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환상의 섬이라 불리는 그곳
사랑받기에 충분한 도시, 파리를 떠날 때가 왔다. 이제 우린 예술과 열정의 나라 이탈리아로 떠난다. 숙소에서 나오는데 쨍쨍한 햇살이 내렸다. 파리에 머무는 내내 날씨가 맑았다. 2025년 12월 23~26일 파리의 날씨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향수를 머금은 채 스쳐가는 도시를 눈에 담으며 오를리 공항으로 향했다. 루브르, 센강, 생트샤펠, 만났던 명소들이 스쳐 지나갔다. 신혼여행지로서 그리고 유럽에서의 첫 여행지로서 더할 나위 없었다.
두 번째 행선지는 이탈리아의 수상도시, 베네치아(베니스)였다. 우리에겐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곳이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까지는 1시간 30분 남짓이 소요된다. 책과 작품 속에서만 봤던 도시를 만난다고 하니 괜히 설렜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설렘은 불안으로 바뀌고 말았다. 베니스 마르코 폴로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차편을 미리 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숙소는 메스트레역 근처(도보 5분)에 있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메스트레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 본 섬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우버앱을 켜니 숙소까지 50유로가 찍혔다. 티격태격하던 우리는 결국 50유로(약 8만 원) 짜리 벤 택시를 탔다. 선택권이 없었다. 차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돈도 아까웠지만 일정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무력감이 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숙소에서 역으로 가는 길까지 헤맸다. 답답했는지 그녀는 혼자 지도앱을 켜고 앞질러 가버렸다. 그렇게 겨우 우린 베네티아 본섬에 도달했다.
시간이 지난 후 기분이 풀린 그녀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햇살 아래의 베네치아를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그런데 도시가 너무 아름다워 마음이 좀 풀렸다"라고 했다. 괜스레 베네치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베네치아 본섬의 느낌은 굉장히 신비로웠다. "이런 도시가 있다고?" 왜 수많은 작품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해 질 녘이 다가왔다. 형형색색의 문들과 바다 그리고 물결에 비췬 불빛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곤돌라까지, 모든 존재가 선명해졌다. 난생처음 마주한 형태의 도시였다. 자동차의 소음도 없었다. 육지에서만 듣던 클랙슨 소리 대신, 파도소리가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예술가가 났다고 하는데, 그러기에 충분한 도시였다.
짧다면 짧았던 반나절 동안 베네치아의 밤을 마음껏 누볐다. 도시의 매력만으로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골목을 가득 매웠다. 처음 맛본 이탈리아 정통 젤라토 아이스크림부터, 채소 피자, 그리고 도살을 반대하는 단체의 가면 퍼포먼스까지. 베네치아는 마치 바다 위의 화려한 무도회장 같았다.
베네치아의 핵심으로 불리는 산마르코 광장. 그 근처에는 캄파닐레(종탑), 두칼레 궁전, 시계탑(토레 델로롤로 조) 같은 건축물들이 밀집해 있다. 산 마르코는 기독교 성경 중에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성인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마가 성인이 바로 베네치아 도시를 수호하는 성인이라고 한다. (도시의 역사와 종교, 그를 둘러싼 건물에 대한 얘기는 꼭 오디오 도슨트를 구매해서 들으며 여행하기를 추천한다. 도시를 이해하는 폭과 시선이 훨씬 넓어진다)
이 거대한 광장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알려진 '플로리안'이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플로리안에는 가지 못하고 반대편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빈자리에 앉아 핫초코와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직원으로 보이는 양복을 차려입은 한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오, 꼬레아"하면서 주문을 받았다. 그는 이따금씩 '벨리스다비다'라는 팝송도 불러주었다. 핫초코는 한국에서 먹었던 코코아 분말 음료가 아닌 진짜 초콜릿을 녹였고, 카푸치노도 한국에서 맛보던 맛과는 달랐다.
떠나려 영수증을 보니, 생각보다 큰 금액이 찍혀 있었다. 자릿세가 있었다. 사람들이 서서 음료만 마시고 가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다. 벨리스다비다로 웃음을 선사해 준 아저씨의 유머를 위안으로 삼았다.
과거 카사노바 같은 죄인을 가뒀던 수면 아래의 지하 감옥부터, 죄수가 생을 마감하기 전 건너며 쇠창살 사이에 비친 바다를 바라보았다고 알려진 '탄식의 다리'까지. 역사의 물결이 스친 도시를 건너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햇살과 물이 서로를 반기는 낮에 이곳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언젠가 다시 한번 와야지" 생각하면서도,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난이 달이 밝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