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신혼기행3] 예술의 킹덤, 루브르 속으로

수천 년의 역사, 루브르가 기억한 것들

by 글로

회색의 하늘이 얼굴을 내민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7시경 거리로 나선 우리는 말로만 들었던 예술의 성지,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파리의 하늘은 진청색 빛을 띠는 구름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구름은 루브르 근처의 건물 지붕과 묘하게 조화를 이뤘고 옅은 아이보리색 외벽과도 잘 어울렸다.


"파리지앵들은 매일 아침 이 멋진 풍경을 보며 출근을 하겠지."


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이 모든 풍경에 매료되기는커녕, 매우 따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마음의 소리)


루브르 투어를 맡은 가이드분은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분이었다. 똑 부러지는 목소리에 "위대한 작품들의 설명을 잘 들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마음이 놓였다. 우리 부부를 포함해 총 4팀이 함께 입장했다. 이곳에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입구부터 신경이 곤두섰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와 입구와 내부에서
루브르의 피라미드


수천 년의 역사, 루브르가 기억한 것들


루브르에는 기원전부터 1900년대까지 만들어진 약 60만여 개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인류 역사를 다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 많은 작품을 단 몇 시간 투어만에 다 보는 건 불가능하다. 가이드는 이 점을 강조했다. 돔 모양의 입구 뒤에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자리하고 있다. 피라미드는 준공 당시에는 많은 반대를 받았지만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루브르 투어에서 가장 먼저 만났던 작품.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 만들어진 한 조각상. 민머리에 기묘한 복장과 표정을 하고 있다. 신에게 무언가를 빌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고대에도 인류에게는 신앙(믿음)이 있었고, 그 모습은 지금의 종교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그때에도 부를 가진 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서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의 인류는 신에게 무엇을 빌었을까?


루브르에서도 그렇지만, 유럽의 역사에서 예술과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신앙.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낸 예술. 어떻게 보면 둘의 상관성은 너무도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루브르 곳곳에는 정교한 조각상들이 놓여있다. 서울에서는 거대한 조각물들을 쉽게 볼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실컷 볼 수 있다. 그 당시 오랜 시간 빚어낸 조각은 말 그대로 조각가들의 노고의 산물이다. 신과 인간, 땅과 하늘 저편의 세계,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미를 표현하기 위해 정말 많은 조각을 빚었다. 지금 만약 내게 누군가 조각을 해보라 한다면 수억 원을 줘도 선뜻 도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인간의 육체와 존재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정교하게 표현해 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개인적으로는 조각상들의 엉덩이와 허벅지의 미세한 근육(?)에 눈이 많이 갔다.


루브르 박물관 내에 전시된 조각상들
루브르에서 만난 유명하지 않은 조각상들


몇몇 조각상이 서 있는 방을 지나자 금빛 장식과 붉은 천들로 치장한 화려한 방들이 나타났다. 이 공간들은 모두 과거 프랑스의 왕들과 귀족들이 누렸던 공간들이라고 한다. 현대의 일반인들이 사는 방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화려함이었다. 부럽거나 경외롭기 보다는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장식이 과해서 숨이 막힌다고 해야 할까? 그들에게 이 공간은 정말 쉬는 공간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자신의 부와 권력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을까?


"우리도 이런 곳에서 살면 어때?"

"그럴까? 근데, 지금 사는 집도 좋아. 같이 있으면."


여행을 하다 보면, 그녀와 함께 한 많은 시간들이 하나의 앨범처럼 기억 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이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앨범을 꺼내 더 자세히 기록해 두게 된다. 왜 그 시간들은 하나 같이 더 잘 기억 속에 남는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는 어제 먹었던 음식조차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데 말이다.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보고 있었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공허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이드분이 말했다. "실제로 저 당시 루이 14세의 모습이 저랬을까요?" 여러 설이 있지만 당시 그의 나이는 60대가 넘었다고 한다. 사진과는 다르게 지금보다는 훨씬 노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결국 절대 권력을 상징했던 왕의 모습을 초라하게 그릴 수는 없었기에 더 젊게 표현하고, 귄위를 상징하는 여러 물품을 배치했다는 것. 젊음을 영원히 가지고 싶은 욕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었나 보다.


*루이 14세(1638~1715)는 프랑스를 72년간 통치한 절대왕정의 상징적 군주로, 베르사유 궁전을 정치의 중심으로 삼아 귀족 권력을 길들이고 왕권을 극대화했다.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하며 예술·건축·학문을 적극 후원해 프랑스 문화를 유럽의 표준으로 만들었고, 대외적으로는 잦은 전쟁과 팽창 정책을 통해 프랑스의 위상을 높였으나, 말년에는 재정 악화와 민생 피로를 남겼다고 한다.


