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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18. 2020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를 읽고 2

언론-검찰-삼성 : 전직 기자의 비판과 고백

언론-검찰-삼성 : 전직 기자의 비판과 고백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이소룡(가명)-



필자가 시골에 내려와 글을 끄적이는 이 순간에도 물밀듯 정보는 쏟아진다. 대한민국 언론(言論)은 대단할 정도로 빠르게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유난히 빠르다. 하지만 지나친 속도감에 때론 방향성과 객관성을 잃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기자들을 흔히 '기레기'라고 폄하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만큼 한국 언론이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인가. 아니면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사회가 나아갈 바른길을 제시해 주는 것인가. 거창하지는 못해도, 언론은 글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건드리기에 그 책임과 역할이 결코 무겁지 않다. 


한국 언론은 유난히 정치·종교적 색깔이 짙다. 클릭을 위한 자극적이고 과장된 가짜뉴스가 많다. 이 책에 따르면, 근래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그런 언론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늘날 언론의 위기는 보도와 경영의 위기다. 공정성 결여와 경영 악화가 맞물리면서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맞았다. 사실로 진실을 가린다. 뜻밖에도 많은 기자가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보도의 생명은 팩트지만, 팩트 지상주의는 종종 위험하다. 나도 기자로 활동할 때 이러한 오류를 저질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급속한 상업화와 이익집단화는 보도 질을 떨어트리는 주범이다. 여기에 정파성이 결합하면 최악이다. 그 결과는 언론사와 언론인에 대한 신뢰 추락이다. 경영논리가 보도 논리를 밀어낸 언론환경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가늠해봤다. 그렇다고 탈레반식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현실에 맞지 않는 원칙론은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거나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제한적으로나마 언론 경영의 일면을 엿본 사람으로서 함부로 '개혁'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4~5 中, 이소룡



'보도와 경영의 위기'란 말에 공감했다. 필자는 언론업에 종사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정식기자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필자의 생각에 그 기준조차 애매한 곳이 언론업계인 듯하다. 각 언론사마다 운영방침, 기사 송고 시스템, 취재 방법, 운영 논리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기자와 언론사를 운영하는 대표들을 만나며 든 생각은, 기자도 대단할 것 없는 사람이고 밥벌이를 위해 늘 고민하는 인간 중 하나라는 점이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다. 


감히 언론을 어떻다고 평할 수 없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순수한 마음을 갖고 간 첫 언론사에서 기자에 대한 로망이 산산조각 난 것은 사실이다. 


내가 간 곳은 무척 작은 언론사였고, 과거에는 규모가 컸지만 여러 이유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체계가 없어 경영위기를 맞아, 소수의 인원이 일당백으로 회사의 경영에 이바지해야 하는 상황. 기사 쓰는 법도 몰랐던 나는 막연히 사무실에 내던져졌다. 사수의 무심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무능력함 때문이었을까. 3달 내내 보도자료 받아쓰기만 하던 나는, "이게 뭐 하는 걸까" 생각하며 경영 위기를 운운하며 그곳을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구성원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필자와 달리 규모가 크고 알려진 언론사인 00일보에서 높은 직책까지 근속하며 스스로 보고 듣고 깨달은 언론의 문제점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이 언론 집단의 자성을 촉구하고 언론개혁에 관한 공감대를 넓히는 데 이바지한다면,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덜 수 있겠다. 아니, 표현을 바꾸는 게 좋겠다. 언론개혁이 아니라 언론 되살리기다. 타락하고 추락했지만, 언론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언론만큼 유용한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다시 살아나려면, 먼저 겸허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 본분에 맞지 않는 권력 행위를 지양하고, 탐욕과 특권을 버리고, 미래지향적 생존방식을 도모한다면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언론기업이 아닌 언론사로 인정받으려면 수익을 추구하더라도 최소한의 공공성을 유지해야 한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5 中, 이소룡


