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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pr 12. 2019

'소년이 온다'를 읽고

518 그날의 현장을 그린 한강의 소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아무것도 아닌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같은 걸까.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가지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소년이 온다' 中, 한강-



소년이 온다



표지가 아름답다. 봄에 잘 어울릴 듯한 꽃잎들. 어떤 소년이길래, 어떤 환영이길래, 저렇게 아리따운 꽃밭이 펼쳐져 있는 걸까. 그런데 꽃의 색이 허옇다. 하얗기보다는 허옇다. 하얀 꽃이라면 많겠지만 왠지, 왠지 모르게 허연 꽃은 흔치 않다. 저 꽃들 사이사이에 번진 어둠들에 신경이 쓰인다. 하얀 꽃 틈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오는 소년을 만나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1980년 봄, 꽃잎이 흩날리던 광주 땅에는 약 150발의 총성이 울렸다. 새 군부가 권력을 잡기 위해 탄압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에겐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알려져 있는 사건, 불과 4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이야기는 저기 머나먼 바다 건너 타국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이 탄압은, 같은 나라, 같은 민족에게 자행된 무자비한 살상이었다는 점이다.






학교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려고 혼자 집을 나선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거리에 들어찬 무장 군인들이 어쩐지 무서워 너는 천변길로 내려가 걸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손에 든 양복 입은 남자와 감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몇 차례 위쪽 도로에서 들리더니, 총을 메고 곤봉을 쥔 군인 셋이 언덕배기를 타고 내려와 그 젊은 부부를 둘러쌌다.  누군가를 뒤쫓다 잘못 내려온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사람이 온다' 中




나는 당시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살아계셨던 어머니, 아버지, 혹은 그 현장에서 실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의 입을 통해 그날의 숨결을 느낀다. 문단을 읽고, 다시 한 번 그날, 광주 땅에 불었던 피바람을 생생히 마주한다.  


증언에 의하면 무장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의 머리를 소총으로 내려치고, 발로 밟았다고 한다. 이는 현세의 한국에서는 쉽게 겪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저 먼 땅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이런 무자비한 폭력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나라에선 아니다. 군인이라 하면 국가를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국가란 곧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행정과 규칙을 위해 법과 정부가 존재하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군부에 의해서 자국의 국민들이 무자비한 폭행과 살인을 당했다는 건 어떤 쪽으로 생각해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이제 30년이라는 세월밖에 살지 않은 내가 당시의 국정상황을 전부 알 순 없다. 다만  건 정권을 가진 이와 그 정권을 뺏으려 하는 이의 이해관계 속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피를 흘렸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흘렀어도 정말 이해가 되지 않고, 여전히 가슴에 답답함이 남은 이야기다.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던 지휘관들.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화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위가 확대되었을 당시, 군은 거리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인도적 이유로 국제법상 금지되었던 납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박정희의 양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전두환은, 만에 하나 도청이 함락되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보내 도시를 폭격하는 수순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단발포 직전인 5월 21일 오전, 군용 헬기를 타고 와 그 도시의 땅을 밟는 그의 영상을 보았다. 젊은 장군의 태연한 얼굴, 성큼성큼 헬기를 등지고 걸어와 마중 나온 장교와 힘차게 악수를 나눈다.

-'소년이 온다' 中-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횡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고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년이 온다' 中-




차별과 편견, 폭력을 일삼는 인간이 있다. 반면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고 서로를 돕고 살리려는 인간도 있다. 인간의 본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같은 상황 속에서도 서로 다른 행동을 하는 걸 보며 느낀다.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폭력을 행한 이와 폭력을 당한 이는 모두 인간이었다. 그들의 의지는 서로 엇갈린 것이다.


당시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이끄는 어떤 힘에 의해 움직였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교육이든, 환경이든, 의지든, 문화든 말이다.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걸 에너지라고 표현했을 때, 이 에너지는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 힘에 의해 우린 때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니까.


또 한가지 든 생각은,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차별과 편견이었다. 어떠한 기준도 없이 수많은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혼란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믿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권력 속에서 헤엄치는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요즘 따라 생명과 사랑을 토대로 올바른 기준이 세워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나의 큰 기준이 서기 위해선,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 국민들이 스스로 올바른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바로 서야 할 것이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 해줄 수 있습니까?
'소년이 온다' 中

우리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걸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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