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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Oct 29. 2020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200명 여성들의 2차 세계대전 참전 회고록

전쟁은 끝나야만 한다... 살인, 폭력, 겁탈, 증오, 고통, 이별, 연민, 모든 걸 담은 이야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아픔을 망라한 200명 여성들의 2차 세계대전 참전 회고록


[글로 나아가는 이]




“우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했다. 전쟁의 세상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세상이었고, 전쟁의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세상, 다른 세상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14 中




이 책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쟁 이야기와는 다르다. 보통의 전쟁 기록은 참전한 남성들의 일화가 많지만, 이번 이야기는 실제 전쟁에 참전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기자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살아남은 200여명의 여성을 인터뷰해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 작품은 2015년 참신함과 뛰어난 흡입력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차 세계대전 : 제2차 세계 대전(Second World War, World War II)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치러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사자는 약 2,500만 명이고, 민간인 희생자도 약 3천만 명에 달했다.


여성들에게 전쟁은 더욱 참혹했다. 전쟁은 그녀들의 몸과 정신을 회생불가하게 만들었다. 총머리 들기조차 버거웠던 소녀들은 저격수가 돼 적군의 머리를 쏘기도 하고, 또 한번은 쓰러진 적군 부상자를 들춰 업고 돌아와 치료해 주기도 했다. 전쟁터에는 증오와 사랑이 공존한다. 과연 전쟁은 그녀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이를테면 ‘우리는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같은 말, 이미 수십미터에 달하는 녹음테이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 역시 꼼꼼하게 수첩에 적는다. 녹음테이프만 벌써 네 다섯 개다…


무엇이 나를 돕는 걸까? 그건 바로 우리가 함께 사는 데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행복도 있고 눈물도 있다. 우리가 고통스러워할 줄도,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줄도 안다. 고통은 남루하고 힘겨운 우리네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아픔, 그건 우리에게 하나의 예술이다. 우리 여자들이 바로 이 아픔과 고통의 길을 향해 용감하고 당당하게 나아갔음을 나는 밝혀야만 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20 中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곳. 그곳에선 역사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사람을 다스린다. 내 글의 폭을 넓혀야겠다. 전쟁에 대한 진실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책을 써야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물음, ‘사람은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 이 물음을 이제 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23 中




전쟁은 필요악일까?...... 인간의 역사는 끝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전쟁 후에는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고, 승자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돼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한 개인과 인간의 입장에서, 그리고 여성과 약자의 입장에서, 전쟁은 이기심이 집합된 폭력일 뿐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빌미로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과 권위를 챙겼으니까...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전쟁도... 결국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29 中



그녀들의 증언은, 전쟁의 순간 순간을 느끼게 했다. 마치 전쟁터에 직접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살인, 폭력, 겁탈, 증오, 고통, 이별, 연민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아픔을 총 망라한 현실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고, 생전 입어보지 않은 군복을 입고, 그곳에서 생리를 하고, 밥과 빨래를 하고, 임신을 하고, 또 사지와 동료,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남편까지 잃게 된다.




“어느 날 백병전이 시작됐어...... 뭐가 기억나느냐고? '오도독오도독' 소리. 그 소리가 기억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방에서 오도독오도독하는데, 사람들 연골이 으스러지고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가는 소리였지. 그리고 짐승의 울음 같은 처절한 비명들...... 백병전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전우들을 따라다녔어. 아주 약간 뒤처져서. 그러니까 거의 옆에서 따라다닌 거야.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일들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데...... 남자들이 서로를 찔러 죽이고, 숨통을 끊어놓고 뼈를 부러뜨렸어. 총검으로 입이고 눈이고 닥치는대로 찔렀지...... 심장을 찌르고 배를 찌르고......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 나는 못해...... 표현을 못하겠어...... 한마디로,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몰라. 집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여자들도 아이들도 아무도 몰라.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니나 블라디미로브나 코벨레노바' 상사 - 前 보병중대 위생사관의 증언 中





그래서 서두르는데 남은 부상자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거야. 눈으로 배웅하면서. 그들의 눈 속엔 체념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지...... 그리고 애원했어.


“형제들! 자매들! 제발 우리를 독일군 손에 넘기지 말아요. 차라리 우리를 죽이고 가요.”


아,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가슴이 정말 찢어지더라고. 어느 정도 몸을 가누는 부상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따라나섰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차마 그들을 못 보겠더라고...... 그때 나는 너무 어렸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中



문득 음악 소리가 들리면... 아니면 노랫소리... 여자 목소리도... 그러면 그 때 그 느낌이 되살아나. 그때랑 비슷한 뭔가가 느껴져...


