 못한 걸 보면 재능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가 존재할까 싶기도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걸 찾아 나서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는 것. 그리고 글로 표현할 때 정말 행복하다는 것.
에펠탑과 만나고 돌아오니 우린 녹초가 되어 있었다. 걸음수는 약 2만 5000보. 하지만 뿌듯했다. 걸으며 여행하는 여행의 묘미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유명한 곳 혹은 그렇지 않은 곳들을 보고 듣고 걸으며, 가슴에 많은 추억을 담는 일. 함께한 시간들은 다시 살아갈 일상을 견뎌낼 힘이 될 테니.
*여행을 하다 보니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 내게 서울은 삶의 터전이 되었지만, 어릴 적에는 동경의 도시였다. 외가에 방문하기 위해 한 번씩 놀러 오면 그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모, 삼촌과 함께 갔던 곳들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거대한 빌딩과 굽이친 도로들, 그리고 멋진 한강과 유람선까지. 촌놈에게 서울은 그런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료한 일상 혹은 떠나고 싶은 빌딩 숲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도시가 따분한 빌딩숲으로 변해버렸다면, 무엇 때문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건 없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