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의 미학

욕심을 닮은 오기가 아닌 순수를 닮은 끈기의 힘

by 글로


어김없이 찾아오는 주말. 주말에는 자주 비가 내린다. 의식을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정말 그렇다. 생각해보면 봄비는 매번 내렸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코로나19라는 녀석을 만나기 이전에도.


어쩌면 대단한 일이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같은 계절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같은 소리를 내며 내릴까. 봄비는 끈기가 있다. 매년 같은 시기에 찾아와 똑같은 울림으로 마음을 차분히 만들어준다.


익숙한 것들은 끈기가 있다. 익숙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끈기가 필요하다. 삶에 익숙한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를 꾸준히 해 왔다는 증거다. 얼마 전 참석한 소모임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끈기, 꾸준함 만큼 위대한 능력은 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존버는 승리하죠(ㅎ.ㅎ)."


맞다. 요즘은 이 끈기의 힘을 더 크게 느낀다. 기존에 누렸던 것들이 이젠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선 변화하는 일상을 지켜내는 끈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은 일상의 소중함을 자주 되새긴다. 작은 호의와 운에도 "감사하다, 잘됐다, 잘 될 거야"라고 표현한다. 이 말들은 누군가에겐 다시 해줄 수 없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도 이런 단비 같은 말들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우리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으며,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인생 최후의 순간인 지금.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끈기가 절실하다.




끈기를 지켜내기 위해선 그만큼 질 좋은 휴식과 여가를 가져야 한다. 때로 끈기에 대한 보상은 지나친 유흥과 사치로 변모하기도 한다. 순간은 즐거우나 지나고 나면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일장춘몽'처럼 말이다.



심신이 지치고 끈기가 필요할 땐 잠시 생각을 멈추고 산책을 한다. 그리고 차분한 음악을 듣는다. 천천히 걸으며 풀과 나무, 강, 하늘을 보다 보면 끈기를 넘어선 오기가 하나 둘 드러난다. '끈기'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면, 오기는 내게 주어진 일은 하지 않고 사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끈기는 막 걸음마를 땐 아이의 걸음과 같다. 하나씩 하나씩,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새롭고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순간의 촉감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걸을 때마다 넘어질 때마다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


아 이렇게 걸으면 넘어지는구나, 아 내가 여기 근육이 약하구나, 이렇게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편하구나 하고 배운다. 그러다 걸음이 익숙해지면 한 번씩 뛰어 보기도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매 단계마다 '지나친 오기'는 금물이라는 점. 욕심은 항상 우리의 한 걸음을 멈추게 할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



봄비가 내린다. 한 줄기 한 줄기 얇게 내리는 가락 같다. 이 봄비가 물 웅덩이를 만들고 냇가를 짓는다. 냇가가 모여 강이 되고, 강은 흘러 바다로 향한다. 하지만 바다가 태어났다고 해서 봄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봄비들은 한데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바다의 파도는 봄비들의 울림이다.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는 작은 빗방울들의 외침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움은 누군가 비를 내리는 끈기를 여전히 놓지 않았기에 계속되고 있다.


p.s) 필자의 생각에, 존버와 끈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끈기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도적으로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라면, 존버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기보다 최악을 막기 위해 벼랑 끝에서 버티는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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