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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Jun 20. 2019

'책은 도끼다2'를 읽고

박웅현


얼어붙은 감수성을 일깨우는 창의적인 독법을 넘어,
우리 삶의 바탕을 이루는 실천적인 독서를 말하다!






책은 도끼다2




이 책은 박웅현씨의 두번째 인문학 저서다. 첫 책 읽지 못했다.


중고서점에 들렀다 우연히 발견했다. 순전히 박웅현이라는 이름 보고 구입했다.


예전에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라는 책의 독후감을 쓴 적 있다. 인문학적 감성을 광고에 어떻게 녹여냈는지 설명한 책이었다. '여덟단어'란 책도 읽은 기억이 난다. 의 책을 생각보다 많이 읽었다.



책에서 만난 박웅현씨는 영락없는 광고인이다. 인문학을 영감의 요소로 활용한다. 또한 자신의 독서법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해, 광고에 접목시킨다. 그는 광고가 '창작'보단 '발견'이라 말한다. 주변의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그런면에서 볼 때 박웅현씨가 인문학에 집중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것들을 고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이는, 평소에 잊고 살았던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선 힘든 일이다.


이 책은 광고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그가 직접 읽었던 책을 추천하며 그 안에서 느낀 삶의 의미와 깨달음을 전한다.






5년만의 만남입니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 '여덟단어', 이 세권의 책을 통해 가마솥의 누룽지 긁듯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 쏟아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 했습니다. 다음 책은 그래서 머러건 숭늉 같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책 읽는 즐거움을 또 한 번 나눠보고 싶어서 입니다. 인생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지만, 그것에 우선해 책에서 느낀 즐거움, 하나의 문장이 주는 위로와 쾌감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p13




하나의 문장에 위로를 받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필자의 생각에 이 즐거움은 몇권의 책을 읽었다 해서 느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박웅현씨는 굉장한 다독가다. 그만큼 책을 많이 읽었기에, 독서의 즐거움을 스스로 찾는 경지에 다른 게 아닐까. 그래서 나이번엔, 책의 내용을 내 삶에 접목시켜 느낀 바를 적어보려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선 다독, 다작이 필수란 말이 있다. 정말 끝없이 읽고 쓰기만 하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그 말을 들은 후 실제로 나는 하루15분씩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금도 이 글을 읽으며 탈고한다. 써도 써도 다듬을 데가 있다.



 글쓰기에 관해 쇼펜하우어 '문장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서의 의미에  관하여
다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뺴앗는 일종의 자해다. 압력이 너무 높아도 용수철은 탄력을 읽는다.   

-문장론 中, 쇼펜하우어-



지나친 독서는 현실에 대한 감각을 떨어뜨리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중략)
진짜 스스로 사색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그 소재를 현실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독서는 어디까지나 작가에 의해 가공된, 인공적인 현실이다.

-문장론 中, 쇼펜하우어-








독서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진정한 사색과 깨달음은 스스로 느끼고 찾아야 한다. 처음 독서에 흥미를 들이면 나도 모르게 그 책들이 말하는 것이 전부 진실인 양 믿고, 내용에 푹 빠져든다. 현실에 괴리감을 느낀다. 하지만 책 속의 현실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현실이지 우리가 사는 참 현실은 아니다.



현실보다 책속의 현실이 더 좋아, 빠져나오지 못한다. 머릿속에 항상 그 생각한다. 하지만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면 현실은 책과 다르다.



이상할만큼 편안하고 북적이고, 반복된다. 인간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이다.


삶은 생각하고 느끼는 나와, 그저 현실에 매몰되어 생각하지 못하는 나의 치열한 전쟁이다.





 우리는 왜 사유해야 하는가.



사유. 아주 중요한 단어지요. 어느 인터뷰에서 '여덟단어'에 한 단어를 더 추가한다면 어떤 단어를 뽑겠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떄 '욕망'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 봐야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저 욕망을 하죠. 우리의 욕망을 구성하는 재료가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욕망의 구성 재료들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우리는 덜 불행해집니다.




우리는 그저 욕망하지, 욕망의 내면을 바라보지 않는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내가 지금 왜 이런지, 내가 진정 원하는 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없다. 나는 퇴사를 앞두고 있다. 6개월 정도 바이럴마케팅 회사에서 일했다. 얼마 일하지 않았지만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다양하다.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 이유를 나열하면 끝이 없다. 일이 많고 힘들어서,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분위기가 삭막해서, 배울 게 없다고 느껴서 등 이유는 많지만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본 결과, 내가 찾은 진실은 이렇다.  



이 일에서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어서' 다. 내겐  '의미'가 중요하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요즘말로 소위 의미충이다. 물론 회사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 만약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했다면 더 다녔을 것이다. 배부른 소리, 먹고 살만하니 하는 말, 맞다. 좀 더 고민하고 다시 또 다른 곳에서 방황해도 좋다고 판단했다. 언제나 선택은 나의 몫이니, 다시 또 고집스런 내면을 휘젓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굳이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다. 내면을 너무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은 현실습관을 떨어트릴 수 있다. 그러니 적당히 하길 추천한다.





인간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저는 '사람은 물이다'라는 얘기를 자주합니다. 사람은 고여있지 않죠. 나쁜 사람을 만나면 나빠지고, 착한 사람을 만나면 착해지고, 어떨 때는 성질이 급한 사람 같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 않죠. 마치 물이 흐를떄 개울을 만나면 물소리가 커지고, 폭포를 만나면 험해지고, 평평한 곳에서 조용히 흐르다가, 넓은 강에 이르면 서로 엉키고 시끄러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은 물이다. 사람은 그릇이다, 라는 말은 들어봤다. 물, 물은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모양이 변하고, 작은 오물만 들어가도 쉽게 더러워진다. 하지만 다시 또 흐르다 보면 깨끗함을 찾고 서로 모여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낸다. 개울과 폭포, 바다와 강, 비와 샘, 모두 물이지만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어쩌면 물은 세계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물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굉장히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물보단 반석같은 사람, 하지만 살면서 느끼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물이란 사실이다. 누구보다 여리고, 겁이 많으며, 생각도 많다. 부서지기 싫어서 늘 움츠리고 나를 방어한다. 누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가까이 오기만 해봐 하며 송곳니를 드러낸다. 참 피곤하게 살고 있다.



 반석도 물이 한방울씩 똑똑 떨어지다 보면 결국 쪼개지고 만다. 아직 다듬어질 곳이 많아서, 여전히 고뇌하고 부딪힌다. 언젠가 내 가슴이 완전히 해되어 물이 되기를 바란다. 흘러 흘러 영원한 곳으로 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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