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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l 22. 2020

다시 공부하는 사람으로

한 우물을 깊게 파는 학구파는 아니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조금씩 맛보는 걸 좋아하기는 했다.

진득하게 한 가지를 끝까지 해본 건 하나도 없지만, 역사, 문학, 철학, 미술, 심리 조금씩은 다 공부해보았고, 운동도 수영, 스쿼시, 요가, 필라테스, 헬스, 그리고 승마까지, 초보자의 수준 전후로 할 줄 안다.

나름대로는 세상에 꽤 호기심을 가지고, 소심한 도전을 계속하고 살았는데, 아이가 생긴 뒤로는 그 어떤 일에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알고싶지도, 도전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내게 와 있는 그 아이의 존재가 너무나 경이롭고 아름다웠기에, 내 호기심이 온통 아이에게 집중되었으리라. 또한 그 아이로 인해 매번 도전이 가득했던 상황을 맛보고 있었기에 다른 일에까지 도전할 여력이 없었으리라.


뭐든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나여서일까? 만4년을 육아만 하자 더이상은 버틸 수 없을만큼 내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났다. 더이상은 아이가 내 모든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두아이 육아에서 오는 원치않는 여러 도전들을 더이상 지속할 힘이 남지않았다.


그럴 때 나에게는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시 나를 채워 줄 에너지..

그렇게 채워진 에너지를 내 아이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역사를 미술을 공부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얼마만에 타의가 아닌 자의로 몸을 움직여보는건가. 필라테스의 힘든 동작이 전혀 힘들지않다. 강사님의 "물 한번 마시고 할까요?" 하는 물음에 단 한번도 "네" 한 적이 없다. 그 시간도 아깝기 때문이다.


엄마의 공부, 엄마의 운동은, 엄마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걸 누가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취미활동이나 하고, 운동이나 다니느냐고 쉽게 힐난할 일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건망증이 심해졌다. 아니 통째로 기억이 사라지기도 했다.

첫아이의 신생아 시절, 돌이 지나고 아장아장 걸을 때의 시간, 둘째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또 출산하는 그 달까지도 함께 한 여행과 첫아이와의 시간들, 그리고 두 아이를 육아하며 보낸 시간들...그 시간들을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얼마나 그 얼마나 열정적으로 보냈는데..기억이 나질 않는다.


남편이 기억을 더듬어줄때마다 "정말 그랬다고? 그런 일이 있었나? 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정말 기억이 안 나? "한다.

정말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이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운동을 시작한 지금, 나는 무언가 깊은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시간들은 그 안에서 참 많이 웃었고 행복했고 소중했던 시간들임이 분명하다. 정말로 단언컨대 내게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보물들과 함께한 시간들이니.. 훗날 그 시간들이 얼마나 그립고 그리울까?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이 나지않는, 어두컴컴하게 느껴지는 그 시간들을 뒤로하고

다시 나로, 다시 호기심 많고 도전해보고 싶은 게 많던 나로 돌아가려니 왠지 가슴이 설렌다.


엄마니까, 엄마가 됐으니까 아무것도 안해야하는 게 아니라, 더 해서 그걸 내 아이들과 나누어야한다.

엄마가 더 호기심을 가지고, 더 도전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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