루브르 내에 있는 프랑스 황제와 귀족들의 화려했던 거처
'루이 14세의 초상'(이아생트 리고)



화려한 방들을 지나자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지하 창고 같은 이 공간은 과거 전쟁 때 파리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쓰였다고 한다. 12세기 필리프 2세가 세운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거대한 벽돌로 쌓은 이 공간에는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 수로로 활용하기도 하고, 통로로 쓰이기도 했다.


수도 없이 쌓인 거대한 벽돌들은 마치 성벽 같이 웅장했다. 벽돌 곳곳에는 숫자나 기호 같은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가이드는 이게 당시 이 돌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표시하기 위해 남긴 거라고 했다. 당시 이곳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돌을 옮겼을까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생존과 혈투를 위한 공간이 지금은 문화 시설이 되어 있다니, 루브르는 정말 오랜 역사를 품고 있구나 싶었다.


루브르 속 요새 (현재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요새 공간을 지나자 어디서 많이 본듯한 형상이 보였다. 바로 이집트의 '스핑크스'였다. 스핑크스는 다른 어떤 동상도 없이 떡하니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릴 적 세계사 수업과 영화 '미라'에서나 봤던 요물이었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거대했다. 당시 스핑크스는 왕이나 부유한 자들의 얼굴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왜 이런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인간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결합해 권력과 신성을 동시에 나타내고자 했다고 한다. 앞서 봤던 루이 14세처럼, 자신을 더 위대하고 신적인 존재로 만들고 싶었던 욕망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도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고 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텐데 그게 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스핑크스의 코가 깨져있다. 이는 전쟁에서 그가 겪은 후유증이라고 한다. 코는 숨(목숨)을 상징하는데 상대가 왕의 귄위를 상징하는 스핑크스의 코를 깨부수면 그가 죽는다고 믿었다는 설이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 그냥 동상을 옮기다가 어디 모서리에 세게 부딪혀 깨진 걸지도.





미란 무엇인가, 밀로의 비너스



말로만 듣었던 밀로의 비너스. 그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뭘 저렇게 열심히 감상하고 있는 걸까? 이 작품은 작자미상으로, 그리스의 밀로스 섬의 어떤 농장에서 우연히 발견됐다고 한다. 이 동상을 만든 사람은 훗날 자신이 조각한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줄 알았을까?


밀로의 비너스는 가장 인간의 육체의 가장 이상적인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그를 보고 있으면 묘한 느낌이 든다. 팔이 없지만 균형감이 느껴진다. 요즘에 추구하는 S라인이나 바디빌더들의 글래머러스한 몸과는 달라 보였다. 어떠한 신체 부위도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스럽다. 아슬하게 흘러내린 옷도 편안해 보인다.


가이드분이 보는 각도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하기에, "'미'는 어디서 나올까"를 떠올리며 카메라를 들고 한 바퀴 돌았다. 인간의 육체, 그리고 아름다움. 우리는 매일 보지만 왜 이렇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나 '승리의 여신, 니케'


승리의 여신 '니케'과 니케의 손 조각


루브르에서 만났던 동상 중에 가장 경이로웠던 작품인 '승리의 여신, 니케'. 니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승리와 비상을 상징한다. 우리가 잘 아는 스포츠웨어 브랜드 '나이키(Nike)'가 바로 니케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니케는 하늘에서 착지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른 동상들과 다르게 양쪽으로 펼친 두 날개에서 묘한 역동성이 느껴졌다. 더 놀라운 건 물에 젖은 치마 속 무릎과 허벅지 근육의 모양을 아주 미세하게 살렸다는 점이다. 당시의 조각가들이 인간의 인체를 얼마나 연구하고 작품을 만들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실 니케 동상은 발견 당시 많이 훼손돼 있어 현재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복구 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됐다. 사람들은 하나 같이 위로 올려다보며 니케를 감상했다. 승리를 염원한다면, 나는 지금 무엇과 싸워 이겨야 할까. 요즘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욕망과 자주 싸우고 있는 것 같다.





