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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란 무엇일까?

- 건물을 붕괴시키려고 한 진소장의 잘못(태양의 후예 8회)

by 로도스로

○ 밉상의 제왕, 진소장

낯선 땅 우르크에 지진이 일어납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재난 상황. 이럴 때 알파팀이 빠질 리 없습니다. 건물 붕괴 현장에 고립된 실종자를 찾기 위해 팀장인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앞장서고 서대영(진구) 상사가 뒤따릅니다. “그 어려운 걸 또 해내고 마는” 알파팀답게 구조가 성공하려는 순간, 진동이 울립니다. 2차 지진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범인은 바로 “태양의 후예” 최고의 밉상 캐릭터인 진소장(조재윤)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숨겨둔 다이아몬드를 찾겠다고 포크레인으로 땅을 판 겁니다.

위기의 순간은 있었지만 알파팀의 활약으로 무사히 생존자를 구해내고 평화롭게 마무리가 되려고 하는데, 다시 진소장이 나타납니다. 태백부대 대대장을 찾아온 진소장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대영 상사에게 맞았다며 거칠게 항의합니다. “민형사 싸그리 다 걸어서 군복 벗게 할거야.”까지 놓으면서.

그러자 대대장(김병수)이 말합니다.

“법대로 해봅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로 재판 받게 해 드리죠.”(태양의 후예 제8회)


과연 진소장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태양의 후예_진소장과 대대장.jpg 대대장에게 항의하는 진소장 <출처: 방송 화면 캡쳐>


○ 고의와 과실은 어떻게 다를까?

누가 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트려서 액정이 깨졌다고 해봅시다. 그렇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실수로 휴대폰을 떨어트린 거라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일부러 떨어뜨린 거라면 쉽게 용납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처럼 동일한 결과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나 과정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수로’를 법적인 용어로 바꾸면 ‘과실’이 되고, ‘일부러’를 법적인 용어로 바꾸면 ‘고의’가 됩니다. 과실과 고의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고의인지 혹은 과실인지에 따라 범죄 성립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실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도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입니다. 실수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범죄로 처벌한다면 처벌받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범죄가 되려면 범죄를 저지르려는 고의가 있어야 하고, 과실로 인해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폭행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기업의 회장인 A씨는 성질이 아주 포악하기로 유명합니다. 툭 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데, 주된 분풀이 대상은 운전기사 B씨입니다. A회장은 B씨가 빨리 차량을 운전하지 않는다며, 주먹으로 B씨의 머리를 때렸고,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했습니다.

C씨는 저녁 먹고 운동하는 걸 좋아합니다. 뒤로 박수치며 걸으면 앞뒤의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킬 수 있고, 혈액 순환에도 좋다고 하여 C씨는 그 방법으로 운동하는 걸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뒤로 걷다보니 반대방향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여 D씨의 몸을 때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합니다(형법 제260조 제1항).

하지만 A의 행동은 의심의 여지 없이 폭행죄에 해당하지만 C의 행동은 폭행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폭행의 사전적 의미만 따지면 D의 몸을 때린 C씨의 행동도 '폭행'에 해당할 수 있겠지만, C씨에게는 D를 때리겠다는 고의가 없었고 실수로(과실로) 폭행을 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폭행에 대한 고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과실로 인한 폭행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형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폭행죄가 성립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고 과실로 인한 범죄는 모두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외가 있기 때문인데, 과칠치상죄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과실로 인하여 사람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집니다(형법 제266조 제1항). 예를 들어, 골프장에서 골프경기를 하던 중 등 뒤 8m 정도 떨어져 있던 경기보조원을 골프공으로 맞혀 다치게 만들었다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실수라고 하더라도 과실치상죄가 성립하는 겁니다(대법원 2008.10.23, 선고, 2008도6940, 판결).


태양의 후예_지진현장.jpg <출처: 태양의 후예 홈페이지>


○ 미필적 고의란 뭘까?