▲선택적 보도의 함정 사실과 진실, 무엇을 위한 보도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해 역대급 수사력을 동원한 검찰을 두고 '선택적 정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특별히 선택한 수사에서만 유별나게 정의를 찾는다'는 뜻이리라.
'선택적 정의'에 따른 '선택적 정보'를 경쟁적으로 받아쓴 언론의 '선택적 보도'는 이른바 팩(pack) 저널리즘(일명 패거리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팩저널리즘의 폐해는 검찰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출입처에 의존한 보도일수록 두드러진다.  
선택은 프레임 전쟁의 핵심이다. 공정성 논란의 원천이기도 하다. 언론학자 로버트 엔트만에 따르면 프레임은 선택과 부각이다. 사회학자이자 정치 평론가인 토드 기틀린은 의미 조작자들이 언어와 시각적 수단을 써서 지속적인 인식과 해석, 표현, 선택, 강조, 배제를 통해 의미를 조작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의미조작자는 뉴스 생산자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12 中, 이소룡


저자에 따르면 언론은 '패거리 저널리즘'을 통해 또 다른 권력이 된다. 권력기관인 검찰을 통해 정보를 제공받고, 그 정보에 의존해 뉴스를 생산하고 하루아침에 '언론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대중은 이 프레임을 신뢰한다. 언론의 역할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다. 그 권력이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순 없다. 또한 진영논리(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념만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나 정파성(언론사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정권을 밀어주는 보도 행태)이 앞서면 객관성과 정확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검사도 분명히 책임 있는 당국자다. 다만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정권과 맞선 상황에서 인사권을 갖게 될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공정하게 수사했는지, 언론에 수사 관련 정보를 흘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한 번쯤은 짚어봤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오로지 사실에만 관심 있을 뿐 검찰의 수사 의도나 방식에는 관심 없다'는 태도는 언론으로서 무책임하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17 中, 이소룡



권력과 명예를 지나치게 찬양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속에 검찰의 위상은 아주 드높다. "하지만 검사는 판정을 하는 판사가 아니다." 이 말이 참 와닿았다. 검찰은 수사기관이자 소추기관일 뿐이다. 검사는 피고인과 함께 재판에 서는 한 당사자다. 검사도 틀릴 수 있고 검사도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그런 사건들도 많았다. 


만약 언론이 검찰에만 의존해 해당 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받아쓰기로 보도하는 것은 공정성과 정확성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법정에 서는 일인데 만약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검찰 또한 그 고통에 대한 책임을 결코 피할 수 없다. 또한 오보를 한 언론도 마찬가지다. 


저자에 따르면, 일간지와 방송사처럼 속보를 중시하는 언론은 검찰이 제공하는 수사 정보를 단독으로 보도하기 위해,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그냥 빠르게 보도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어떤 피해를 보든 말든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이다. 


저자는 검찰이 흘린 '표적수사'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의 '표적보도'를 비판하고 있다. 특정 인물을 겨냥하거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자극적인 내용, 범죄 혐의와 전혀 관계없는 피의자의 일상이나 개인정보, 가치관 등을 보도하는 세태 또한 비판한다. 



일단 언론의 팩트 전쟁이 시작되면 모든 게 묻혀버린다. 수사 의도나 방식,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한쪽으로 밀려난다. 언론은 오로지 개별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 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연히 대중도 팩트 프레임에 갇힌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17 中, 이소룡


언론은 권력기관이 아니다. 언론은 도리어 검찰, 경찰, 정권 등의 권력기관과 더욱 거리를 둬야 한다고 본다. 정보를 받는 것과 그 정보를 고스란히 믿는 것은 다르다. 정보는 정보일 뿐, 그 정보 자체가 진실일 수는 없는 법이니.  


