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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y 12. 2024

폭염우속 질주, 달리기의 본질

달리기엔 진심이지만 너무 바빠서, 하지만 달려야 한다면

▲ 나는 왜 달리는가? 당신은 왜 달리는가?


즐거움? 간절함? 당신은 무얼 위해 달리는가. 러닝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본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바쁜 일상 속에서 왜 몸을 단련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지 않으면, 결국 열정은 식고 무료함만이 존재하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뛰고 싶어지는... 그래서 달리기는 끝없는 성장을 원하는 인생을 닮았다.   


 
부쩍 바빠진 요즘이라 그런지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 밖을 나선다. 아직은 바람이 차다. 하지만 달리기엔 딱 좋은 날씨다. 무엇이 나를 달리기로 이끄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20대 때는 알 수 없는 감정을 털어버리기 위해 달렸다면, 지금은 도리어 달린 후의 어떤 감정을 느끼기 위해 달린다.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달린 후에는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어쩌면, (왜 달리는지) 평생 답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굳이 답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는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든다. 그렇게 성장하고 싶은 욕구는, 타인과 잘 지내고 싶은 사회적 욕구보다도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 폭염우 속 질주, 날씨보다 중요한 것


여름이 가까워 그런지 바람이 부쩍 거세졌다. 그 바람을 맞서기란 쉽지 않다. 최근 나갔던 두 번의 마라톤 대회는 모두 극한의 환경 속에서 치러졌다. 낮과 밤, 폭염과 폭우. 극명히 갈린 날씨였지만 내 안에서는 자신과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달리는 동안 무슨 대화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코스는 언제쯤 끝이 나는지. 나는 왜 달리고 있는지. 바라보고 있는 한강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인간의 감동은 역시 마음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이 맞다.


프로 러너에 가까워지려면 달리는 동안 솟구치는 수많은 생각과 신경을 온몸에 더욱 몰입해야 한다. 물결을 타고 가는 배처럼 부지런하고 부드럽게 다리를 굴려야 한다. 마라톤 선수들은 어떻게 모든 생각을 잠재우고 그렇게까지 달릴 수 있는지 그들의 경지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폭염 속 열린 4월의 아침 마라톤에서는 약 2km를 남겨두고 30초간 걸었다. 왜 잠깐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을까. 지금껏 참가한 4번의 하프 코스 중 걸은 건 처음이었다. 컨디션 조절 실패. 준비되지 않은 나를 너무 믿었다. 사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 러너가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컨디션 관리 밖에 없다는 걸 다시금 실감한 순간이었다.


폭우 속 열린 레드불 주최의 월드런 마라톤은 그야말로 때 이른 '워터파크'였다. 우중런. 빗속을 달린 첫 마라톤 대회였다. 주최 측도 비가 올 것을 예측하진 못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쏟아지는 비가 오히려 대회를 이색적으로 만들었다. 수십 명의 러너들이 빗물을 가르며 비바람 속을 달렸다. 5km쯤 지났을까, 몸이 풀리기 시작했는지 힘들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몸을 적시고 신발 속으로 차오르는 물이 열을 모두 씯어냈다.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폭염이든 폭우든 어떤 환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러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다.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킵초게는 "러닝은 마음에 관한 것이다. 잘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누구와 함께 달리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러닝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때 우리의 삶도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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