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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Sep 03. 2023

[여름기행2] 강원의 무릉도원, 동해

동해 바다는 잘 있습니다, 당신도 잘 있습니다 [2023]

아쉬운 단양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길, 외할머니께선 아쉬운 얼굴로 손에 빳빳한 용돈 얼마를 쥐어주시며 "또 와"하고 해맑게 말씀하셨다. 단양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겹쳐졌다.


누가 그랬다. 부모님의 뒷모습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면, 이제 부모가 될 준비가 된 거라고. 


정말일까? 내 삶을 희생해 누군가에게 나눠줄 준비가 된 걸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지만 마냥 불편한 기분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매말랐던 가슴에 파도의 손길이 닿은 듯했다.





▲무릉별유천지, 지역을 살리는 좋은 생각들


동해로 가는 길. 오래전 떠났던 강원도 배낭여행이 떠올랐다. 가진 것 없던 대학 시절, 아픈 인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홀로 떠난 여행이었다. 20일여 기차를 타고 달리고 걷고 또 걸었다.


인연의 상처를 완전히 비울 순 없지만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 생긴 틈을 통해 아픔을 마주했다. 일상의 얽매임 없이, 걷고 싶을 때 걷고 머무르고 싶을 때 머무를 수 있어 좋았다.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건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동해 무릉계곡에서


강원도는 여러모로 매력인 곳이다. 어디서나 높은 산과 강,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동해는 처음 가보는 터라 무작정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매력적인 곳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무릉별유천지. 이곳은 액티비티한 활동으로 최근 동해에서 주목받는 테마파크로, 쌍용C&E가 석회석을 채굴하던 곳을 동해시에서 새롭게 탈바꿈시켜 조성한 관광지였다.


(왼쪽) 무릉별유천지 전망대에서, (오른쪽) 동해 디저트 명물 시멘트 아이스크림

무릉별유천지의 매력은 크게 3가지다. 탁 트인 풍경과 4개의 재밌는 액티비티 체험, 그리고 귀여운 시멘트 아이스크림까지.


개인적으로는 지역의 쇠퇴한 자원에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생계를 위한 삶의 현장이 이젠 과거를 조명하는 하나의 놀이터가 돼 있었다. 동해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애정 깊은 시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방 도시가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지역의 문화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가꾸어야 할 문화를 돈과 기술로 무작정 만드려고 하니 색깔을 잃고 삭막함만 늘었다. 고유한 문화가 아닌 거대한 문명이 집어삼킨 시대.


지역이 살아갈 길은 무엇일까. 사람의 관심이 없었다면 그냥 사라졌을지도 모를 곳들이 너무 많다. 지역을 살린 현장에서 진짜 살기 좋은 동네는 어떤 곳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동해 바다는 잘 있습니다


동해 바다에 도착했을 때, 해안가에는 짙은 안개와 함께 너울성 파도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방파제에 치는 파도는 마치 어머니가 큰 잘못을 한 자녀의 엉덩이를 강하게 매질하는 모습이었다. 해안가 곳곳에는 콘크리트와 바다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파도가 물거품을 물고 달려와 서서히 스며드는 백사장과는 달랐다.


망상 해수욕장 앞에는 많은 피서객들이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멍하니 바다만 보고 서 있었다. 구릿빛 몸을 뽐내듯 손짓하는 구조요원은 호루라기를 불며 바다에 들어가려는 피서객들에게 경고를 줬다.


바다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었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아쉬운 마음에 동해 바다는 시로 가슴에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8월의 동해, 망상 해변
동해 바다는 잘 있습니다
-글로 나아가는 이
동해 바다는 잘 있습니다. 파도의 인사는 거칠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맑았습니다. 당신과 보고 싶은 울림이었어요. 욕심의 삶이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파도는 존재만으로 시이고 음악이며 과학이었습니다. 그리고 파도는 이미 영원을 살고 있었습니다. 파도처럼 살고 싶었어요.
나의 여름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한 풀 꺾인 바람과 함께 저물어 갑니다. 순간을 사랑하다 보면 과거, 미래와 같이 빛바랜 시간들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없어도 되는 것이겠지요. 일상이란 이름으로 우릴 잠식해 버리고 때론 삶의 의미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요. 하지만 완전히 내버릴 수 없는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죠. 다 알 순 없지만 너무 많은 현실을 지고 가진 말아요. 부디 우리의 삶이 지루한 행복 같은 문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없이 부서지지만 아름다운 파도처럼.





바다를 뒤로 하고 근처 서점에 들렀다. 새로운 동네에 가면 늘 서점에 들른다. 지역 서점에 새로운 책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그 동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향기가 있고, 그리고 서점의 주인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


선물로 가져갈 책을 고르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일전에 자주 읽었던 이병률 시인의 작품이었다. 제목은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잘 어울렸다. 그 문장은 동해가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고, 내가 동해에게 써주고 싶은 편지였다.


"눈보라가 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

(이별의 원심력 中, 이병률 시인)


나는 답하고 싶었다.


"나만의 당신도 아직 여기 작은 바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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