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에세이집 '울지 않는 아이'를 읽고
"어린 시절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다. 모든 것이 - 보고 듣고 만지는 것 모두 - 하늘에서 내려온다.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건이 아이들 위로 그저 내려온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린 시절이 특별한 이유 중에는, 어린아이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말로 - 후회나 실망, 고독과 애달픔도 그렇다 - 질서 정연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도 하나 있다. 하나의 개념을 말로써 파악하는 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현저하게 잃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감정에 이유를 부여해 슬픔을 경감해주기도 한다."
(에쿠리 가오리, '울지 않는 아이' 中)
눈물이 나지 않는 건 기쁜 걸까. 슬픈 걸까. 요즘에는 악동뮤지션의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노래를 자주 듣고 있다. 우연히 들었는데 가사가 참 많을 걸 생각하게 만든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차분히 마음을 다독인다. 가끔 불쑥 올라오는 불안한 감정들을 다독여준다. 지나갈 거라고. 마주하면 별 일 아닐 거라고.
우리는 언제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여줄까. 다독여 주려면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데, 여유가 마땅치 않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잠시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숨소리에 집중하는 것과 비슷하다. 몰입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무척 어렵다. 마치 가만히 서서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으려는 행위처럼. 하루 한 번이라도 숨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건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다독여주는 건 꽤나 중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 행위를 굉장히 좋아한다. 불안한 순간이 엄습하면 나에게 말해준다. "괜찮을 거야. 별일 아닐 거야." 하고. 때론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곧 지나갈 거야"라고. 물론 자주 그러진 못하지만. 한편으론 나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 감정이 뭔지 충분히 알려주지 못한 채 그저 "괜찮다"라는 말로 뭉게 버리는 것만 같아서.
감정 회로가 고장 난 것 같은 이들을 종종 목격한다. 감정의 회로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과의 대화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니 억누르더라도 언젠가는 끄집어내야 한다. 흉터를 덮어 놓는다고 아물지 않듯, 고름이 찬 마음도 자꾸 꺼내고 약을 발라줘야 한다. 자주 웃고 울고 토로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말이다. 물론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과의 대화가 어렵다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방법도 있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쉬운 일. 에세이가 그렇다. 그런 대화를 모아놓다 보면, 자연스레 에세이가 된다. 요즘은 에세이를 자주 읽는다. 호흡이 길고 너무 치열한 글은 읽기가 부담스럽다. 작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차분히 시선을 붙이기는 쉽지 않다.
에세이 속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감상이 들어 있다. 말랑말랑하면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그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이란 참 묘한 장소다. 불과 한두 시간 머물러 있을 뿐인데, 들어설 때와 나설 때의 사람이 전혀 달라진다. 머리 스타일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용 전과 사용 후, 미용실에 가면 나는 언제나 장난감 병원을 떠올린다. 망가지고 헌 인형들의, 아주 단순한 수리 공장. 수리를 끝낸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설 때의 그 개운하고 좋은 기분은 다른 장소에서는 맛볼 수 없다.
일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로 초췌해 있을 때조차 미용실에 있는 동안에는 그렇다는 것을 잊어버리-기보다 강 건너 일처럼 멀게 느껴진다-고, 문을 나설 때는 어이없을 정도로 기운이 솟는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기묘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머리 손질을 했다곤 해도 눈에 띄게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해도 절대 예뻐졌다는 느낌은 아니다." (에쿠니 가오리, '울지 않는 아이' 中)
얼마 전 회사 근처에 있는 한 카페에 들렀다. 금요일 오후 2시쯤이었다. 재택근무를 하다가 점심 약속이 있어 나왔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간 곳이다.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 오래된 주택가. 즐비한 담벼락 사이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어떤 나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뒤로 3층 짜리 건물이 서 있었는데, 가지런한 계단 위로 차분하게 놓인 공간이 보였다. 어여쁜 벽돌집. 햇살이 내린 숲의 느낌이었다. 디자인을 잘 모르지만, "디자인이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소한 원두를 볶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리고 2층으로 향했다. 일렬로 늘어선 테이블 끝에는 한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이패드로 보아 드로잉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옆으로는 큰 창문이 나 있었다. 천장에 붙은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새소리와 정체 모를 음악이 흘러나왔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편안하게 느껴졌다. 몰두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해야 할 업무에 몰두했다.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행위.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끝내고 나니 개운했다. 카페를 떠나며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한번 들러야지" 하고. 왜 그런지는 모른다. 문득 기억이 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아가다 문득 떠오르는 어릴 적 추억들은, 모두 우리에게 기쁨 혹은 슬픔을 주었던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자주 기억이 난다면, 그건 그들이 준 기쁨이 훨씬 많아서 일지도 모른다. 아닐 수도 있지만 기쁨의 농도는 생각보다 짙고 깊다. 지금은 설사 원망과 슬픔으로 물들어 버렸다고 해서 그때의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결국 우린 보이지 않는 기쁨을 간직하고 살아가면 된다.
슬픔이 많다는 건, 그전에 받았던 기쁨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니. 너무 노여워하지만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