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손발이 묶인 침대생활이 계속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어학공부하던 라디오를 버리지 않고 놔뒀더니 투병생활에 제격이다. 왼손에 깁스를 하였기 때문에 손의 자유로움이 제한되어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오전 봄빛이 따스히 비추는 침대에 우연히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노래가 울려 퍼진다. 누워 천장을 보던 뇌가 불현듯 과거로 헤엄친다. 소리를 채집하는 영화의 스틸 한 컷을 떠올렸다. 30~50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나의 젊었던 시절을, 퇴직 후 제주살이 하다가 갑작스러운 낙상사고로 누워있는 60대를, 삶에 격변의 시간이 넘실댄 과거와 현재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시루엣이 되어 아른거린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들,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우리는 영화의 내용처럼 젊었을 때는 순수를 기대하며 살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뻔뻔함도 비판할 줄 모르게 되었다. 가슴 한쪽에 조금은 살아있는 순수가 경고를 보내도 무시하면서 현실이 주는 허약함과 무력감이 심하다는 핑계를 댔다.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발버둥 치며 버티다가 은퇴라는 꿀 같은 시간이 봄날 같았다. 그러나 그 봄날은 너무나도 짧았다. 손발이 묶여 침대에 누워있는 현실이 꿈을 꾸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봄날이 이렇게 허무가게 가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좋은 봄날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궁금해진다. 또 침대생활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을 그리워한다. 아주 조그만 것을 바라는 이 마음이 엄청 큰 욕심처럼 나의 마음을 압박한다. 이렇게 언제까지 누워있어야만 하는지, 다리는 완쾌되어 제대로 걸을 수 있는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불안이 세월의 무상함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