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떠날까 했는데 아직 아쉬운지 거센 비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이번 여름은 여러모로 내게 뜻깊은 시간이었다.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으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그래서 이 삶에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깨닫는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다.
바라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지게 된 것들. 늘 고민과 불평거리였지만 언젠가부터 이뤄진 일들까지.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다른 무엇보다 이런 현상들을 스스로 인지했을 때다.
어쩌면 내 삶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크게 받는다.
충북 단양의 전경
▲제3의 고향 '단양', 대자연의 오케스트라
휴가의 첫 행선지는 단연 외할머니댁이 있는 단양이었다. 단양은 내게 심적으로 굉장히 친근감이 높은 동네다. 약 13년 전 외할머니께서 서울을 떠나 귀촌하신 이후부터는 휴가나 명절 때마다 꼭 방문한다.
단양의 매력은 바로 '대자연'이다. 기암절벽 사이로 흐르는 청풍호와, 온 하늘을 뒤덮을 듯 곧게 솟은 산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관광 도시인만큼 패러글라이딩이나 래프팅, 낚시 같은 레저 스포츠도 많이 발달돼 있다.
단양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
왼쪽=사인암, 오른쪽=단양 사동리 계곡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
물론, 이런 것들도 좋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따로 있다. 늦은 밤, 할머니댁의 다락방에서만 누릴 수 있는 풀벌레 소리와 흙냄새 그리고 온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대자연의 오케스트라.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가슴이 눈 녹듯 편안해진다. 글도 잘 써질뿐더러 잠이 솔솔 온다. 오랜 서울 생활로 각박해진 마음이 다 풀어지는 것만 같다.
또 한 가지, 계곡이 일품이다. 난 체질상 열이 많아 냉수마찰을 자주 하는데, 단양 계곡에 풍덩 빠지는 순간 몸을 지배하던 열꽃과 함께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전부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단양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인지 얼마 전 어머니께 이런 농담까지 했다.
"서울살이 접고 단양에 내려가서 아르바이트하고 글 쓰면서 살까 봐요."
"그럼, 그러면 정말 좋지. 나도 그러고 싶네. 우리 그렇게 할까?(웃음)"
예전 같았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지.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라고 하셨겠지만, 근 몇 년 새 큰 병을 치러서인지 어머니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듯 너그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그러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을 해봄으로써내가 원하는 삶의 윤곽이 조금 더 선명해진 것같아 뿌듯했다.
▲나의 하늘이 저물 때, 우린 어른이 된다
단양에서의 휴식은 꿀 같이 달지만, 그건 단양이 내게 삶의 터전이 아니어서 그렇다. 도시인이 느끼는 시골의 편안함은 잠시잠깐이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입장이 다른 것이다. 시골이 삶의 터전인 이들에게는 내가 느낀 모든 자연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가족들은 외할머니의 안위를 우려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혼자 잘 계시지만 앞으로 더 연세가 드시면 거동이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근래 어머니와 이모는 더 자주 내려가 할머니를 챙긴다.
(왼쪽) 단양 사동리 계곡과 (오른쪽) 외할머니
그런 어머니와 이모의 모습을 보면서 죄송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낀다. 나라면 훗날 저렇게챙겨드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난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는 생각. 하늘 같았던 부모님의 보살핌으로자라났지만, 언젠가 세월의 흐름에 쇠약해진 부모님의 모습을 맞이하게 되고 우린 모두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미우나 고우나 서로 의지하며 함께 자라나야 하는 인연이니까.
외할머니댁 앞 테라스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20대 때는 몰랐지만 요즘은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도 그동안 꽤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물론 긍정적인 면에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사한 점은 나의 하늘인 두 분이 여전히 건강히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는 것. 이것만큼 더 감사할 일이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