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선 이유(택시운전사)
택시를 운전하며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김만섭(송강호)은 1980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시위로 인해 도로사정이 나빠지자 월수입이 나빠질까봐 걱정하고, 주인집 아이와 딸아이가 싸워서 상처를 입자 호되게 항의하러 가지만 밀린 월세 이야기에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생계비를 고민하던 차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문도 모른 채 외국 손님을 태워 광주로 향합니다. 그의 택시를 탄 사람은 ‘사건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가는 것이 기자’라고 말하는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광주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했던 김만섭은 광주의 현실을 목격하곤 깜짝 놀랍니다.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했던 힌츠페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는 기자의 본분에 맞게 촬영을 시작합니다.
김만섭은 혼란스럽습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두드려 팰 뿐만 아니라 총을 발사하기까지하는 군인들의 무자비함에 분노하는 한편, 서울에서 홀로 지낼 딸 걱정에 마음이 불안하기도 합니다.(택시운전사)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영화인 “택시운전사”는 다시 광주민주화 운동의 의미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리고 광주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재판정에 피고인으로 선 전직 대통령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청와대에 있었으나, 어느 순간 피고인으로 전락하여 법정에 섰습니다. 세기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는 사건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이 모였고, 국민들의 관심도 높습니다. 전직 대통령에게 유죄가 선고될지 유죄라면 얼마만큼의 형벌을 받을 지가 주된 관심사항입니다. 대통령에서 피고인으로의 급격한 변동은 법 앞의 평등을 천명한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 분명할 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꼭 박 전 대통령만의 일은 아닙니다.
헌정 역사상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형사재판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박 전 대통령 전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형사법정에 섰습니다. 20여년 전이 1996년의 일입니다(우연찮게도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세 전직 대통령은 모두 같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재판에서 핵심적인 사항은 “두 사람이 주동한 12・12군사반란이 형법상의 내란죄에 해당하는지”였습니다(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형법 제87조(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
1.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기타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살상, 파괴 또는 약탈의 행위를 실행한 자도 같다.
3.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사전적 의미의 내란(內亂)은 “나라 안에서 정권을 차지하려고 벌이는 전쟁이나 병란”(Daum 국어사전)을 의미합니다. 형법상의 내란죄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 요건(① 국헌을 문란할 목적, ② 폭동을 할 것)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국헌문란
먼저, 국헌문란이란 뭘까요? 국헌(國憲)은 나라의 근본이 되는 법규입니다. 국헌문란이 무엇인지에 대해 형법은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2.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이 중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행위는 제2호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1980년 5월 초순경부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등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협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는 등 폭력적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의결·선포하게 만들었습니다. 국보위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 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함에 따라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허수아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계엄법에 따를 때,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모든 권한이 계엄사령관이 갖게 됩니다. 체포, 구금, 수삭,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또는 단체행동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까지 관장합니다. 한 마디로, 계엄군이 절대권력을 가진 왕이 되는 것입니다.
즉 두 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하여 전권을 장악하고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것은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2) 폭동성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등을 통해 헌법기관이 무너지고 국민의 기본권이 짓밟히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한 광주시민들의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그에 대한 군부의 대응은 익히 알려 진대로 난폭한 진압이었고,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또 다쳤습니다.
이에 대해 두 전직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① 계엄군이 외곽으로 철수하면서 광주시민들에게 자체수습을 권고하였는데도 무장시위대가 계엄군을 공격하고 교도소를 공격하는 등 무정부상태가 벌어지자, 계엄군이 무장시위대의 습격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정당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두 전직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이다.
② 80만 광주시민들을 무정부상태에서 구하기 위하여 신임 전교사령관이 그 권한과 책임으로 수행한 순수한 군사작전이다. 이는 정당행위에 해당하며 두 전직 대통령과는 관계가 없다.”
한 마디로 일부의 광주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킴에 따라 계엄군이 진압한 것은 정당한 계엄업무의 수행이고, 자신들은 상관없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거짓 주장입니다.
광주시민들은 두 전직 대통령의 국헌문란행위를 항의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시위에 나온 것이므로 이것은 주권자이며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 행위에 해당합니다. 또한 당시 광주는 폭도들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위협을 받는 무법천지 상태였던 것이 아니라, 시위대와 일반 시민들이 한 몸으로 움직이며 서로를 돕고 위로하였습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것은 계엄군이었습니다. 단순히 버스를 타고 국도로 이동중인 버스에 계엄군이 총격을 가하거나, 시위대와 관계없는 민가의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거나, 시위가 없었는데도 무차별사격을 가함으로써 무장할 염려가 없는 여자나 11, 12세 정도된 어린이까지 희생되게 만든 겁니다.
○ 끝나지 않은 일
법원이 인정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죄는 “반란수괴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죄는 “반란모의참여죄”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여기에 동조한 것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는 겁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하였습니다.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은 판결 8개월 만인 1997년 12월22일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하여 두 사람은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출소하였습니다.
이쯤 되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조용히 지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출간하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가한 600명의 시위대가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군”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여 출판이 금지되는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아직 광주민주화운동이 현재형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법원은 “무장시위대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발포하여도 좋다.”라는 발포명령을 두 전직 대통령이 내렸다고 볼 증거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이 발포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가 아직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헬기조종사의 진술 등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고 있는 만큼 그 부분도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