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없고 이상만 있는 시대

송길영의 '시대예보 : 경량문명의 탄생'을 읽고

by 글로

모든 게 가벼워지는 시대가 온다. 그때는 누구나 혼자서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시대는 이미 눈앞에 와 있다.


기술 패권주의 속에 살던 우린, 이제 궁극의 기술을 마주하고 있다. 챗gpt가 그렇고,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그렇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노동이 이젠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21세기 로봇은 고대 문명에서 노예 노동이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 마침내 인류는 속박에서 해방되어 더욱 숭고한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니콜라 테슬라, 1935년)


송길영씨가 말하는 경량 사회는 '초개인화된 기술 개체들로 이뤄진 세상'이다. 모두가 그 녀석만 들고 있으면,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전문 지식을 굳이 전문가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긴 시간과 차비를 들여 만나러 갈 필요도 없다. 그의 페르소나를 가진 AI에게 물어보면 된다. 물론 그걸 어떻게 얼마나 잘 습득하느냐는 개인의 노력에 달려있지만, 먼 미래에는 굳이 지식을 습득해야할 필요조차 없어질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우리가 타인의 전화번호를 굳이 외우지 않는 것처럼, 그 어떤 지식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는 말한다. 경량화된 사회에서 무거운 조직은 언젠가 사라진다고. 무거우면 느리다. 절차가 많고 의사결정에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조직은 법과 관례가 쌓아놓은 권력 안에서 큰 바퀴를 굴리며 지금껏 그 힘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젠 동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너무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수많은 절차 안에서 해결해야할 일을 AI라는 녀석이 감당한다. 자신의 쓸모를 잃고 회의감을 느낀 구성원들은 눈치를 보다, 결국 기회가 오면 이탈하고 만다. 혹은 그 반대다.


경량 문명의 시대에는 이제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틀이 무너진다. 과거에 해왔던 방식, 의미를 잃은 율법, 본질을 놓친 형식이 말이다. 틀을 깨는 건 쉽지만 그 틀에 익숙해진 인간의 마음을 바꾸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큰 조직일수록 경량 문명에 적응하기가 더 어렵다.


"바꾸고 싶고 바뀌려는 사람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어요. 신규 직원들이 용기가 없는 게 아닙니다. 재능이 없는게 아니에요. 다 준비가 되어 있어요. 다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조직이 있을 뿐이죠."


"경량문명에서의 새로운 리더십은 의지를 가진 상대를 믿고 그에게 자율을 허락하는 믿음과 너그러움이 그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그 종착역은 조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함께 꾼 꿈이 이루어지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그 상태에 이르기까지 처음 출발했던 이들이 모두 여정을 함께 끝내는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송길영, 시대예보 : 경량문명의 탄생 中)


무게와 안정을 포기하고, 불확실성을 즐겨야 한다. 기술의 혁신은 더 빨라지고 있다. 회피하거나 초월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맡겨야 한다. 동료에게, 직원에게, AI에게. 점검은 후 순위다. 큰 실수가 아니라면 괜찮다. 가볍고 빨라야 살아남는다.


언론과 미디어는 노동의 종말을 운운하지만, 아직은 먼 얘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수십 년 이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직 블로장생을 얻지 못한 인간에게, 노동의 종말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유희와 쾌락만 누리는 삶? 신을 찬양하는 종교 활동? 오염된 지구를 살리는 환경 운동? 각자가 자신의 희망을 펼쳐나가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남은 아주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이 질문 하나다.


"기술이 점령한 시대, 이상만 남은 인간이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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