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Jul 23. 2020

송림사 옆 슈퍼가게 할머니

송림사 옆에 작은 슈퍼마켓이 있다. 아니 슈퍼마켓은 너무 거창하고, 슈퍼구멍가게정도가 더 어울리는 작은 슈퍼이다.

아이가 없었더라면 훌륭한 경치의 큰절 옆에 이런 작은 알록달록한 구멍가게가 경관을 흐트린다며 눈살을 찌푸렸거나, 아예 있는지 없는지도 관심 없을(그래 내가 송림사를 방문한지 최소한 다섯번은 넘을텐데 오늘 처음 발견했으니 이게 더 맞겠다) 작은 슈퍼마켓이지만, 아이와 함께 다닐때는 웅장하고 경건하게 멋진 절보다 이런 작은 슈퍼가 더 반갑기도 하다.

짧은 낮잠 후 깨어보니, 원하던 백화점이 아닌 시골 어디엔가에 왔음을 알고 심퉁이 나서 차에서 내리길 거부하는 첫째를 달래기 위해, 저기 보이는 슈퍼마켓에서 먹을 걸 사자고 꼬셨다.

울상으로 내려 슈퍼마켓을 보더니 조금 표정이 누그러지고, 길을 건너 그 슈퍼마켓에 도착하니 표정이 꽤 풀린다.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그곳은 다른 시골 슈퍼마켓보다 더 깨끗하고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는 나물을 손질하고 계셨는데,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를 쓰지않고 손님을 맞이하고 자꾸 말까지 거시니 조금 불편하다. 마스크도 쓰지않은 채 자기 옆자리가 시원하니 이리로 오라고 하시는데, 시골 할머니들의 과한 친절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아직 뭐든 단 게 들어가있음 좋아하는 둘째는 순순히 바나나우유를 손에 들고 나설 수 있지만, 잠이 덜 깬 첫째는 까다롭다. 자판기에서 직접 버튼을 눌러서 음료수를 꺼내야 된단다.

할머니께선 여기 음료수가 많은데 왜그러냐고 하시지만, 난 하나만 사서 죄송하다고 바나나우유만 계산하고 자판기를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그때 주인할머니 포함 주위에 계신 세 분 할머니들이 일제히 자판기 위치를 상세히 알려주신다. 세 분다 마스크는 쓰지않으시고.

이때만 해도 역시 시골할머니들의 오지랖은 보통의 할머니보다 더 심하다 라고 생각하며, 말로만 감사하다 하고 어서 아이들을 챙겨 자리를 뜬다.


자판기 음료를 직접 뽑은 첫째가 이제서야 과자도 사겠단다. 다시 그 슈퍼마켓으로 간다.

다시 온김에 뭐든 빨대없이 못 먹는 둘째의 빨대를 달라고 했는데, 그 빨대를 찾기위해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힘든 걸음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시더니 결국 빨대를 찾아주신다. 그 걸음이 너무 힘들어보여서 내가 그냥 먹여보겠다고 했는데, 안된다고 아기 힘들다고 기어이 빨대를 찾고야 마셨다.


첫째가 이것저것 살 것을 고민하는, 아니 변덕을 부리는 동안에도 그냥 그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셨고, 둘째가 햇빛반 그늘반인 자리에서 바나나우유를 먹는 게 그리도 안쓰러우신지 자꾸 시원한 자리를 권하신다.

파는 토마토 색이 너무 예뻐서 신랑에게 이 토마토 색 진짜 예쁘다했더니,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개 먹어봐 어차피 작아서 팔지도 못해"하신다. 여러번 권하시는 게 진심으로 내가 먹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의 가치관이나 시선으로 여과된 세상이다.

난 슈퍼주인할머니를 당연히 물건을 많이 팔기만을 바라고, 오지랖이 심하고, 코로나 시국과 관련된 위생관념은 없는 할머니라는 고정관념으로 보았다.

그래서 하나만 사는 것에 미안해했고, 자판기 위치 설명이 귀찮았고, 마스크도 안 쓰고 옆자릴 권하는 게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 분은 그저 정겨운 시골 할머니 그 자체셨다.

불편한 몸으로 아기의 빨대를 열심히 찾아서 건내주시던 투박하지만 따듯한 손, 아기가 더운 게 너무 마음이 쓰이고 안쓰러우셨던 주름패인 깊은 눈, 아기들이 먹는 것만 봐도 너무 귀엽다는 듯 웃으시는, 아기마냥 사랑스러우신 미소, 딸같은 아기엄마가 맛있어보인다는 말에 그 토마토를 정말로 하나 먹어보길 바라는 친정엄마같은 마음.

다시 그 분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우리에게 무언갈 팔려고 애쓰는 슈퍼가게 할머니가 아닌, 그냥 옆집 할머니같은 얼굴을 하고 계셨다.

돌아가는 우리 가족을, 마치 딸이 친정집에 왔다가 보내는 엄마마냥 아쉬운 표정으로, 우리가 멀어질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시던 할머니..

나는 왜 이곳에서 내가 아는 도시에서의 그 습성만을 생각하고 있었던걸까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보고, 또 살게 되어있다고 한다.

하마터면 나는 할머니의 따스한 얼굴을 못 보고, 내마음에 고정관념만 하나 더 쌓고 오늘을 지날뻔했다.

그곳에 그렇게 자리해주셔서, 오늘 우리 첫째의 짜증을 빨리 끝내게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내게 가슴 따뜻함를 안겨주시고, 내가 함부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다는 깨달음을 주시고, 내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지..내가 따스하게 보는만큼 나도 따스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까지 알려주신, 천사같은 할머니.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그 자릴 지켜주세요.

저처럼 아둔한 젊은이가 할머니처럼, 한걸음 성숙하게 나이들어 갈 수 있게요.





작가의 이전글 다시 공부하는 사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