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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Nov 21. 2021

책 리뷰

오소희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room#1 당신만의 방


오소희 작가의 <엄마의 20년>은 내게, 내 사고에, 커다란 균열을 내준 책이다. 그 책은 그동안 원인도 모르고 답답했던 것들에 대해서 시원하게 답을 안겨주었다. 그 책으로 인해 내 삶의 각도가 45도 이상은 틀어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학창시절 이후 더이상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스스로 쓰고싶어져서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모두 <엄마의 20년>이라는 그 책 한 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오소희 작가의 명성은 <엄마내공>이라는 육아서로 익히 알고 있었다. 육아서만 읽던 한때, 유명한 육아서로 추천받아 <엄마내공>을 읽었는데, 사실 그 책을 읽고서는 '내 육아관이랑 안 맞네'하고 대충 읽고 책장에 꽂아두었다. <엄마내공>을 읽으며 오소희 작가를 상상했을 때, 후덕한 체격에 정갈한 올림머리를 하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 50대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작가님은 긴 퍼머머리에 근육질의 몸을 가지셨다). 


여튼 <엄마의 20년>은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삶에 완전히 길들여져 있던 내게 엄청난 충격과 기쁨을 안겨준 책이었고, 그로 인해 다시 책장에 꽂혀있던 <엄마내공>을 꺼내 읽었고, 그 이후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를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여행 분야의 작가였다니! 하는 같은 취향을 가졌다는 반가움도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작가와 나의 공통점은..

점점더 알아갈수록.. 작가님과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위안을 넘어선 팩트>


내게는 좋거나 나쁘다고

단정하기 애매한 능력이 있는데

가질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서 욕망하기를 멈추는 능력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작가님의 그 능력은 좋은 능력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 반대의 성향을 가진 나는, 즉 가질 수 없다고 판단되면 더 심하게 욕망하는 성향을 가진 내가 생각하기에, 작가님의 그 능력은 참으로 현명한 것임이 틀림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금씩 덜해지기는 하지만, 나는 그저 그랬던 남자가 갑자기 내게 쌀쌀맞게 굴면 갑자기 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희한한 취향을 가졌고, 있음 좋고 없음 말고 했던 물건이 갑자기 구하기 어려워지면 더욱 갖고싶어지는 물욕을 가졌다. 


아직은 완전히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확실히 아는 것은, 작가님 말처럼 욕망하지 않으면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에서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 조금씩 덜 욕망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차라리 가진 것을 어떻게 가꿀까 생각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다.

중략

우리 가족이 깃든 것은 정말이지 아무나 못 누리는

행운을 차지한 일이 되는 거였다.


결핍은 다만 해석으로부터 오는 거였다.

풍요도 다만 해석으로부터 오는 거였다.








쉽게 주어진 것은 귀하지 않은 법이라,

그들은 못 가진 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마어마하게 행복하지 않다.


제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인생에도

날카로운 돌부리가 있고

그것만으로도 인생 전체가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자기 위안을 넘어선, 팩트다.


중략


어렵게 주어진 것은 귀한 법이라.

그들은 가진 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마어마하게 불행하지 않다.


제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인생에도

간간이 내리쬐는 햇살이 있고

그것만으로도

인생 전부가 살아진다는 것은

단순한 자기 위안을 넘어선, 팩트다. 



오소희 작가의 책이 좋은 이유가 참 많지만 그 중 베스트를 꼽자면,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내가 나를 좋게 볼 수 있다는 거다. 자책이 심하고 눈치를 잘 보는 내가, 작가님의 책을 읽고 나면, 나 스스로에게 다정해지고 따듯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작가님은 글로 나를 토닥이고 안아주는 느낌이 든다. 위의 문장들도 그랬다.


뭐라 콕 집어 그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아니 설명할 수 있지만 대면하기 싫은 것일지도 모른다. 여튼 저 문장들은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문장들이었다.


내 인생은 평탄한 편이다. 사랑 많으신 부모님을 두었고,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을 만났고, 안정적인 직업도 가졌다. 그런 평탄한 삶이 때론, 아니 자주 불안했다. 나의 평온한 삶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질 것 같으면, 지나치게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다. 남편은 내가 온실 속 화초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런 내가 나 스스로도 싫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삶도 그 나름대로 쉽지 않다고 말해주어 고마웠다.


