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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법적으로 뭐가 달라질까?

- 어른과 아이의 차이(도깨비 10회)

by 로도스로

○ 사고무친 지은탁

한 여고생이 있습니다. 평범한 고3 수험생이길 희망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비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원래 태어나질 않을 운명이었으나 도깨비(공유)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보통 사람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죽은 혼들이 눈에 보이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를 지켜주던 엄마마저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그녀의 표현대로) “조실부모한 사고무친”이 되고 맙니다.

알다시피 그녀는 드라마 “도깨비”의 지은탁(김고은)입니다.

지은탁에게는 이모와 이종사촌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도움이 안 됩니다. 도움은커녕 사람을 아주 못살게 굽니다. 지은탁은 빨리 어른이 되어서 집을 벗어나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앞에 도깨비가 나타나고 자신이 도깨비의 신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도깨비 신부로서 도깨비와 함께 지내고 있던 지은탁은 초조하게 시계를 보고 있다가 밤 12시가 지나자 도깨비의 방으로 달려옵니다. 일부러 무심하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도깨비의 질문에 지은탁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합니다.

“1월 1일 새해, 저 방금 어른 됐어요.”


어른이 되었으니 술을 사달라는 말도 합니다.(도깨비 제10화)


어른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지은탁!

어른인 사람과 어른이 아닌 사람은 법적으로 어떻게 다른 걸까요?


[tvN] 도깨비.E10.161231.720p-NEXT90.mp4_003052331.jpg <출처: 도깨비(제10화) 방송 장면>


○ 헌법적인 측면: 선거권

국민이 선거에 참여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이고 실행력이 강한 방법은 바로 선거에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집니다(헌법 제24조). 유념해야 할 점은 “법률에 따라”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법률은 공직선거법입니다. 공직선거법은 19세 이상이어야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공직선거법 제15조).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애기에게 선거권을 주는 건 이상하므로 일정한 나이에 이른 사람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것은 타당합니다. 문제는 그 일정한 나이로 얼마로 보느냐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만 18세 이상으로 선거연령을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생각이 일치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청소년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선거연령 하향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정당도 있지만, 교육현장 혼란 가능성을 들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시하는 정당도 있습니다.


○ 민법적인 측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

어른은 법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민법에서는 ‘성년’이라고 표현하는데 성년은 만 19세 이상인 사람을 말합니다(민법 제4조). 원래는 만 20세 이상이 성년이었으나 2011년에 민법이 개정되면서 성년의 나이가 19세로 하향되었습니다.

주의할 점은 성년인지의 여부를 계산할 때 태어나자마자 1살로 보는 한국식 나이가 아니라 태어난 날로부터 1년이 지나야 1살이 되는 “만 나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드라마상의 생년월일이 1998년 9월 13일인 지은탁은 2017년 1월 1일이 되어도 만 19세가 되지 않았으므로 민법상 성년은 아닙니다. 만 18세의 미성년자라도 혼인을 하면 성년자로 보는 성년의제 조항(민법 826조의2)이 있지만 법률에서 말하는 혼인은 혼인신고를 해야 유효하고 지은탁과 도깨비 김신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므로 성년의제 조항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민법에서 성년과 미성년을 구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법률행위(이를 테면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의 효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성년은 성년후견을 받고 있다든지 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률행위를 스스로 혼자 할 수 있지만,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하려면 법정대리인(주로 친권자인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합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휴대전화기를 개통하려고 이동통신서비스에 가입하려면 친권자인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겁니다. 만약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하면 미성년자 본인 또는 미성년자의 부모가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민법이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할 때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성년에 비해서는 판단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성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미성년자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 행위는 미성년자가 단독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돈을 공짜로 주는 걸 증여라고 하는데, 증여를 받는 행위는 미성년자에게 이익이 되므로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겁니다.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성년자뿐만 아니라 법률행위의 상대방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법은 미성년자이지만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없는 몇 가지 예외를 두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적극적으로 속이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주민등록증을 위조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미성년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서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계약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도깨비 포스터_2.jpg <출처: 도깨비 공식 홈페이지>


○ 형법적인 측면: 형사미성년자와 소년법

어떤 사람을 처벌하려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첫째 특정한 행동이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여야 하고(구성요건해당성), 둘째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성질이어야 하고(위법성), 셋째 행위를 한 사람에게 비난가능성(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 없으면 형벌 없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입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책임능력’이라 부르는데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책임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임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형사미성년자입니다. 만 14세가 되지 않은 형사미성년자는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하지 않습니다(형법 제9조). 각 사람의 특성, 이를 테면 지적 수준・도덕능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나이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판단합니다. 형사미성년자는 형사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은 가능합니다.


여기서 용어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민법에서 말하는 ‘미성년자’와 소년법의 적용을 받는 ‘소년’은 만 19세 미만인 사람이지만, 형법의 ‘형사미성년자’는 만 14세가 되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습니다. 이처럼 미성년/성년을 가르는 법마다 다른 이유는 각 법률마다 미성년자를 성년자와 구분하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성년 나이 정리.png


소년법의 적용을 받는 소년이라고 하더라도 나이에 따라 다르게 취급됩니다. 먼저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소년이 형벌법령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면 형사처벌 대신에 보호처분을 받습니다(소년법 제32조). 보호처분에는 감호 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이 있습니다.

만 14세 이상인 소년은 형사미성년자는 아니어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소년법에 따른 특별한 취급을 받습니다. 소년이 유기 징역을 선고받을 때에는 부정기형을 선고받습니다. 부정기형(不定期刑)은 정기형과 대비되는 개념인데 형을 선고할 때 기간을 하나로 특정하지 않고 범위를 정해 놓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징역 3년은 정기형이지만, 단기 1년 장기 4년은 부정기형입니다. 또한 18세 미만인 소년은 최고형이 15년의 유기징역입니다(소년법 제59조, 단 살인 등의 특정강력범죄를 범한 경우에는 특정강력범죄법 20년).

복잡하게 설명을 했지만 소년법의 기본 취지는 만 19세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만 19세 이상인 사람보다 처벌을 하지 않거나 가볍게 처벌한다는 겁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연령이 낮아짐에 따라 그동안에도 소년법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였는데,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계기로 소년법에 대한 비판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두 여학생이 소년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매우 많아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년법 폐지를 고민해보자고 제안할 정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_소년법 폐지.jpg <출처: 다음 뉴스 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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