저자는 "얘기하다 보니 길어졌다. 나도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검사들이 건네준 정보에 의존한 적이 많았으니. 검사 개개인과 검찰조직을 구분하고, 검사로부터 정보를 받되 검찰권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여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공정보도 투쟁 "회사를 지키는 것이 곧 공정?"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 언론자유 확장과 반비례하는 언론 신뢰도 하락은 언론의 권력화 및 무분별한 상업화의 산물로, 정파성과 왜곡된 경영논리가 주요 원인이다. 나는 오늘날 언론 위기를 △권력화 △과도한 상업주의 △공정성 결여 △이익집단화, 네 측면에서 바라본다. 
먼저 언론의 권력화는 언론집단의 권력화와 기자의 권력화로 구분할 수 있다. 언론사, 특히 언론시장에서 큰손인 이른바 주요 언론사는 민주화 이후 만개한 언론자유를 언론권력으로 치환하고, 정부에 대한 감시 및 비판 기능을 넘어 여론을 왜곡하며, 나아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기자 개인의 권력화는 채널A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검찰 같은 권력기관과 유착한 기자가 마치 자신이 출입처 권력을 공유한 양 행세하는 것이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62~63 中, 이소룡



저자는 몸담았던 00일보에서 한 기자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건을 꺼낸다. 대기발령을 통보받은 상태였던 50대 기자는 회사 인사팀에 찾아가 항의했고, 그날 밤 투신했다. 하지만 회사는 대기발령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해당 사건의 이유를 파헤치고 보도해야 했던 내부 기자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렇게 사건은 조용히 묻혔다. 저자는 언론사가 외부비판은 신랄히 하면서, 내부비판에 대해선 유난히 묵묵부답인 세태를 비판한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자기보호 본능일지 모른다. 어느 조직인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걸 반기랴. 그렇긴 해도 정의와 공정성 윤리를 외치면서 칼날 같은 잣대로 단죄를 일삼는 언론사가 안으로는 그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모순이자 자기 부정이 아닐 수 없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64 中, 이소룡


직장인 기자가 있고, 직업인 기자가 있다. 전자가 생활형이라면, 후자는 가치지향형이다. 전자가 순응형이라면, 후자는 저항형이다. 갈수록 직장인 기자가 늘고 있다.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세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그렇다. 언론사도 밥벌이하는 곳이다. 순탄하게 밥벌이를 하려면 조직에 순응해야 한다. 조직 논리에 따라야 한다. 그게 순리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68 中, 이소룡


바야흐로 언론 불신 시대다. 주로 기존 언론 또는 전통 언론이라 부르는 신문과 방송에 대한 불신이다. 누구는 이를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위기'라고 표현했다. 뭐, 유식한 척 영어 쓸 것 없다. 한마디로, 기자나 언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왜냐고? 기자가 회사에 충성하는 직장인으로 전락하고 기자정신도 사라졌으니까. 기사를 가지고 대놓고 장사하니까. 언론계 형편이 좋지 않으니 그럴 수 있다 쳐도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니까. 
(중략)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말끔히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사 잘 쓰는 것보다 광고 따오는 능력이 중시되면서다. 언제부터인가 취재 잘하는 기자보다 수익성 행사를 유치하는 기자가 우대받는 풍토가 조성됐다. 기자정신을 들먹이는 자는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나도 한때 공범이었다 p69~71 中, 이소룡



저자는 이후 00일보에서 부장, 차장까지 승진하며 위태로운 기자 생활을 이어간다. 그 과정 중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이 두 번째 파트에 기록돼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자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보도가치'과 '수익창출'이 계속해서 부딪히는 현실이다. 전자는 기자의 자존심이며 후자는 회사의 자존심이다. 물론 둘다 중요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진다. 실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현대의 언론이다. 


필자도 작은 언론사에서 일하고, 몇몇 언론사 대표들을 만나며 현 언론의 경영위기에 대한 얘기를 수차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언론을 왜 운영하는지에 대한 힘 빠지는 간증도. 주로 먹고살기 위해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젊은 기자에게 동기부여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글로 사람의 마음을 인간답고 정의롭게 변화시키는 것을 나름의 신조로 삼았던 필자로서는 힘이 빠지는 말이었다. 너무 철이 없는 탓일까.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여전히 철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저자는 수익을 위해 기사를 광고와 바꾸는 일,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조직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와 계속 부딪힌다. 슬픈 현실이다. 소설가 김훈이 말한 '밥벌이의 중요성'이 생각난다. 그놈의 밥벌이가 뭐길래, 우리의 마음까지 이렇게 말아먹는 걸까.


이후, '전직 기자의 한국 언론에 대한 비판과 고백 #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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