회화로 가득한 루브르의 전시 공간에는 기독교 중에서도 구교인 가톨릭과 관련된 성화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된다. 성경(바이블)에 나오는 같은 장면을 여러 작가가 리메이크해서 그린 작품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 수많은 천사들과 새끼양까지. 계속해서 등장한다. 당시 가톨릭이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았는지를 알 수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경, 사도행전 1:8)


그런 면에서 보면 종교는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중에 가장 기묘한 영역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더 번영했다는 점을 봤을 때, 부와 권력만으로 짓누를 수 없는 무언가가 인간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와 가톨릭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유럽 여행의 한 한축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루브르 속의 고독한 그녀. 모니리자


루브르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던 그곳.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모나리자가 있었다. 눈썹이 없지만 아름답고 묘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는 방탄유리 속에 꽁꽁 싸매여 있었다. 약 100년 전 루브르에서 일하던 한 이탈리아 출신 직원이 몰래 모나리자를 훔쳐가 분실됐고, 이후 돌아온 후 더 유명해졌다. 다 빈치는 모나리자에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진한 선이 아닌 덩어리와 명암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어떤 각도에서 바라봐도 마치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 물론 현장에서는 너무 많은 인파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와 눈을 맞추지 못해 아쉬웠다. 다 빈치는 왜 그녀를 그렸을까. 피렌체에 사는 한 상인의 의뢰를 받고 그의 아내를 그렸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건 알 수 없었다.


모나리자는 다 빈치가 남긴 작품이지만 사실 난 그보다 다 빈치의 생각과 사상이 더 궁금했다. 당대의 천재로 불렸던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에게 예술이란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시대를 넘어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그가 남긴 말이라도 붙잡아 본다. 물론 이조차 정말 그가 했던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정보의 호수 속에서 찾아온 하나의 조각일 뿐이니, 그래도 마음에 닿아 남겨 본다.


"예술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버려질 뿐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간에 의해 버려지고, 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른 누군가가 그를 소비하고 찬양하고.. 삶을 포착한 예술은 아름답지만 결코 우리의 삶을 다 대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예술을 사랑하되 너무 집착하지는 말길. 일전에 어떤 시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시는 아름답지만 시의 대상이 된 그 존재보다 아름다울 순 없다고. 늘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 자체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 역사의 명과 암, 회화에 처절히 담기다


회화 전시관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메두사의 뗏목',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성녀 잔 다르크'까지. 사연이 담긴 작품들과 프랑스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이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그림은 바로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묘사했다고 한다. 1816년 메두사로 향하는 프랑스의 군함 '메두사'호가 세네갈로 향하던 중 난파되면서 다수의 선원은 급조한 뗏목 하나에 의지해 바다 위에 남게 된다.



슬픈 것은 오랜 시간 굶주림을 참지 못하던 그들은 광기에 휩싸였고 서로룰 죽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죽인 시체를 먹는 식인까지 발생하게 됐다고 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참혹한 비극 후 돌아온 생존자는 겨우 15명. 그때의 상황을 상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작가는 이 작품에 희망을 심어놓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몸부림이 작품 곳곳에 보였다. 국가가 지키지 못한 그들은 그저 잊힐 수도 있었지만, 작가의 치열한 관찰과 노력으로 작품을 통해 세상에 진실을 드러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나폴레옹의 대관식, 메두사의 땟목, 성녀 잔 다르크,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까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속 여인이 든 프랑스의 국기는 '자유(파랑)' '평등(하얀)' '박애(빨강)'를 나타낸다. 숱한 억압과 그 속에서 쟁취한 자유.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에서 더 나은 삶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총을 들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총은 폭력이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결코 총 없이는 얻어낼 수 없는 자유였던 것이 아닐까.




루브르 박물관 앞 공터에서


4시간여의 관람을 마치고 루브르를 나서는데 뭉게구름이 온 하늘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그녀가 필터 카메라를 들고 조금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나아간 곳을 멀리 바라보았다. 높은 빌딩은 없고, 고풍스러운 루브르의 외벽이 낮게 깔려 있는 이 차분한 분위기. "이게 파리인들이 느끼는 자유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향기마저 어떤 권력에 의해 함부로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고독하고 싶을 땐 마음껏 고독할 수 있고, 우울할 수 있을 땐 마음껏 우울할 수 있는. 그래서 자신이 느낀 그 어떤 것이라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자유 말이다.



루브르에서 나와 '퐁 생 미셸' 다리를 건너는데 구름 사이로 강한 햇살이 센강과 주변 일대를 비췄다. 바람이 휙 하고 불었다. 그녀를 따라 걷는데,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는 열망이 느껴졌다. 누가 포기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순간 그녀가 말했다.


"우리 파리스냅 찍는 작가한테 연락 왔어."

"어, 정말? 뭐래?"


파리에서 찍은 스냅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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