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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Jun 28. 2024

#6 캠퍼스, 낭만 혹은 현실

[연재] 사랑, 낭만 혹은 현실

소희와의 마지막 연락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우린 서로에게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영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난 다시 학교 생활로 돌아왔고 짙었던 만남도, 잊기 위해 떠난 여행도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동안 기억 속을 헤맸다. 지나친 감상이었을까. 그리움과 외로움을 한동안 붙잡고 있었다.     


생성 AI '달리'가 그린 이미지


나의 20대는 늘 두 개의 감정 속에 살았다. 무엇이 나를 그리로 이끌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두 감정에는 어릴 때부터 강하게 갈망했던 욕구가 스며있었다. 지우고 싶은 기억과 잊고 싶은 감정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만 그건 가슴속 상처들을 숨기기 위해 덮어놓은 반창고에 불과했다. 그런 모습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사랑하면서도 경계하고 믿고 싶지만 믿지 못했다. 그래서 자꾸 거리를 뒀다. 배회하는 이방인처럼.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만 같았다. 늘 사랑의 대상을 강하게 원했다. 진짜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타인을 사랑하고 있는 나의 모습,  현실을 잊은 내 모습을 그리워했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대상을 원했다. 혼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제 와서 보니, 혼자 서는 법은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경험을 말해줄 순  있어도, 결국 맞닥뜨리고 터득하는 건 스스로 해야 한다. 사랑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자신만의 현실이자 훈련이다.     




3월, 캠퍼스의 봄은 따스했다. 포근한 봄날이 이어졌지만 아직 내 마음속엔 초겨울 새벽에 내린 서리처럼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가랑비에 젖은 옷처럼 하루하루가 흘려갔다. 2년 동안 마음을 나눴던 존재가 떠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생성 AI '달리'가 그린 이미지


하지만 그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없어 침묵으로 일관했다. 때론 나 자신이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 허무함도 느꼈다. 허무는 강력한 자극을 몰고 왔다. 어떻게든 학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흩날리는 꽃잎을 잡으려 팔을 휘둘러봐도 잎은 허공을 향해 날아갈 뿐이었다. 친한 동기들이 소희에 대해 물었지만 모른다며 둘러대고 말았다. 그들이 보는 나는 지나치게 감상에 젖어 있거나 실연에 젖어있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봄은 가혹했다. 사랑스럽고 치열했다. 시골에 있는 대학교에서 무슨 재밌는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느냐만, 거대한 봄은 작은 캠퍼스에 많은 것을 주입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표정은 순수했지만 때론 교묘했다. 캠퍼스를 떠나면 자신들이 얼마나 더 교묘해져야 하는지 몰랐을 테니까. 물론 나도 몰랐다. 사람의 마음이 자란다는 건 자신의 교묘함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는지와 연관이 있다. 그리고 잦은 만남과 이별은 그 교묘함을 조금 더 빠르게 쓰고 벗을 수 있게 만들어줬다.


누군가 이별에 대해 물으면 웃어넘겼다. 이별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때의 나는, 이별한 줄도 몰랐다. 물어보지 않았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덮어놓고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서 알았다. 어느 날 방 귀퉁이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쏟아내고서야 말이다. 별이 쏟아지듯 지난 추억들이 모두 몸 밖으로 흘러나왔고, 내가 소희를 사랑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나의 유일한 낭만이었다는 것도.


생성 AI '달리'가 그린 이미지

     

그 무렵, 학교는 축제 시즌으로 붐볐다. 꽃이 채 지기도 전에 학생들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갈망했다. 난 며칠간 지독한 감기를 앓았다. 채 3평이 안 되는 기숙사에 누워 천장을 응시한 채 멍하니 있었다. 4인 침대와 나란히 붙은 책상. 그 외에 무엇도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누워 있는 동안은 애정의 대상을 전혀 찾지 않았다. 쏟을 에너지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힘도 없었다. 그래도 허름한 기숙사의 적막한 느낌은 좋았다. 허름하고 나지막한 분위기가 그땐 꽤 마음에 들었다. 만약 기숙사가 넓고 화려했다면 괴리감이 컸을지 모른다. 그때를 생각하면 분수에 딱 맞는 환경이었다.      


한동안은 꼭 필요한 수업과 활동 외에는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기존에 세탁방에 맡겼던 빨래도 샤워를 하면서 같이 처리했다. 공용 양동이에 옷과 함께 빨래 비누를 넣는다. 그런 후에 샤워를 하면서 발로 밟는다.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동 샤워실에 나 혼자 옷을 다 벗고 물을 맞으며 빨래를 밟고 있다. 그게 어떤 그림인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생성 AI '달리'가 그린 이미지


분명 매력적이거나 그리 유쾌한 순간은 아니다. 하지만 난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나를 돌보는 느낌이 마음을 안정되게 만들었다고 할까. 아직 지지 않은 햇살이 미세하고 은은한 시선을 건네고, 안에는 적막한 물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그 물을 맞고 있는 나는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학생도, 학번도, 누군가의 친구도, 연인도 아닌 그냥 김도준 나 자신으로. 왜 샤워실에서의 그 시간이 그렇게 선명하게 느껴졌는지는 모른다.    


한동안은 소희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소희에 대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건 아니다. 그저 홀로 곱씹고 가슴속 추억의 조각들을 접어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또 하나의 낭만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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