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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ug 25. 2023

[여름기행1] 제3의 고향 '단양', 이곳에 살으리랏다

나의 하늘이 저물 때, 우린 어른이 된다 [2023]

여름이 떠날까 했는데 아직 아쉬운지 거센 비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이번 여름은 여러모로 내게 뜻깊은 시간이었다.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으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그래서 이 삶에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깨닫는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다.



바라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지게 된 것들.  고민과 불평거리였지만 언젠가부터 이뤄진 일들까지.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다른 무엇보다 이런 현상들을 스스로 인지했을 때다.


어쩌면 내 삶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크게 받는다.  


충북 단양의 전경




▲제3의 고향 '단양', 대자연의 오케스트라


휴가의 첫 행선지는 단연 외할머니댁이 있는 단양이었다. 단양은 내게 심적으로 굉장히 친근감이 높은 동네다. 약 13년 전 외할머니께서 서울을 떠나 귀촌하신 이후부터는 휴가나 명절 때마다 꼭 방문한다.


단양의 매력은 바로 '대자연'이다. 기암절벽 사이로 흐르는 청풍호와, 온 하늘을 뒤덮을 듯 곧게 솟은 산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관광 도시인만큼 패러글라이딩이나 래프팅, 낚시 같은 레저 스포츠도 많이 발달돼 있다.


단양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
왼쪽=사인암, 오른쪽=단양 사동리 계곡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

물론, 이런 것들도 좋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따로 있다. 늦은 밤, 할머니댁의 다락방에서만 누릴 수 있는 풀벌레 소리와 흙냄새 그리고 온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대자연의 오케스트라.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가슴이 눈 녹듯 편안해진다. 글도 잘 써질뿐더러 잠이 솔솔 온다. 오랜 서울 생활로 각박해진 마음이 다 풀어지는 것만 같다.



또 한 가지, 계곡이 일품이다. 난 체질상 열이 많아 냉수마찰을 자주 하는데, 단양 계곡에 풍덩 빠지는 순간 몸을 지배하던 열꽃과 함께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전부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단양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인지 얼마 전 어머니께 이런 농담까지 했다.


"서울살이 접고 단양에 내려가서 아르바이트하고 글 쓰면서 살까 봐요."

"그럼, 그러면 정말 좋지. 나도 그러고 싶네. 우리 그렇게 할까?(웃음)"


예전 같았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지.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라고 하셨겠지만, 근 몇 년 새 큰 병을 치러서인지 어머니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듯 너그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그러려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을 해봄으로써 내가 원하는 삶의 윤곽이 조금 선명해진 것 같아 뿌듯했다.   




▲나의 하늘이 저물 때, 우린 어른이 된다


단양에서의 휴식은 꿀 같이 달지만, 그건 단양이 내게 삶의 터전이 아니어서 그렇다. 도시인이 느끼는 시골의 편안함은 잠시잠깐이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입장이 다른 것이다. 시골이 삶의 터전인 이들에게는 내가 느낀 모든 자연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가족들은 외할머니의 안위를 우려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혼자 잘 계시지만 앞으로 더 연세가 드시면 거동이 불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근래 어머니와 이모는 더 자주 내려가 할머니를 챙긴다.


(왼쪽) 단양 사동리 계곡과 (오른쪽) 외할머니


그런 어머니와 이모의 모습을 보면서 죄송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낀다. 나라면 훗저렇게 챙겨드릴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난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는 생각. 같았던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자라났지만, 언젠가 세월의 흐름에 쇠약해진 부모님의 모습을 맞이하게 되고 우린 모두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미우나 고우나 서로 의지하며 함께 자라나야 하는 인연이니까.


외할머니댁 앞 테라스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20대 때는 몰랐지만 요즘은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도 그동안 꽤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물론 긍정적인 면에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사한 점은 나의 하늘인 두 분이 여전히 건강히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는 것. 이것만큼 더 감사할 일이 어디 있을까.



"나의 하늘이 저물 때, 우린 비로소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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