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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ug 11. 2021

지금 세대에 맞는 엄마가 되자!

밤 9시 30분쯤부터 재우기 시작한 둘째가 11시8분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하고 나는 방을 빠져나왔다. 아이 옆에서 자는 척을 하면서, 나중에 나와서 무얼할지 계획하면서, 그 시간을 참았다.


깨물면 빠삭 소리가 나는 짭쪼름한 과자를 먹고 싶었는데, 하필 초코가 들어간 달콤한 과자밖에 없다. 그럼 컵라면을 먹으면 되지. 물을 끊이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내일 남편이 아침으로 먹을 김밥을 몇 개 주워먹는다. 너무 많이 먹었나 싶을만큼 집어먹고(먹은 티가 안 나게 김밥 위치를 정리해두고) 다 익은 컵라면도 먹는다. 그리고 아까 저녁시간에 나만 먹지 못했던 수박도 꺼내서 먹고, 마지막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으로 마무리한다. 그냥 과자 조금 먹으면서 책을 읽을랬는데, 먹는 일만 커졌네.


무의식의 반영인가.

오늘 저녁으로 김밥을 쌌는데, 남편은 김밥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라면과 함께 준다. 그런데 6,4세 둘이서 벌써 김밥을 네 줄이나 먹어놓고, 두 아이는 저녁식사를 하는 아빠 옆에서 라면을 빼앗아 먹는다. 물에 씻어서 먹지만 매운지 수박도 같이 엄청 먹었다. 나는 남편의 저녁을 린 후,  아이들에게 라면을 덜어 물에 씻어주고, 수박도 입에 넣어주고, 아이들이 흘린 수박물을 두 아이를 왔다갔다하면서 닦아주었다. 세 사람은 열심히 먹었고, 나는 세 사람의 식사를 열심히 보조했다. 세 사람이 배부르게 식사 끝 후 놀이방으로 이동했고, 나는 몸만 빠져나간 식탁의 남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뒷정리다. 다이어트 중인 나는 설거지하면서 남은 음식을 주워먹지 않으려고 일찌감치 양치질을 해서, 오늘은 그들이 남긴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인기메뉴인 라면이어서 그런지 하나도 남지를 않았네)


그런데 아이를 재우고 나만의 시간나는 그들이 먹은 저녁 메뉴를 똑같이 따라 먹었다. 김밥-라면-수박 거기다가 빵은 보너스. 무의식 중에 부러웠나. 별걸 다 부러워하네 싶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평소에 엄마가 컵라면을 못 먹게 하셨다. 친구들과 하교 후 무슨 행사를 준비하느라 간식을 먹을 일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컵라면을 사먹는데 나는 안 먹었다. 엄마가 안 볼 때도 엄마 말을 들어야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당시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컵라면이 비싸다고 생각다. 그런데 친구들이 컵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너무 먹고 싶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결국 컵라면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부러웠나 보다.


나는 남편보다 옷장의 공간을 세 배이상 더 많이 사용한다. 그 옷장에 든 옷의 가격을 합쳐보면 세 배가 아닌 삼십배쯤 차이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편을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오늘처럼 세 사람 시중드는 일에 심사가 틀어지는 날이면(꼭 그런 날이 아니더라도;;) 득템(?)을 해왔던 것이다. 내가 밥은 제대로 못 먹지만, 아이템은 훨씬더 많으니까, 내가 이겼다(?). 그렇게 말도 안되게 위안과 합리화를 하며 5년여를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내게 자신들의 시중드는 일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다. 늘 내가 자처하는 일이다. 따신 밥은 아이들과 남편에게 먼저 주는 일, 괜히 나는 잔반을 처리하는 일, 아들들이 아빠와 노는 게 정서적으로 좋대서 나는 멍석을 깔아주고 뒷정리를 하는 일, 그들이 사용하는 공간(특히 그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변기)을 청소하는 일 등을 내가 자처해서 한다(남편에게 화장실청소를 한번 시켜봤는데 청소를 한건지 물장난만 한건지싶어 그담부턴 그냥 내가 한다. 그러니까 결혼 8년차동안 남편은 화장실청소를 한 손가락에 꼽을만큼이라도 해봤나모르겠다). 그래놓고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시녀(?)같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고, 그걸 쇼핑으로 보상하고, 또 내일도 똑같이 시녀(?)처럼 행동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쇼핑을 하려고 그러나싶네;;)


싱크대에 서서 김밥을 썰면서 나는 몇 개 주워먹는 걸로 내 저녁식사를 끝냈고, 세 사람의 저녁 시중을 열심히 들었고, 또 먹은 걸 고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간 자리의 그릇을 치우고 뒷정리를 했다. 세 사람이 놀이방에서 웃는 소리가 어느날은 음악소리처럼 즐겁게 들리지만, 또 어느날은 일하고 있는 나와는 아주 다른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


그러지 말고 나도 내몫의 김밥을 예쁘게 접시에 담아서 그들과 함께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수박물이 떨어질 때마다 첫째, 둘째에게 왔다갔다하며 닦아주지 말고 그냥 자기들이 옷에 닦든말든 나도 수박을 즐기면 되었다. 아무도 내게 요구하지도 않은 희생을 내가 자처해놓고 왜 뒤에서 궁시렁거릴까?


우리 세대 엄마의 모습을 나는 닮지 말아야지 했는데, 보고 자란 게 그거라고, 그렇게 하는 게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또 나름의 자아는 확고해서 그러고 난 뒤 혼자 짜증을 내고. 이건 분명 가족 중 그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뿐더러, 다이어트 중인 나는 밤12시에 과식을 했다. 차라리 또 쇼핑이나 할걸 그랬나. 앞으론 혼자 오버하지 말아야겠다. 같이 즐겁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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