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꿈속에서 16화

암시

by 진혁

곡물이 든 자루처럼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웅크리고 있던 허리를 펴더니,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놈이었다.

끔찍했던 탄광에서의 기억 때문인지, 수아와 태우는 그 자리에 얼어버렸고, 싸늘한 공포를 다시 마주해야 했다.

태우가 비장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수아가 기다려 달라고 손짓하며, 주머니에서 파스텔을 꺼내 벽에 네모를 그리기 시작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이었을까?

네모를 그리던 수아가 파스텔을 떨어뜨렸고, 요괴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요괴는 사냥감을 발견한 맹견처럼 흥분하기 시작하더니, 그들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제대로 맞설 수 없었던 태우가 팔과 옆구리를 베이며 쓰러졌다.


"아저씨, 괜찮아요!"

"위험해, 떨어져 있어!"


태우가 수아를 밀쳐내며, 일어섰다.

혀를 날름거리며, 손에 묻은 피를 핥아먹은 요괴의 눈이 뒤집혔고, 쥐를 눈앞에 둔 고양이처럼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태우는 요괴의 무자비한 공격을 막아내기회가 생길 때마다 단검으로 찔렀지만, 요괴의 상처가 바로 아물어, 피를 흘리거나 죽지 않았다.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느꼈는지, 태우가 수아의 손을 잡고 객실 출입문을 향해 달렸다.

아뿔싸! 요괴의 손끝에 다리가 걸린 수아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수아를 보호하려던 태우마저도 요괴의 공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먹이를 눈앞에 둔 요괴의 입가에 군침이 흘렀고, 눈엔 광기가 서려 있었다.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더니, 태우의 단검이 커지며 눈부신 빛을 내기 시작했다. 눈이 부셨던 요괴가 손바닥을 오므리며 뒷걸음질 쳤고, 그 틈에 일어선 수아가 태우를 부축하며 객실문을 열었다.

천장 객실에서 나온 수아와 태우가 복도 바닥에 떨어지며,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몸을 추스를 틈도 없이, 천장 객실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났고, 그 파편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파편을 모두 토해낸 천장 객실 앞에 요괴가 있었다.

아주 괴이하게 손바닥 눈을 희번덕 거리며, 수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순간, 태우가 요괴를 향해 검을 힘껏 던졌고, 중력을 거스른 검이 빠르게 요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서있던 요괴가 결국, 가슴 깊숙이 박힌 검을 빼지 못한 채,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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