또한 나는 때때로 불행해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다. 나는 그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기부를 한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선량한 마음 이전에, 나의 불행을 막고 싶은 부적과도 같은 속셈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그토록 불행하지 않다는 말이, 역시나 고맙다. 그냥 내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여행자의 집>


프리미엄은 불경하다.

노동한 만큼만 얻으련다.

집에서 가꾼 탄력으로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일하면 되니.


작가님의 건강한 사고방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내 주위에는 부동산으로 이득을 본 지인들이 많다. 솔직히 부러웠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나에게는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 식대로 돈을 벌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작가님도 그렇게 말하시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 기쁘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젊지 않지만

그때처럼 무르지 않고

그때처럼 외롭지 않다.

전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에는 윤곽을 좀 잡은 것도 있다.


그래도 종종 울며 간다.


중략

그런 생의 짓궂은 속성을 알게 될수록

들꽃처럼 피어나는 자그마한 기쁨들이 소중해서

더 자주 감격하고

더 자주 감동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져있는데, 모든 문장이 철학적이다. 쉽게 읽히지만, 쉽게 읽고 지나칠 수는 없다.


나이 드는 게 두려웠다. 스물다섯이 지나서는 나이가 한살한살 쌓일 때마다 슬펐다. 그런 이십대를 지나 서른이 되었을 때는 이제 거의 세상이 끝나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올해 마흔이 된 나는 기뻤다. 내 나이가 마흔이 된 것보다, 우리 아들들이 6,4세가 된 게 기뻤다. 그리고 더이상 나이가 드는 게 슬프지 않다. 비록 예전의 미모(?)는 퇴색되어가지만, 마음이 너그러워짐을 느낀다. 무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전보다 좀더 윤곽을 잡은 내 삶이 좋다. 그래도 종종(아니 아주 자주) 울고 가기는 하다. 작가님의 저 문장들이 너무 좋다.





시간은 모두에게 확실하고도 확실한,

절대 예외없는 로드맵을 제시한다.


생,

로,

병,

사.


그럼에도 우리는 이 로드맵을

매일의 욕망에 파묻혀 가볍게 간과한다.

(로드맵을 벗어날 예외를 찾아 꾀를 부린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든 아니든 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일, 생로병사. 매일의 욕망에 파묻혀 간과하고 꾀를 부려보지만, 결국은 공평한 삶의 과정. 조금 더하거나 덜할 뿐이지, 결국은 거기서 거기이다. 겸허히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적응하기, 그리고 많은 걸 욕망하지 않기, 본질에 충실하기.  



<아름다움에서 추락할 때>


겸허히 다시 기회를 주는 것,

처음인 듯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

새로이 좋은 추억을 쌓아가는 것.



예전에 사주를 봤을 때 나보고 "대나무"같다고 했다. 옛날로 치면 "선비"라고 했다. 바른 걸 추구하고 바르지 못한 건 단칼에 끊어내고 뒤돌아보지도 않는다고. 바른 걸 잘 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싫은 걸 단칼에 잘 끊어내는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때 역술가는 말을 보태셨다. 갈대처럼 살라고. 대나무는 곧지만 쉬이 부러진다고.


오래토록 머릿속에 남았다. 쉬이 부러지는 대나무보다는 유연한 갈대가 되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지향하는 바였다. 오소희 작가님의 저 문장도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가라고 다정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일탈에 대하여>


나이가 들면 일탈하는 방법을 곧잘 잊어버린다.

애써 쌓아놓은 일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두렵고,

되돌아왔을 때 다시 쌓을 체력도 달린다.

중략

일탈하지 않는'어른'은

조용히 병든다.


중략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어라.

살겠다고 빠져나간다. 


"작가님 만세!" 를 외치고 싶은 문장이다. 나의 이름보다 앞에 붙은 나의 직함들 때문에 나는 내 욕망들을 자주 숨겨왔다. 그리고 어느새 내 욕망들은 꽁꽁 묶여져 내 밖으로 절대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나는 조금씩 위축되고 병드는 느낌이었다.


일탈을 하라니, 일탈을 해야한다니.. 이렇게 고마운 등떠밈이란.. 오소희 작가님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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