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지금의 나는 그때 나의 영웅이었다

오롯이 견디었고, 견뎌야 할 시절들

by 글로


3주 만에 말음표게임이 열렸다. 지난 2주간 운영진과 함께 모임을 리뉴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주부터 바뀐 방식은 '물음표카드'와 '느낀점'이 생겼다는 점.


사실 이 두 요소는 모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부활했다. 조금 더 게임처럼 대화를 재밌게 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앞으로 규칙이 잘 정착돼 모임이 더욱 박진감 있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스터디카페로 가는 길, 간만의 모임을 축하라도 하듯 함박눈이 내렸다. 거리거리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니, 오늘 모임에선 어떤 말이 내 안에 쌓일까 기대가 됐다. 익숙한 이들 그리고 오랜만에 나온 사람들. 외로운 13인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대화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임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질문. 내게 질문카드를 건넨 A군은 20살로 시기를 딱 정해주었다.


"20살의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준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갔다. 20살의 나는 당시 다니던 대학 캠퍼스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한창 연애 사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숙맥이었던 고등학생 티를 벗어버리고 성인이란 이름으로 '여자'와 '사랑'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각해보면 참 당당했다. 쉬지 않고 연애를 하면서도, 모두 진심이라며 주변의 시선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땐 많이 외로웠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모든 걸 혼자 헤쳐 나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 의지하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했고, 유일한 안식처로 삼았던 곳이 연인이었다. 20살의 혈기와 심리적 안정을 모두 채워줄 수 존재가 없었으니까.


만약 지금의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된다. 20살의 내가, 철없던 내가 오롯잍 겪어야만 했던 일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

그래도 상상해 본다. 32살의 내가 20살의 나를 만난다면... 구체적으로 상황을 그려본다면.


저기 앞에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캠퍼스의 한 골목을 돌아 내려오는 나와 마주친다면. 내가 내 옆을 스쳐간다. 지금의 나는 잠시 멈춘다. 2초 후, 나를 부른다. 나에게 다가간다.



"중희야"

"네?"

"나, 00학번 선배인데, 여기 어떤 선배가 너 보면 전해 달라고 하더라."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의 손에 10만 원을 쥐어 준다)

"분명 필요할 때가 있을 거래"

"...?"


그렇게 나는 그와 멀어져 간다. 서서히.


어리석었던 사랑도, 찬란했던 시절도, 모든 게 열정만으로 가득했던 시간도. 오롯이 겪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내가 겪어야 할 모든 일들을 다시 오롯이 맞아야만 한다.


그때 나의 영웅이었던 지금의 나에게 한 마디 격려를 건넨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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