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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pr 04. 2024

하루키 세계의 결정판, 30년만에 꺼내놓은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붏확실한 벽'을 읽고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해, 우리는 둘만의 비밀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무라카미 하루키





여운이 남는다. 환상적이다. 내면으로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확실하진 않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며 떠오른 말들이다. 


오랜만에 하루키의 작품을 읽었다. 700페이지라니 분량이 상당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하루키가 30대에 써놓았다가 대중에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고 약 40년 동안 마음에만 묵혀놓았다니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하루키의 벽 너머 도시에는 '어릴 적 혼자 간직했던 꿈, 좋아했던 아이, 살고 싶었던 동네. 다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어두움'. 이런 것들이 집약돼 있다. 읽는 내내 이야기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하루키가 진짜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 물음표를 던지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도서관에서 꿈을 읽는 일을 하는 '나'. 극중 나는 하루키 자신이 아니었을까. 소설은 하루키의 꿈이었고 하루키는 계속해서 소설을 읽고 또 소설을 쓴다.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도시에서 살기 위해 현실의 세계와의 벽을 두텁께 쌓는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의 삶은 평온하지만 때론 적막하다. 그래서 현실의 세계로 다시 나가보지만 이내 다시 그 세계로 돌아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만다. 


"나 말고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언제나 나와 너만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꿈 읽기' 기술에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가슴속에서 의문과 불안이 점점 커진다. 내가 '꿈 읽는 이'로 임명된 건 무슨 착오가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내게는 꿈을 읽을 능력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나는 맞지 않는 장소에서 맞지 않는 일을 맡은 게 아닐까? 어느 날 작업을 잠깐 쉬는 사이 나는 그런 불안함을 너에게 털어놓는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왔다 갔다 각각의 도시에 자신의 자아를 만들어가던 하루키는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자신과 닮은 한 분신인 아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더 하루키 다운 삶의 선택을 그 아이에게 맞긴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소설가에게 이야기를 끝내는 건 숙명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작품을 끝내기보다 독자의 상상으로 남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보다 본래의 나에 가까워졌을까? 이것이 이렇게 지금 존재하는 내가 본래의 나일까? 그러나 내가 본래의 나인지 아닌지를 대체 누가 판단해 줄 수 있을까? 금세 뒤섞이려 드는 주체와 객체를 어떻게 준별해야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나라는 존재를 알 수 없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어쩌면 이번 작품은 하루키의 내면을 전부 집대성한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무언가가 포함돼 있다고 한 걸 보면, 명확하거나 논리적이진 않지만 그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강하게 작용하는 힘. 그걸 이야기로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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