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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r 29. 2019

김윤나의 '말그릇'을 읽고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그릇'


비울수록 사람들을 더 채우는 '말 그릇'




말그릇 


요즘은 '말'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 말할까, 매 순간 고민한다. 타인의 말에도 더 집중한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는 걸까? 저 사람의 말에선 왜 차가운 느낌이 나는 걸까? 같은 말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말이 그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불과하다면, 왜 그렇게 서로 다른 걸까?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지니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말 그릇의 상태에 따라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말솜씨'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이목을 끌기 위한 말하기를 사용하지만, '말 그릇이 단단한 사람들'은 소통하는 말하기를 사용한다. 꼭 필요한 때에 단정하게 말하는 것의 힘을 제대로 알고 있다. 당신의 말 그릇은 어떤가? 크고 단단해서 그 안에 사람을 담을 수 있는가? 아니면 얕고 작아서 스치는 말 하나에도 불안하게 흔들리는가?

<'말 그릇' 中> 








얼마 전 '000 0스'라는 외국계 영업마케팅 회사에 입사했다. 생계를 위해 직장을 구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영업에 대한 호기심이 짙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소속된 팀은 참 멋진 조직이었다. 무엇보다 감명 깊었던 건, 각 팀원들의 개성이 팀 안에서 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영업은 말을 통해 고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마음을 움직여 상품이나 서비스를 광고, PR,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이 회사는 무엇보다 '말'을 중요시했다. 말은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부정적인 언어는 좋지 않은 결과를, 긍정의 언어는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오전 일과의 대부분을 교육과 미팅으로 보냈는데, 기억으론 50% 이상이 영업스킬과 '말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어떤 장소, 어떤 분위기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이, 나는 궁금했다. 말의 기록물인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말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과 관련된 책을 찾다가 한 권의 책을 추천 받았다. 이 책 또한, 같이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는 민희가 소개해준 책이다. 제목은 '말 그릇',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말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었다. 





관계는 '통제의 언어'로 지속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유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억지로 비꾸려 들거나 강요하면 관계는 끊어진다. 세련된 말솜씨로 얼마동안은 자신의 의중을 숨길 수도 있지만 말로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말은 '통제의 말'이 아니다.
"그래, 힘들었겠다. 고생했어." 
"그럴 수도 있구나."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까?" 
이처럼 공감하고 존중하며 건강하게 자극하는 말에서 관계가 싹튼다. 

<'말 그릇' 中> 




이 구절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통제의 언어로 누군갈 억압하진 않았을까. 각 사람의 마음에 말을 담는 그릇이 있다면,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말이 말 그릇에 담길 수 있을 텐데. 나는 문을 열기 전 노크조차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문을 두들기고 담을 뛰어넘은 건 아니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정말 간단한 이치다. 문이 열려야 들어갈 수 있고, 마음이 열려야 말이 들어간다. '마음에 들어서'라는 표현도 있듯 우리의 말은 입에서 나와 허공을 맴돌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귀를 통해 마음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은 도리어 마음의 문고리를 더욱 굳게 잠궈 버리기도 한다. 반면, 아름답게 다듬어진 말은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된다.




자신이 말을 주도해야 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감정을 세밀히 구분해서 그에 맞는 말을 고를 줄 아는 사람, 고정된 생각에 갇혀 있지 않고, 습관적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만이 말 때문에 후회하고 실망하고 탓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말 그릇' 中>






감정과 말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기도 한다. 감정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감정에게 휘둘리는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감정과 친해지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포장하거나 억누르지 않는다. 감정을 부드럽게 다룬다. 그럴 때 우리는 감정의 주인이 되어 감정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다.  




'말하기'는 인기가 좋다. 화술이나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수두룩하다.  이것은 잘 말하는 사람이 주목받고, 능력 있어 보이며, 힘을 가진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듣기'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듣기라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거나 무작정 듣고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 듣는다는 것은 '귀'로만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욕구'를 다스리는 동시에 상대방의 말속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파악하고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도 파악해내는 것을 뜻한다. 

<'말 그릇' 中>



그런 말이 있다. '사람은 입이 하나고 귀는 두 개다. 이는 두 번 듣고 한 번 말해라는 뜻이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상대의 얘기를 듣는 중에 말하고 싶은 욕구가 목 끝까지 차올라도, 참고 들어보자.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감정이 이 말에 묻어있는 걸까? 자, 얘기가 끝났다면 이제 천천히 그의 말을 토대로 말해보자.





사람들은 가까운 이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을 갖는다. 작은 설렘이나 희망을 심어주는 그런 질문이면 어떤 것이든 괜찮다. 이미 잘하고 있는 것, 과거에 잘했던 것, 앞으로 바라는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있게 질문을 던져보자.   

<'말 그릇' 中>




적절한 질문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호기심과 관심에서 시작된 질문이 사람의 마음에 문을 두드린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침묵하거나 적절한 질문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진심으로 궁금했던 점을 한 번 질문해보면 어떨까?


 

'말 그릇'은 말 그대로 '좋은 책'이었다. 말을 생각하게 하고, 생활에 깊이 접목시켜 나의 말을 조금씩 바꿀 수 있게 도와준, 그리고 나의 삶에 다시 한 번 진심 어린 질문을 던지게 한 책이었다. 


혹시 말 때문에 고민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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