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어린 삼나무를 닮았다.
어린 삼나무의 아름다운 유혹
만년석송의 이름으로 잉크 묻는 시절을 떠올린다.
또렷이 기억하는 신언서판(身言書判)
어떤 블로그에서 본 만년석송은 아름다운 유혹이었다. 어린 삼나무를 보는 듯한 외형의 양치식물이라니 놀랍기도 하거니와 위로 우뚝 솟은 포자낭 이삭이 너무나도 황홀한 모습이었다. 석송은 땅을 기면서 옆으로 뻗어가다가 포자낭 이삭을 치켜세우는데 비해, 만년석송은 나무처럼 자라다가 가지를 치니 멋지다는 표현이 나도 모르게 읊조리게 된다. 만년석송, 나를 애태우는 너는 어떤 모습을 나에게 보여 줄래
양치식물 입문 1년이 흐른 초보자의 눈에는 신기한 양치식물이라면 무조건 찾고 싶은 위시리스트가 있다. 그 순위의 맨 위에서 만년석송이 자리 잡았다. 이 정보 저 정보를 섞으며 양치식물 탐사에 매진할 때이니만큼 만년석송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짙어진다. 영실에 오를 때면 발걸음의 호기심이 더덕더덕 묻는다.
만년석송은 우리나라 전역의 높은 산지에서 자라며, 일본, 중국, 히말라야, 유럽, 북아메라카 등 북반구 온대지역에 분포한다. 야생화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양치식물인 만년석송을 촬영하여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그만큼 만년석송은 매력적인 양치식물인 것이다. 가을이 접어든 어느 날 꽃팀을 구성하여 영실을 올랐다. 그중 만년석송을 찾는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정보에 의한 숲 속을 나뭇가지를 헤치며 찾는다. 용암석과 나무들이 얽히고설켜 접근을 불허하는 숲 속 같다. 가을이지만 바람이 없는 숲 속은 덥다.
어느 순간, 만년석송이 보였다. 온몸에 전기가 짜르르 흐르는 감동이었다. 사진에 보던 그 모습 그대로 내 눈앞에 있다.
펜글씨를 쓰던 70년대에는 잉크병이 따로 있어서 펜에 잉크를 묻혀 글씨를 썼으며, 손에 잉크가 묻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때 잉크가 내장된 만년필은 고급 필기구였고, 선물로 받은 만년필은 인기였다. 고등학교 시절 급훈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신언서판은 예전에 인물을 골랐던 네 가지 조건을 이르는 말인데,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을 이른다. 그만치 글씨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던 시절이다.
만년석송에서 만년필의 추억을 더듬는 시니어의 눈에 만년석송의 이름이 붙은 양치식물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 이름 그대로 맑은 공기 속에서 오래도록 잘 살아다오~
#양치식물 #만년석송 #신언서판(身言書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