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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데우스 Sep 20. 2024

비요일

일을 해야 하는데

정말 정말이다. 집에 이렇게 방콕이란 시간을 갖는 것 말이다. 비가 내리고 잔뜩 흐린 밖을 보면서도 젖은 신발에 신문지 뭉치를 박아놓고서도 밖으로 나가 오름 두 개를 끝내고 싶은데 말이다. 모처럼의 쉬는 시간에 이사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동안 찌든 몸이 횡재 만난 듯 제멋대로다. 하루도 쉬지 않았던 몸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래저래 오전을 넘어 오후 시간, 마음의 갈등이 제주살이의 마무리로 달려간다. 평지에 있는 오를 수 있는 제주오름을 두 개 남겨놓았고, 올레길도 21코스와 우도올레, 추자올레만 남았다. 하지만 추자올레는 날씨 때문에 예약은 했는데 불확정이다. 핑계 아닌 무덤을 없다지만 왜 이리 막판에 해야만 하는지


다리 다친 것만 원망할 수도 없고 마음만 혼란하다. 두 개 남은 오름도 만만치 않다. 다리를 보면 온통 상처투성이인데 왜 이런 오름을 올라야 하는지 조차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래도 내가 정한 목표이니만치 오르고 싶은 마음, 땀을 바가지로 흘리더라도 오르고 동그라미를 칠 수 있은 흐뭇함을 맛보고 싶은 절규이다.


제주란 나에게 무엇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외로운 시니어의 몸부림을 받아줄 수 있는 제주, 끌리는 것에 빠져보는 나의 인생관에 청신호를 켜준 제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아쉽고 더 제주살이를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의 나의 욕심이다. 버릴 물건이 있나 창고를 뒤졌는데 여름 침낭 1개와 겨울 침낭 1개가 보였다. 나머지 물건은 이미 다 처분했다. 한라산에서 야영 한 번 할 기회가 생겨 육지에서 가져온 물건이다. 그러나 그 기회는 한 번 사라지고, 낙상사고로 2년이 지난 후 올해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7,8,9월 거의 매일 한라산에는 소나기가 내린다는 예보이다.


그간 오름 투어 중 소나기를 만나 홀딱 젖은 쥐새끼 모양의 몰골을 만든 것이 여러 번이다. 또한 우중에 산속을 탈출하는 긴박한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한라산 맑은 날을 기다리면서 올여름이 가고 가을이 간다. 이제 며칠 남지 않는 제주살이에 한라산 일박은 저 멀리 가고 있다.


그러니 과연 이 침낭을 어떻게 할까? 가져간다면 언제 사용할 기회가 있을까? 미련과 아쉬움이 잡고 늘어지지만 내 나이를 생각해서 결단을 해야 한다. 비요일, 모처럼의 시간에 전화도 걸고, 글도 써본다. 선풍기 소리와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제주의 오후의 시간을 알린다.


"통영 가면 빚을 내서라도 에어컨을 사고 만다"라는 아내의 말을 아침에 짠하게 들었다. 에어컨, 침대, 소파 없는 제주살이 6년, 그간 꽃을 찾고 고사리와 이끼를 배우고 오름을 탐사했던 시간들이 남들이 보면 은퇴 후 괜한 고생을 하는 제주살이로 보였겠지만, 수술한 다리, 가시덤불 긁힌 팔과 다리, 진드기에 물린 불알까지 온 상처로 얼룩진 제주의 시간에 나에게 소중하고 소중하다.


이런 생활을 함께 한 아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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