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나아가는 이
벌써 4월이다. 바깥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봄바람을 만난 벚꽃 잎이 비처럼 내리고 있다. 안양천을 걷는데 분홍색으로 물든 하늘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까이서 봄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연인이었던 그녀는 이제 아내가 되어 편안한 모습으로 내 앞을 걷고 있다.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이 여행기는 점점 시의성을 잃어가고 있다. 무슨 12월에 다녀온 신혼여행 얘기를 아직도 쓰고 있냐고? 적잖이 게을러서 그렇다. 맞다. 하지만 나와의 약속이니, 포기할 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기를 과연 누가 볼까? 꼭 누가 봐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누군가에게 뭐라도 줄 수 있는 글이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한 가지 든 생각은 훗날 태어난 아이에게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숙소 근처에 있었던 트레비 분수. 로마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건축물이다. 트레비는 ‘세 갈래 길’ 또는 ‘세 개의 길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의 tre vie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보는 순간 로마의 감성이 확 느껴졌다.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창문과 조각상들 사이에 큰 분수가 있다. 트레비 분수는 도심 한복판에 있어, 인파가 엄청나다. 잘못하면 소매치기를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분수의 물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다. 어떤 분수도 그렇듯,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동전을 던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사람이 없는 새벽에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디오 가이드는 트레비 분수의 진정한 멋은 고요한 새벽에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왠지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분수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침묵 속에서 들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예전에 국내에 있는 한 유명한 폭포에 간 적이 있다. 당시 관광객들 소리에 폭포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얼마 후 관광객이 다 빠지고 침묵이 찾아왔다. 그때 눈을 감고 조용히 폭포의 소리를 들었다. 전에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기회가 되어, 다음에 또 로마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사람이 없는 시간에 트레비 분수의 음성을 한 번 느껴보고 싶다.
https://maps.app.goo.gl/7W1SBHELpDPmrkMd9
콜로세움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폐허가 된 거대한 도시가 보인다. 산산이 부서져 1/10 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기둥과 신전, 바닥에 널브러진 거대한 돌들. 그 느낌만으로도 장엄하다. 마치 큰 전쟁을 치른 고대의 도시 같이 보인다. 지금 와서 든 생각이지만, 난 그곳을 '경이로운 폐허'라 부르고 싶다.
포로 로마노는 과거 서로마 제국의 정치, 종교, 상업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마 제국이 5세기말 붕괴한 후부터 수세기에 걸쳐 천천히 방치되고 무너졌다. 기능을 상실하면서 폐허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버려진 그 모습을 이렇게 방치하고, 어쩌면 보존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이탈리아와 로마의 정치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중요한 역사의 산물이라 그렇겠지만, 누군가의 실수로 재개발이라도 했다면 이 역사가 통째로 사라졌을 테니 말이다.
https://maps.app.goo.gl/MDTAsqVSZFKpKfyQ8
포로 로마노의 곳곳에는 신전과 개선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부분 황제들이 섬겼던 신전과,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기 위해 세웠던 건축물이다. 어떻게 이렇게 크고 정교한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포로 로마노를 샅샅이 다 돌아보려면 넉넉히 2시간은 잡아야 한다. 한 여름이나 아주 추운 겨울에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서로마 제국의 유적의 핵심인만큼 결코 빼놓을 수도 없는 곳이다.
그녀가 가장 흥미를 보였던 곳은, 맨 아래 사진에 있는 여사제의 삶과 흔적이 남아 있는 '베스타 여사제의 집'이다. 여사제들은 베스타 신전의 불을 관리했다. 불이 켜져 있다는 건 로마가 살아있다는 의미로 이를 관리하는 이들은 로마에서 아주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엄격하게 통제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여사제의 삶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존경도 받지만 한편으론 철저히 통제된 삶. 어쩌면 성직자로서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상상해 보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파리에 에펠탑이 있다면, 로마에는 '콜로세움'이 있다. 콜로세움이 대략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했다. 이 큰 경기장에 모여 검투사들이 서로를 칼로 찌르는 걸 감상했다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영화 글래디 에이터에서 보았던 그 장면이 현실로 이뤄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왜 이런 경기장을 만들었을까. 군중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로마가 이 정도의 문화와 경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힘을 보여주기 위해? 올림픽을 앞두고 개막전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로마의 문화와 권력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 지를 모르다 보니, 쉽게 판단할 순 없었다. 다행히 경기에 나갔다고 해서 꼭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https://maps.app.goo.gl/QS4Z8DqXhP6jrPBw5
콜로세움은 계급에 따라 관람석의 높이를 달리했다. 마치 현대의 운동 경기장에도 VIP, S, L 등으로 좌석이 나눠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자본주의에 맞춰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주지만, 그때는 권력과 계급에 따라 나눴다. 물론 권력이 곧 재물(돈)과 연결돼 있었겠지만. 하지만 콜로세움 결국은 폐허가 되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지만 현재 그는 살아있지 않다. 콜로세움을 살아있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를 보고 상상하는 이들의 마음 밖에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나간 역사'를 볼 때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