고의의 종류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확정적 고의’인데, 이는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상태인데, 일반적인 의미의 고의는 확정적 고의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확정적 고의와 구별되는 ‘불확정적 고의’인데, 결과 발생할 것을 명확하지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불확정적 고의의 대표주자가 바로 ‘미필적 고의’입니다. 미필적 고의는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 것을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결과가 발생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그 결과를 발생을 용인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있는 건물에 불을 지르는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갑’은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그 사람을 죽이겠다고 생각하면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습니다. 그렇다면 ‘갑’은 살인에 대한 ‘확정적 고의’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을’은 건물 옆에서 쓰레기를 태우던 중 건물로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을’은 건물 안에 사람이 있는지 명확하지 알지 못했지만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고 이 불 때문에 죽을 수도 있지만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불을 끄지 않고 가만히 두었습니다. 이때 ‘을’은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개념적・논리적 관점에서 보면 확정적 고의와 불확정적 고의(미필적 고의)는 명확하게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고의를 구분해야 할 실익은 많지 않습니다. 실무적으로는 두 고의를 비슷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범죄가 성립할 때 필요한 고의는 반드시 확정적 고의일 필요는 없고 미필적 고의로도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살인죄가 되려면 살인에 대한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살인죄에 대한 고의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 법원이 미필적 고의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 것은 고의가 눈에 드러나지 않는 심리적 상태라는 점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내가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라고 자백하면 고의를 인정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절대로 그런 의도로 가진 것이 아니었다.”라고 끝까지 우긴다면 궁예처럼 관심법(觀心法)을 쓰지 않는 이상 범죄자의 마음 상태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에 반해 미필적 고의는 확정적 고의보다는 인정하기가 조금 더 쉽습니다. ‘결과가 발생할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결과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 결과를 용인하였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 고의의 판단방법

그렇다면 고의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법원은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의 동기, 준비된 흉기의 유무•종류•용법, 공격의 부위와 반복성, 사망의 결과발생가능성 정도 등 범행 전후의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고의가 있었는지를 판단합니다. 추상적인 기준이라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구체적인 사안을 통해서 고의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홍길동과 이몽룡은 연흥부가 홍길동의 누나 집에서 돈을 훔쳤을 것으로 의심하고 홍길동에 대하여 앙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 한 달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연흥부를 옷을 모두 벗겨놓은 상태로 쪽방에 감금하였습니다.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주먹과 사이다 병, 빨래건조대 봉, 드라이버, 망치로 연흥부가 실신할 정도로 온몸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연흥부의 머리를 벽이나 다락방 계단에 수회 부딪치게 하거나 의료용 가위를 이용하여 피해자의 허벅지를 찌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연흥부는 온몸에 염증이 발생했고 결국 췌장 파열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된 홍길동과 이몽룡은 “감금을 하고 폭행한 건 사실이지만 살인의 고의가 없었기 때문에 살인죄는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법원은 두 사람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았는데, 그러한 판단은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홍길동, 이몽룡 두 사람이 합세하여 약 45일 동안 피해자를 감금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무자비하게 피해자의 온몸을 폭행하였다.

두 사람이 폭행 당시 사이다 병, 빨래건조대 봉, 드라이버, 망치, 의료용 가위 등 흉기를 사용하였고, 특히 피해자의 머리를 사이다 병으로 때리거나 벽에 부딪치게 하는 등으로 강한 충격을 반복하여 가하였다.

연흥부가 두 사람의 계속된 폭행으로 얼굴이 심하게 붓고 실신하기에 이르렀음에도 폭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런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홍길동과 이몽룡은 ‘연흥부가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연흥부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이므로, 두 사람에게는 적어도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판단한 겁니다(대법원 2006.04.14. 선고 2006도734 판결).

태양의 후예_모연.jpg <출처: 태양의 후예 홈페이지>


○ 진소장의 경우

진소장은 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되고 붕괴 사고로 매몰된 사람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포크레인 작업을 하면 진동이 크게 발생하여 추가 붕괴를 유발하고 그로 인해 생존자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에 숨겨둔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나머지 생존자는 안중에도 없던 진소장은 포크레인에 올라탔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진소장이 “사람이 반드시 죽을 것이다”(확정적 고의)라고 생각한 것인지 다소 불분명하나, “사람 한 두 명 죽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고 볼 수 있고, 달리 말해 적어도 살인에 대한 ‘미필적인 고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시진 대위의 활약으로 사망자가 없었기 때문에 ‘기수’가 아니라 ‘미수’가 됩니다.

즉, 포크레인으로 건물을 붕괴시킬 뻔한 진소장은 살인미수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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