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나만의 삶의 스케치
돌담에 속삭이는 햇빛 같이
둥지를 찾고 싶은 시니어의 마음 같이
따스한 돌담고사리 이야기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 /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 詩(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 실비단 하늘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은 왠지 마음의 고향 같다. 현실의 고향을 외면하고 타지에서 먹고살고, 은퇴해서 제주살이 하는 시니어의 마음이 다가서고 싶은 따스함이다. 돌담고사리를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 둥지의 포근함의 발로인지 모른다. 어렵게 찾아간 관음사 돌담의 돌담고사리는 겨울 혹한기에 누렇게 잎이 변했고, 초봄에는 가뭄에 말라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영랑은 일본 강점기 때에 친일의 문장을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말의 고운 결을 사랑하였고 시로 읊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서 고요하고 따스한 햇빛 속에서 지조를 지킨 시인의 맑은 태도를 만난다. 돌담고사리의 메마른 잎 사이에도 영랑의 마음처럼 따스한 시선을 주고 싶은 시니어의 마음이다.
은퇴 후의 제2의 삶을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여기고, 제주살이 하면서 어려운 양치식물을 탐사하는 과정은 나다운 삶을 꿈꾸며 한 줄기 희망을 찾는 모험의 발걸음이었다. 돌담고사리는 다가오며 영랑의 시에 주인공이 되었다고 속삭인다. 빼빼 말라 잎을 꼬부리고 물을 기다리는 돌담고사리의 마음처럼 나의 메마른 가슴에도 시어의 촉촉함을 느끼고 싶다.
돌담고사리는 제주의 돌담이나 곶자왈 바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비해, 제주의 사철고사리는 귀한 편이다. 서귀포에서 사철고사리를 딱 두 군데에서 보고, 사철고사리의 특징 중 하나인 잎자루 하부의 비늘 조각에 붙은 털을 정말 힘들게 찍었다. 돌담고사리는 영랑의 감미로운 시어로 연결되는데 비해, 사철고사리는 비늘의 털을 확인하고 촬영하던 순간의 힘든 땀방울이 생각난다.
그런데 통영살이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철고사리는 흔히 보이는데 반대로 돌담고사리는 귀한 편이다. 돌담고사리가 야들야들하고 잎이 넓어 푸근한 느낌이라면 사철고사리는 잎이 두텁고 좁으며 진녹색으로 광택이 나서 강한 느낌이다. 돌담고사리와 사철고사리의 모습에 내 추억처럼 연결된다.
사철고사리의 통영 추억은 경남 사람들의 연화도 바닷가 식물 탐방에 우연히 동행하였을 때 사철고사리가 돌담에서 자라는 것을 보고, 사철고사리라고 안내해 준 시간이다. 제주살이에서 처음 접한 양치식물 취미가 통영살이에서 양치식물을 잘 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뿌듯하다. 제주에서 코로나와 낙상사고로 외로운 시간을 함께한 양치식물은 이제 친근한 벗이 되었다.
돌담고사리에서 보고 싶었던 따스한 둥지(niche)는 대중적이지 않은 양치식물을 좋아하는 시니어의 마음이면서, 햇빛이 든 돌담에 기대어 쉬고 싶은 고단한 몸이 요구하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양치식물 이야기는 나의 마음과 몸의 행동이 그린 나만의 삶의 스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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