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형제에 대한 논란(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살고 싶지 않은 한 여자가 있습니다. 벌써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문유정(이나영). 한 달간의 병원 치료를 받는 것보단 수녀인 모니카 고모를 따라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여 찾아간 곳이 교도소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남자는 “1분 1초가 미칠 것 같으니, 빨리 죽여 달라는 탄원이나 해달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합니다. 빨간 번호표를 붙이고 있는 사람, 사형수 정윤수(강동원)입니다.
부유한 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라 부모 덕에 교수 자리까지 차지한 유정과 평생을 가난하고 배고프게 살아온 윤수. 자라온 환경은 상반되지만 두 사람은 묘하게 서로 닮아 있음을 깨닫고,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열어 나갑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사형수, 사형의 집행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윤수는 검사인 오빠를 찾아가서 따지듯이 말합니다.
“사람 죽인 건 잘못했다고 쳐. 그럼 국가가 사람 죽이는 건? 그건 옳은 거야?”
검사는 “죽이는 게 아니라 집행이야, 법집행.”이라고 맞섭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형은 목숨을 빼앗는 극단적인 형벌이라는 점에서 논쟁적인 제도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사형제도가 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사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형법 제41조는 형벌의 종류를 9개(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사형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이자 궁극의 형벌입니다.
어떤 범죄를 저지르면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사형제도를 법정형으로 정하고 있는 법률은 총 20개에 달합니다. 흔히 알고 있는 형법(살인, 존속살해) 외에도 다른 법률에도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해 놓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전시, 사변 시에 지휘관이 지켜야 할 장소를 지키지 않은 경우(군형법 제27조), 인체에 현저히 유해한 식품, 식품첨가물 또는 건강기능식품을 제조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하게 한 경우(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 등이 있습니다. 법정형이라는 건 선고가 가능한 형벌의 종류를 의미하므로 이러한 범죄가 발생했다고 해서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건 아니고, 실제로 사형이 선고되는 건 계획적인 살인과 같이 반인륜적인 범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형제도는 논란이 많은 제도입니다. 잔혹한 범죄로부터 개인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사형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한편 사형제 폐지운동을 하고 있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의 통계에 따르면 법률적 혹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은 140개국이고(1997년 12월 30일 이후에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도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속함),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58개국이며, 2015년 한 해 처형된 사람의 수(중국 제외)는 1,634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최대한 보장받아야 하지만 항상, 무한정으로 보장받는 건 아닙니다. 기본권의 제한에 대한 헌법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 제37조 ②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에 따를 때,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는 경우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한 목적인 경우여야 하고, 다른 목적을 위해서는 기본권이 제한될 수 없습니다. 목적뿐만 아니라 방법도 중요합니다. “법률”로써만 제한할 수 있고 법률의 아닌 다른 법령(이를테면, 대통령령, 총리령 등)이나 행정부의 정책으로는 제한이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제한’은 가능하지만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의 제한이 정당화되려면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으려면 4가지 요건(입법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갖춰야 합니다. 즉, 법률이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을 만든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목적의 정당성), 수단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수단의 적합성)이어야 합니다. 또한 국민의 기본권이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더 침해되는 일이 없어야 하며(피해의 최소성), 제한되는 국민의 기본권과 그를 통해 얻는 공익을 비교했을 때 공익이 더 커야 합니다(법익의 균형성).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에 대해 1996년과 2010년 두 번의 결정을 내렸는데, 두 번 모두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모든 재판관이 동일한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고,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견해를 가진 재판관도 여럿 있었습니다. 2010년 선고된 헌법재판소 결정(헌재 2010. 2. 25. 2008헌가23)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에서 전개된 논쟁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술 순서는 각 쟁점에 대해 다수의견을 먼저 소개하고 반대의견으로 나중에 소개하겠습니다(참고로 반대의견은 헌법재판소의 공식 법정의견이 아니라 법정의견과 다른 생각을 소수의견이라는 점). 또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헌법재판관들의 주장을 대화체로 바꿔서 서술하겠습니다.
- 다수의견: “사형제도의 목적은 크게 3가지 정도입니다. 우선 일반국민에 대한 심리적 위협을 통해서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악한 범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대갚음)를 통하여 정의를 실현하고, 해당 범죄를 그 사람이 다시 저지를 가능성을 영구히 차단하여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익상의 목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형제도의 입법목적은 정당합니다.
