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택배 박스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 어머니의 택배가 도착했다. 박스 안에는 김치와 만두 그리고 우려먹는 찻거리들이 들어있다. 이는 나의 유일한 식량이자 연명 거리다. 스무 살부터 쭉 밖에 살았던 내게 어머니는 항상 무언가를 보내주셨다.
한 때는 그 정성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정신없이 술을 퍼마시고 들어오면 기숙사 방 앞에는 작은 택배 박스가 놓여 있었다. 간식이었다. 난 박스를 방 한 구석에 넣어두고 입이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먹곤 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 어머니는 내게 필요한 것들을 늘 택배로 부쳐주셨다.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하면서는 김치와 찬거리를,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보내주신다. 만약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영양실조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10년 가까이 자취를 했는데도 '끼니를 챙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어머니가 더 대단하다고 느낀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렇겠지만, 본인 끼니 챙기는 것도 힘든데 자식의 입은 더 그럴 테니까. 게다가 이미 손을 떠난 다 큰 자식은 더욱이.
생각해보면 어릴 적 어머니가 차린 밥상은 그냥 '밥상'이 아니었다. 그건 생명이었다. 어머니 삶의 일부를 통째로 도려내 바친 생명이었다. 하얀 쌀밥에는 여린 손으로 물을 맞추던 젊은 어머니의 손길이 담겨 있었고, 고소한 된장찌개에는 파와 두부를 썰어 넣었던 신비한 힘이 들어 있었다.
이젠 어머니의 품에서 떠난 지 오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밥을 통해 항상 아들의 삶을 챙겨주고 계신다.
"없어도 먹고 싶은 건 참지 말고 꼭 사 먹어~ 굶지 말고. 부쳐줄게."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항상 날아와 귀에 꽂히는 말. 어머니의 밥상에는 큰 날개가 달린 것이 틀림없다.
▲삶은 밥을 닮는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규칙적이고 정갈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많지는 않더라도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요리 레시피 몇 개 정도는 외워두면 좋다는 것. 그리고 너무 허겁지겁 좇기듯 먹지 않을 것. 끝으로 가능하다면 혼자 말고 누군가와 같이 얼굴을 마주 보며 먹을 것. (물론 너무 불편한 사람은 제외하고다)
밥은 삶 그 자체다. 얼마 전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고시에 좌절된 주인공은 고향에 내려가 삼시 세 끼를 차리고 정리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밭에서 직접 딴 건강한 채소로 음식을 요리하고, 맛있게 먹고, 정리하는 날들로 하루를 채운다. 다른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식사에 집중한다.
이처럼, 밥을 준비하는 시간과 먹는 시간 그리고 밥상을 정리하는 시간은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빨리 준비하고 허겁지겁 먹고 후다닥 치운다고 좋은 식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우리는 삶이라는 밥상에 맛있는 무언가를 차리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그렇게 차린 후에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맛있게 먹어 해치운다. 막상 먹을 때는 치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열렬하다. 하지만 이내 배가 부르고 맛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남은 음식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버려 버린다. 그리고 밥상에, 내가 남긴 찌꺼기들을 치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이 일련의 과정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은 밥상은 어떻게 태어나고 사라지는지 한 번 꼭 살펴보기를. (그전에 내 밥상이나 잘 챙겨야지...)
다들 굶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기를. 꼭. 꼭.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