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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y 02. 2020

'세대 게임'을 읽고

글로 나아가는 이

세대 프레임을 넘어서


세대 게임


코로나 사태 후 두 달 만에 독후감을 쓴다. 사실 이번 책은 독파가 어려웠다. 모임을 운영하는 지인의 추천에 '넙죽' 받긴 했지만 읽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이번 감상평은 아무래도 '깊이'가 부족할 듯하니 가볍게 읽어주길 바란다.  


한국이 '세대'의 실체가 뚜렷이 나타나는 나라이기에 이런 책들도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 또한 나의 편견일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 88 세대, 박정희 세대, IMF 세대, 밀레니엄 세대, Z세대까지, 굉장히 다양한 세대가 존재한다. 또한 누구나 '세대'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고 그 안에 속해 있다. 하지만 '세대'의 정확한 실체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세대게임은 그에 참가한 사람들이 세대를 이뤄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활동과, 게임의 판을 짠 집단들이 어떤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세대를 활용하여 사람들의 경쟁이나 싸움을 부추기는 움직임을 말한다.
p19
사진출처 : 국세청
세대는 다채로운 매력을 뽐낸다. 나중에 자세히 살피기에 추려 말하면, 세대는 간편함과 가소성이 그 큰 매력이지만, 무엇보다 정체성과 관련해서 탁월한 매력을 뽐낸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우리 세대'의 일원임을 밝혀주고, 그러한 우리를 역사의 흐름 속에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세대는 우리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 속에 서식하며, 그들의 서식처는 '너무 이르거나 늦어서' 역사의 흐름을 방해한다.  
p22

세대는 나이, 경험한 사건, 시대적 정치 경험, 공유한 문화 등 다양한 조건들로 나눠진다. 물론 이 요소들끼리 교집합이 있어 명확하게 구분하긴 쉽지 않다. 보통 '세대'를 나이로 규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연령 사람을 구분하고 규정할 때 가장 간편하게 쓰인다. 학교에서 기획서를 쓸 때도 그랬다. 소비자를 선정할 때 대부분 '2030세대', '3040세대'와 같이 나이로 규정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세대 분류가 "정말 맞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든다. 같은 연령층에서도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이 정말 많고 또 다른 요소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른 세대는 우리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 속에 서식하며, 그들의 서식처는 '너무 이르거나 늦어서' 역사의 흐름을 방해한다"라는 말은 조금 극단적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세대갈등'을 볼 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출처 : 경향신문


'사회 현안을 세대 문제로 해석하는 프레임'이 바로 가로등 역할을 한다. 취객은 열쇠가 가로등이 비치는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빛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찾지 못할 테니까.  
P23


세대는 '프레임'이 되어 시선을 가리기도 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이란 말도 '세대 프레임'의 일환이다. 누군가의 말, 행동, 생활방식이 어디서부터 온 건지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 그 이유를 그가 속한 '세대'에서 찾으려 한다. "요즘 좀 외롭다"라고 하면 "나이가 들어서 그래", "30대인데 솔로니 그럴 만도 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너도 나이 들어 봐라"라고 하며 한탄한다. 경상도에서 70년대, 즉 '故(고)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10대를 보낸 우리 아버지는 소위 박 대통령의 업적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신뢰하며 살아오셨다. 아버지의 정치적 신념을 내가 함부로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신기한 건 아버지의 그 신념은 '故(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前(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광화문에 울려펴진 태극기의 함성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례 통해 보면 '세대'라는 불빛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강하게 비취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진출처 : 백세신문
노동시장과 상품시장은 청년성을 그것의 생물학적이며 나이와 연관된 경계로부터 '해방'시켰다. 자신의 노동력을 노동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또는 기업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쓸 만한 인력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자신의 구태의연함을 감추고 생기발랄함을 과시해야 한다.
젊은이의 경우, 자신의 청년다움을 뽐내되 사춘기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성숙함도 가미해야 한다. 노화와 싸우는 안티에이징 상품이나 아름다운 외관을 겨냥하는 라이프스타일 상품은 모두 실제 젊은이들의 삶에서 청년다움을 분리해 내, 만인이 소비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변화시킨 것이다. 상품의 소비는 청년 같은 육체를 유지하거나 이미 늙었더라도 다시금 재활시키는 미학적 약속이다. 요컨대 청년성은 만인이 취할 수 있는 사품이자 취해야만 하는 윤리적 가치다.
.....(중략).....
사춘기 청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그러한 사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바처럼 사춘기 청년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서구의 사정도 만만치 않겠지만 우리네 사정도 심각하다. 낮은 출산율, 높은 주거비용, 고용 불안의 측면에서 다른 OECD 회원국을 압도한다. 낮은 출산율은 부모 되기를 방해하고, 높은 주거비용은 독립생활을 어렵게 하며, 고용불안은 안정적 직장을 취득하기 힘들게 만든다. 이는 곧 한국 청년들이 다른 회원국의 동료들보다 청년다운 청년이 되거나 청년다운 성인으로 성장할 기회가 극히 적다는 것을 말한다.
'세대 게임' p79~80 中에서

'세대 프레임' 안에서 누군 간 세대의 특성을 강요받다. "'청년'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청년성은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 성질이지만, 정작 '내'가 가지기엔 너무나 오르기 높은 산이다.  어쩌면 사회가 말하는 청년성은 '완벽'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지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세대 의식' 결코 우리 삶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온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어쩌면 먼 훗 날 후손들에게 '코로나 세대'로 명해지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거니 말이다. 다만 '세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좀 더 세분화되고 정교해질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일반화의 오류'가 무섭듯, '세대의 오류'도 누군가에겐 깊게 팬 '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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