사형제도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사형제도에는 일반적 범죄예방효과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잔인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사형을 내림으로써 보통사람들로 하여금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적합한 수단인 것입니다. 또한 잔혹한 방법으로 다수의 인명을 살해하는 등의 극악한 범죄의 경우, 그 법익침해의 정도와 범죄자의 책임의 정도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심대합니다. 수많은 피해자 가족들의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분노 및 일반국민이 느낄 불안과 공포, 분노까지 고려한다면, 이러한 극악한 범죄에 대하여는 우리 헌법질서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강력한 처벌을 하여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필요합니다.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은 이러한 정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여 정의의 실현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인 것입니다.”
- 반대의견: “사형제도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통하여 중대 범죄의 일반예방에 기여한다는 점에 대하여도 그 위하력(억지력)에 대한 실증적인 근거가 없다는 견해와, 반대로 사형제도가 위하력이 없다는 증거 또한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견해만 대립하고 있을 뿐, 사형제도가 일반적으로 흉악범죄를 억지하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하여 명백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형벌을 통한 응보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동해보복(同害報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가 이미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수감된 범죄자의 생명을 의도적·계획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형법에서 살인을 범죄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사상과 모순되는 것으로 정당한 응보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다수의견: “특정한 범죄를 실행하려는 사람은 범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하여 범죄로 인하여 부과될 수 있는 불이익을 비교하게 될 텐데, 전자보다 후자가 더 크다면 범죄행위를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사형과 비슷한 형벌로는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이 있지만 종신형은 사형과 다릅니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박탈하는 내용의 사형은 무기징역형이나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보다도 범죄자에 대한 법익침해의 정도가 큽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존본능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까지 고려하면, 사형은 강한 범죄 억지력을 가지지만 종신형은 그러지 않습니다.
또한 잔혹한 방법으로 다수의 인명을 살해한 범죄 등 극악한 범죄의 경우에는, 범죄자에 대한 무기징역형이나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의 선고만으로는 형벌로 인한 범죄자의 법익침해 정도가 당해 범죄로 인한 법익침해의 정도 및 범죄자의 책임에 미치지 못하게 되어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성을 잃게 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들의 가족 및 일반국민의 정의 관념에도 부합하지 못합니다.”
- 반대의견: “사형제도가 그 범죄인을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킴으로써 그 자신에 의한 재범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 이외에, 그 위하력에 의한 일반예방적 기능을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처럼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보다 덜 제한적인 수단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가석방이나 사면·감형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제와 같은 사형제도를 대체할 만한 수단을 고려할 수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범죄인의 근원적인 기본권인 생명권을 전면적이고 궁극적으로 박탈하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한 오판의 가능성도 경계해야 합니다. 형사재판에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고(형사소송법 제307조), 그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합니다(같은 법 제308조). 이같은 증거재판주의와 자유심증주의 하에서, 아무리 훌륭한 법관이 아무리 신중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판단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하는 재판인 이상 실체관계와 일치하지 않을 재판, 즉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그 침해의 정도가 궁극적이고 전면적이어서, 오판임이 발견되었을 때 이를 회복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없습니다.”
- 다수의견: “모든 인간의 생명은 자연적 존재로서 동등한 가치를 가집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중요 범죄에 대해 지극히 한정적인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형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사익은 타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등의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 박탈입니다. 범죄자의 사익보다 큰 것은 피해자의 사익 또는 일반 국민의 공익입니다. 극악무도한 범죄행위로 인하여 무고하게 살해당하였거나 살해당할 위험이 있는 일반국민의 생명권 박탈을 방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사형이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기는 하나, 범죄의 잔혹함에 비하여 과도한 형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 반대의견: “사형을 통하여 침해되는 사익은 개인의 생명 및 신체의 박탈로서 이는 범죄인에게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기본권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은 타인의 생명 또는 이에 준하는 매우 중대한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에 대한 사회방위와 범죄의 예방입니다.
그런데 사형은 언제나 범죄가 이미 종료된 이후에 수사 및 재판을 받고 형이 선고되어 수감 중인 개인에 대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생명의 박탈인 반면, 사형을 통하여 보호하려는 타인의 생명권이나 이에 준하는 중대한 법익은 이미 그 침해가 종료됨으로써 범죄인의 생명이나 신체를 박탈해야만 하는 긴급성이나 불가피성이 없는 상태이고, 사형제도가 추구하는 사회방위와 범죄예방이라는 공익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지닌 것인지는 불명확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 자체로서 공익의 비중에 비하여 사형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사익의 비중이 훨씬 큽니다. 따라서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