전쟁영화를 봐도 사실이 아니고 책을 읽어도 사실이 아닌거야. 그러니까, 그게 달라... 뭔가가 달라. 그렇다고 전쟁을 직접 겪은 내가 이야기하면 정확하냐. 그것도 아니거든. 전쟁은 그렇게 끔찍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어. 때론 전쟁터에서 맞는 아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전투가 있는 날 아침이면... 주위를 보며 생각했지. '어쩌면 아침을 맞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아,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다운데... 공기도... 햇살도...'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中




“남편이 다른 병사들과 정찰을 나갔어. 이틀을 기다렸어...... 이틀 동안 한숨도 안 자고 기다렸지...... 꾸벅꾸벅 졸다가 인기척에 눈을 뜨니 남편이 내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가서 눈 좀 붙여.' '잠자기 아까워요.'

아, 그리자 감정이 복받치면서...... 너무도 애달프고...... 가슴이 미어졌지......


정말 많이 잊어버렸어. 거의 다 잊었다고 할 정도로.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않을 줄 알았는데 .


우리는 이미 동프로이센을 지나 이동중이었고, 다들 승리를 이야기 했어. 그런데 그만 남편이...... 남편이 죽어버렸어...... 파편에 맞아서...... 즉사였어. 뚝딱하는 사이의 죽음. 전사자들이 실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나갔지...... 남편을 꼭 끌어안고 내놓지 않았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中





“전사자들 중에 마을 청년이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청년 어머니가 장례식에 오신 거야. 서럽게 우시더라고. '아니고, 내 새끼! 네가 살 집도 지어놨는데! 젊은 색시를 데려오겠다고 해놓고! 이제 차가운 땅속이 네 색시가 됐구나......'


부대 전체가 조용히 서서 침묵을 지켰어. 어머니가 마음껏 울도록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지. 잠시 후 어머니가 고개를 들더디 당신 아들만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는 걸 아셨어.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 죽어 누워 있는 것을 보신 거지. 그러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그 죽은 병사들을 위해 또 서럽게 우시는 거야, 자기 아들도 아닌 그 젊은 이들을 위해서 말이야. '아이고 내 새끼들! 너희 어머니들은 너희들을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땅에 묻히는 것도 모르는데! 아이고, 땅속이 얼마나 춥고 차가운데. 이런 엄동설한에 이게 무슨 일인꼬. 내가 너희 어머니들을 대신해사 울어주마. 너희 전부를 가엾게 여겨주마. 내 새끼들아... 불쌍한 내 새끼들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中




“나는 생각했어. ‘독일 땅에 들어서면 내가 어떻게 나올까? 우리 병사들은?’ 우린 놈들이 한 짓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니까......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어떻게 참아낼 수 있을까? 그 분노를 다스리려면 얼마만큼의 자제력이 필요한 걸까? 한 마을에 도착했어. 아이들이 나와 노는데 많으 굶은 것 같고 딱해 보이더라고. 아이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면서...... 슬금슬금 기더군...... 그런데 내가, 놈들을 그토록 증오하던 내가...... 어떻게 한 줄 알아? 독일 아이들에게 먹을 걸 나눠준 거야. 그것도 우리 병사들에게 부탁까지 해가며, 전투식량 남은 거고 설탕 조각이고 다 모아서 아이들에게 줬다니까. 당연히 놈들이 한 짓을 잊은 건 아니었지……


(중략)


우리는 아이들을 먹이고 치료도 해줬어. 아이들을 쓰다듬어도 주고…… 처음에 얼떨결에 쓰다듬고는…… 기겁을 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세상에, 내가! 독일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니…… 심장이 떨리고 입안이 바싹 타들어가더라고 하지만 곧 아이들에게 익숙해졌지. 아이들도 우리에게 익숙해졌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中



위의 증언들은 모두 참전했던 여성들의 증언이다. 아직도 그녀들은 전쟁의 참상을 다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전쟁을 겪지 못한 필자는 그 고통을 다 느낄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더욱 깊게 깨닫게 된 건, ‘전쟁’은 결코 이 땅에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필자가 사는 대한민국은 현재 전세계 중 유일한 분단 국가다.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고, 이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남북의 국민들은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념과 분쟁을 떠나, 이제는 한 ‘인간(人間)’의 입장에서 전쟁을 외면하고 지워내야만 한다. 인간에게는 관계가 존재한다. 나만이 아니라, 전쟁으로 고통받을 상대의 삶을 곰곰이 생각하고 이해할 때 전쟁은 비로소 멈추게 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자 부모이고, 또 사랑하는 아내이자 남편, 친구, 동료이다. 우리가 우리를 왜 죽여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는가. 전쟁 말고는 정말 방법이 없는가. 끝까지 고심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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