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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세계의 결정판, 30년만에 꺼내놓은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붏확실한 벽'을 읽고

by 글로 나아가는 이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해, 우리는 둘만의 비밀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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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남는다. 환상적이다. 내면으로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인지) 확실하진 않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며 떠오른 말들이다.


오랜만에 하루키의 작품을 읽었다. 700페이지라니 분량이 상당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하루키가 30대에 써놓았다가 대중에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고 약 40년 동안 마음에만 묵혀놓았다니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하루키의 벽 너머 도시에는 '어릴 적 혼자 간직했던 꿈, 좋아했던 아이, 살고 싶었던 동네. 다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어두움'. 이런 것들이 집약돼 있다. 읽는 내내 이야기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하루키가 진짜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 물음표를 던지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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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꿈을 읽는 일을 하는 '나'. 극중 나는 하루키 자신이 아니었을까. 소설은 하루키의 꿈이었고 하루키는 계속해서 소설을 읽고 또 소설을 쓴다.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도시에서 살기 위해 현실의 세계와의 벽을 두텁께 쌓는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의 삶은 평온하지만 때론 적막하다. 그래서 현실의 세계로 다시 나가보지만 이내 다시 그 세계로 돌아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만다.


"나 말고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언제나 나와 너만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꿈 읽기' 기술에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가슴속에서 의문과 불안이 점점 커진다. 내가 '꿈 읽는 이'로 임명된 건 무슨 착오가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내게는 꿈을 읽을 능력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나는 맞지 않는 장소에서 맞지 않는 일을 맡은 게 아닐까? 어느 날 작업을 잠깐 쉬는 사이 나는 그런 불안함을 너에게 털어놓는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왔다 갔다 각각의 도시에 자신의 자아를 만들어가던 하루키는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자신과 닮은 한 분신인 아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더 하루키 다운 삶의 선택을 그 아이에게 맞긴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소설가에게 이야기를 끝내는 건 숙명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작품을 끝내기보다 독자의 상상으로 남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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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다 본래의 나에 가까워졌을까? 이것이 이렇게 지금 존재하는 내가 본래의 나일까? 그러나 내가 본래의 나인지 아닌지를 대체 누가 판단해 줄 수 있을까? 금세 뒤섞이려 드는 주체와 객체를 어떻게 준별해야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나라는 존재를 알 수 없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中)


어쩌면 이번 작품은 하루키의 내면을 전부 집대성한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무언가가 포함돼 있다고 한 걸 보면, 명확하거나 논리적이진 않지만 그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강하게 작용하는 힘. 그걸 이야기로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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