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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01. 2020

비는 오지 않지만

글로 나아가는 이


비는 오지 않지만 한참을 젖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이끌고 있다. 침묵이 이어졌다. 크고 작은 젖가슴들을 지닌 인간들이 지나가고, 나는 '존재' 이유를 생각했다. 언젠간 오고 말아야 할 시대와 사명에 대하여.


귀뚜라미 소리가 잘게 깔린다. 우연히 겹친다. '자연'과 '인공'이 나는, 푹 젖은 시간을 참 좋아한다. 죽어야 마땅할 내가 죽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하늘과 맞닿아 있는가. 길을 걸으며 문득 떠올린다. 내가 지금 여길 왜 걷고 있지? 나와 이 세대는 무슨 연관이 있지? 잡생각이 많아서 글을 쓴다는 말에, 누군가는 동의하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비는 오지 않지만 '비' 아닌 것들에 젖고 네가 스며든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 더 슬픈 일이다.


그녀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감정의 강도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그녀의 모습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지만, 빗소리가 들릴때 그 소리를 소리에 잠긴 추억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귀뚜라미는 어디 숨어서 우는 걸까. 유난히 소리가 크다. 목소리 큰 녀석은 질색인데,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입장에서 귀뚜라미의 삶은 목놓아 울부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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