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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r 01. 2023

#1 사랑은 어떻게 소멸하는가

[연재] 사랑, 낭만 혹은 현실

이별 후에 사랑은 어떻게 소멸되는가

나는 그녀가 가지고 내려온 짐들을 택시에 실어주었다.



"나 갈게."

  

뒤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까운 인연이라도, 정말 별 것 아닌 일에 남이 돼 버리기도 하니까. 우린 약 2년을 만났다. 같이 살다시피 했고 거의 매일 붙어있었다.  


"도준아. 나... 곧 유학 갈 것 같아."

"아, 진짜? 잘됐다. 너 유학가고 싶어 했잖아."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녀 유학을 떠난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그 유학인가. 그럼 우린 헤어지겠지." 소희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그분들은 그녀가 좋은 학위를 받기 위해 해외에서 공부하기를 바랐고 그녀는 부모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희는 평소에도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녀의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아 기뻤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음... 잘 모르겠어."

"헤어지지는 말고 자유롭게 지내다가 돌아오면 다시 만날까?"

"그래. 그러자."


해맑게 아무렇지 않은 듯 소희가 말했다. 아니, 우리는 서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슬퍼해도 울고 불고 해도 그녀는 떠날 것이고 나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녀가 떠난 후 방을 정리했다. 곳곳에 남은 흔적들이 오래된 장식처럼 느껴졌다. 그들과 나는 이제 그녀가 없는 곳에 남겨졌다. 이 작은 원룸 하나에 이렇게 많은 추억이 스밀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희는 영국행 비행기를 탔다. 처음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종종 소식을 전해왔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연락은 뜸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어느 날 늦잠을 잔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핸드폰도 집에 둔 채 급히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 수업은 원래 없었던 보강이었다. 한참 방에서 자고 있어야 할 내가 없자 놀란 소희는 나를 찾아 헤맸다. 친구들에게 수소문을 하고 경찰에 신고도 했다.


수업이 끝난 후 내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퉁퉁 부운 눈으로 달려와 안겼다. 내가 납치당한 줄 알았다며 서럽게 울었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고 한참을 다독였다.

 

"괜찮아. 소희야. 나 어디 안 가. 네 옆에 있을 거야."


부모님 말고 누군가 나를 이렇게까지 걱정해 준 건 처음이었다. 사랑받는다는 게 이런 걸까? 생각했다. 진짜 결혼이란 걸 하면 이런 관계가 되는 아닐까 상상했다. 상대가 마음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 조금만 상처가 나도 그 모든 마음을 다 헤집어야만 하는 그런 아픔 말이다.





소희가 떠난지 1달이 될 무렵 나는 혼자 배낭여행을 다. 여행 20일 째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소희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흐느끼듯 떨리고 있었다.


"준아. 나... 지금.. 너무 무서워."

"왜? 무슨 일인데, 소희야. 천천히 말해봐."


그녀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고, 버스를 세워 달라고 해도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계속 다독였다. 멀리서. 그것도 아주 먼 나라에서.


다행히 잠시 후 그녀는 안정을 찾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울먹임을 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준아... 나 가 너무 보고 싶어..."


그 말을 듣자, 한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우린 한참을 울기만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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