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돌로미티 알짜투어기. "계획에 없던 행복이라서"
베네치아는 정말로 매력적인 곳이다. 섬과 바다, 산과 바위를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목 사이를 맴돌던 파도소리가 아직 가시지 않은 베네치아에서의 이튿날, 우리는 돌로미티(돌로마이트) 투어를 위해 새벽부터 떠났다. 그곳은 이탈리아의 북단에 위치한 깊은 산 속에 있다. 돌로미티는 거대한 알프스 산맥의 석회암 지대를 일컫는다. 베네치아에 여행을 온 이들이 투어 코스로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다.
새벽 7시부터 숙소를 나선 우리는 조금은 익숙한 이름의 가이드와 만났다. '차승원'이었다. 그는 배우 차승원 씨를 들어 자신을 소개했다. 중저음의 맑고 뚜렷한 목소리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투어의 이름은 '차승원의 알짜투어'였다. 집결지인 메스트레역 앞에는 함께 투어를 떠나는 몇몇 신혼부부와 청년들이 있었다.
https://maps.app.goo.gl/8LH8iDAfZGyEiNN98
베네치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약 2시간여 달리자, 옅은 회색의 산맥이 조금씩 자태를 드러냈다. 날씨는 맑았다. 짙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다. 이탈리아의 고속도로는 한국과 비슷했다. 마치 중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작은 산들도 강원도와 굉장히 흡사한 모습이다. 가이드는 "여기가 이태리가 아니라 강원도 정선이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문득 "돌로미티는 어떤 곳일까" 기대감이 들었다.
산 중턱에 다다르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에 있는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마셨다. 어떤 빵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맛있었다. 신기하게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먹은 빵 중에 맛이 없는 빵은 극히 드물었다. 카페에는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어우러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무엇보다 평온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평화롭지만 이 일대에는 과거에 매우 큰 참사가 있었다고 한다. 1963년 거대한 인공댐 부근에서 산사면이 흘러내려 강물을 덮치면서 거대한 쓰나미가 인근 마을을 휩쓸어 큰 참사가 났다.'바이온트 댐 참사'라고 불린다. 그 얘기를 들으니 괜스레 마음이 겸허해졌다.
우리와 함께 앉은 커플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10주년이라니 너무 먼 얘기였다. 우린 이제 시작인데... 10년 뒤, 우린 어떤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까? 상상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신혼여행 내내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일상의 걱정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자유로이 보냈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런 시간을 가지는 건 결코 쉽지 않다. 10년에 한 번 가능할까? 그래서 더 몰입했던 것 같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침엽수림이 나타났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길게 솟은 나무들이 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짙은 녹색과 회색이 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돌로미티 투어의 핵심 중 하나는 '눈썰매'였다. 그녀도 나도 액티비티를 워낙 좋아하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여행 중 가장 즐거운 순간 중 하나였다. 전동 썰매 오토바이를 타고 해발 3000m선까지 올랐다.
20분여 산 정상을 향해 달렸을까. 돌로미티가 보이는 정상자락이 보였다. 숙소로 보이는 큰 나무집 하나가 있고 주변은 온통 눈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공기는 고요했고 바람은 잔잔했다. 그 사이를 햇살이 가득 채웠다. 거대한 성 같은 회색의 산봉우리들이 사방에 솟아 있었다. 아름답고 또 행복한 순간이었다.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잠시 숨을 들이켰다. 능선 아래로는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이 눈길 사이를 오르고 있었다. 자연이 빛은 장관이었다.
돌로미티의 곳곳에는 큰 구멍이 나 있었는데, 가이드는 세계 1차 대전 당시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에서 피 튀기는 전쟁을 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자연은 인간이 한 일들을 모두 알고 있겠구나 싶었다.
https://maps.app.goo.gl/eYJNf4SkWquGYSpd7
대망의 썰매 체험 시간이 다가왔다. 얼마 만에 타는 썰매였을까. 지금껏 타 본 그 어떤 썰매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맑은 하늘과 알프스의 거대한 산맥, 끝없이 펼쳐진 드넒은 눈길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썰매를 타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이처럼 해맑게 썰매를 타는 그녀는, 나보다도 훨씬 빨리 산을 하강했다. 눈산을 보며 썰매를 타고 내려가는데 그동안 쌓였던 많은 근심이 모두 잊히는 듯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산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
사실 돌로미티 투어는 "할까 말까"를 몇 번이나 고민했던 코스였다. 하루 전체를 투자하고, 고도도 먼 만큼 날씨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인 걸, 다녀온 지금은 신혼여행 중에 가장 새롭고 즐거운 순간으로 남았다.
산 중턱에서 썰매를 반납했다. 그리고 베이스캠프까지 걸었다. 일상을 떠나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걸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눈을 밟자, 뽀드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상의 저편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평생을 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만약 평생을 이렇게 여행하듯 살면 행복할까? 진정한 자유는 어디 있을까 하고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눈을 하늘 위로 던지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또 하나, 특별한 경험을 했다. 가이드는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며 메뉴를 보내줬다. 무난한 감자튀김이나 돈가스도 있었지만, 우리는 도전을 택했다.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 산토끼 파스타와 노루 스테이크를 먹었다. 맛은 비밀이다. 현지에서 사냥한 산토끼와 노루로 요리한 메뉴다. 확실한 점 하나는, 생각보다 맛있었다는 것이다.
돌로미티 투어의 마지막은 바로 노을이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자, 태양이 회색의 석회암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두 존재가 섞이면서 형광색의 봉우리가 연출된다. 경이로운 풍경이다. 산 아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이 풍경을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에게 이 풍경은 여행객인 우리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그 풍경도 달리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간직하고 싶어서 또 이렇게 남겨두는 게 아닐까.
투어를 마치고 베네치아로 돌아가는 버스 안, 가이드분(차승원 씨)이 이탈리아 가곡을 불러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목소리가 참 좋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그는 성악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왔고, 어쩌다 보니 관광 사업을 하게 됐다. "유학을 올 당시 생각했던 삶은 아니지만 현재는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10년 전의 난 오늘의 나를 예상했을까. 그때는 게스트하우스에 살며,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그녀와 결혼을 해서 이렇게 신혼여행을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10년 전과 바뀌지 않은 건 하나밖에 없다. 때때로 삶에서 느낀 점들을 글로 남기고 있다는 것, 그게 전부다. 계획대로 되는 삶이라... 그게 진짜 삶인지는 모르겠다.
베네치아에 돌아오자마자, 마르게리따 피자와 토마토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후 소화를 시킨 후 메스트레역 근처에서 러닝을 하려 했다.하지만 하지 못했다. 계획대로 되지 읺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을 즐기고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