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 전 수료한 박사과정 졸업논문 주제로 '신사임당'을 선택했었다. 나는 <여성사>를 연구하고 싶었으나 내 전공은 <교육사 교육철학>이었기에, 그 둘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주제로 신사임당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 때 신사임당 관련 논문을 꽤 읽었는데, 이미 연구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내가 특별히 더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신사임당 관련 논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마음이 불편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논문을 손놓고 있었던 5년동안 주제를 바꿔볼까 생각했다.
며칠 전 지도교수님과의 통화에서 그 의사를 잠깐 내비쳤는데, 교수님께서 반대하셨다. 이제 논문이 곧 나와야 되는 시기에 더이상 탐색만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교육사 교육철학>이라는 전공 내에서 논문을 쓰자면 조선왕비사보다는 신사임당과 율곡을 주제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 논문을 쓰긴 써야되니까, 다시 신사임당으로 돌아가보자 싶었다.
그러고 며칠동안 신사임당에 대해 생각해봤다. 1982년생인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장래희망 세 칸 중 한 칸은 현모양처라는 글자가 흔히 쓰여지던 시절이었다. 장래희망을 세 가지 써내야하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으면, 한 칸은 현모양처라고 적었다. 장래희망으로 그것을 적어내면 부모님도 선생님도 흐뭇해하던 시절이었다. 즉 현모양처는 어른들이 기뻐할, 여자아이에게 아주 무난한 장래희망 중 하나였던 것이다. 또어른들에게 잘 보이기위함뿐 아니라, 나 역시 막연히 현모양처로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신사임당(=현모양처)은 오랜시간 여성들의 롤모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그 신사임당 롤모델은 사회가 여성들에게 조용히, 하지만 매우 치밀하게 '주입'해놓은 롤모델임을.
나의 친정엄마의 꿈은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정원에서 화초들에게 물을 주는 모습'이었다고 하셨다. 결혼을 하면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고,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예쁘게 앞치마를 매고 밥하고, 화분에 물이나 주면서 살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실상은 남편과 함께 경제활동에 뛰어들었다고,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그렇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탄하듯 말씀하셨다. 즉 엄마 시대 대부분 여성의 꿈은 현모양처이고, 경제활동이라도 하면 그것은 무언가 팔자 쎈, 불행한 여자의 삶으로 생각했다.
엄마 딸인 내 세대는 좀 달라졌을까. 일단 여자도 경제활동을 당연히 해야한다는 인식은 생겨났다. 여자의 경제활동이 팔자 쎈 불행한 여자들만 하는 게 아니라, 남녀 막론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육아 앞에서 다시 사회는 여성들에게 현모양처를 권한다. 육아 앞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의 경력단절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결혼 전 훌륭한 커리어를 이룬 여성들도 육아를 하면서 직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치과의사인 사촌언니는 언니보다 연하였던 남편이 자리를 잡자마자 일을 그만두었다. 즉 남편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때까지만 언니가 일했던 것이다. 남편의 친구 중 여의사 대부분은 육아를 시작하면 일을 그만두거나 하더라도 풀타임으로 근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의사정도면 공부할만큼 했는데도 육아 앞에서 커리어는 중단된다. 어제 우연히 서현진아나운서가 나온 방송을 보게 되었다. 한때 최고의 아나운서였고 일 욕심도 많아보였는데,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 경력단절이 그녀를 많이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고학력 전문직 여성의 경우도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피할 수 없는 일인데, 그렇지 않은 직종의 여성들에게는 더 당연한 듯 그것이 강요된다. 나의 경우도 고학력 전문직종이 아니라서 그런지 남편에 비해 수입이 적어서 그런지, 아주 당연하게(부부간 그 어떤 상의나 언급조차 없이) 육아 앞에서 남편이 아닌 나의 일이 중단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딸들 세대는 어떠할까? 그 아이들은 현모양처 롤모델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 나아진 점은 있겠지만, 주위에 딸을 가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들과 딸의 사교육 내용이 다르다던가(남아는 영수, 여아는 예능), 딸이 너무 많이 배우면 안된다는 류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말하는 걸 보면 나는 깜짝씩 놀라곤 한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 어머니들이 있다니!
하지만 사실 아들만 둘인 나도 어쩌면 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이기에 더 공부를 시키고 밥벌이를 할 수 있게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딸이었다면 덜 가르치고 밥벌이에 덜 걱정이라는 그들의 생각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즉 엄마들의 생각이 이정도에 머무르는 한우리 딸들의 생각도 더 나아지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딸들 세대도 현모양처를 장래희망으로 꿈꾸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싶다.
현모양처를 꿈꾸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게 적성에 맞고 좋으면 하는 거다. 다만 우리 사회가 그것을 교묘하게 권하고 있고,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채 강요당해 왔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결혼적령기를 대놓고 이야기하고, 제때(?) 시집가서 가임기간 내에 아이를 낳고 사는 게 얼마나 좋고 행복한지, 아니 그것이 '정상적'인지 꾸준히 보여준다. 제때(?) 시집가서 아이낳는 여자는 정상이고, 고학력 미혼여성은 '골드미스'라는 말로'다르게' 부른다. 그 골드미스라는 단어가마치 그녀들을 추켜세우는 듯하지만, 그 속내는 다른 말을 한다.
아니 고학력 미혼 노총각도 얼마나 많고, 나이가 어리지만 결혼자금을 마련할 엄두가 안나서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남성청년도 많은데, 왜 '골드미스'라는 말만 있는 걸까? '골드미스터' 라든지, '실버맨'이라는 단어는 왜 없냐말이다. 사회는 은근히 골드미스를 폄하하고, 제때 시집가서 제때 아이를 낳고 마치 '현모양처'처럼 사는 여성의 모습을 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는 지울 수 없다.
아무튼,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 역시 그 현모양처 롤모델에서 자유롭기 힘들고, 그 상징적인 인물 신사임당은 지난 5세기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우려먹힐 존재일 것 같다. 더군다나 5만원권 지폐에까지 들어가게 된 분이니.
신사임당이 5만원권 인물로 선정되었을 때 가장 반대한 곳이 여성단체였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거의 정확히 그 반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동안 만들어놓은 신사임당의 현모양처 이미지를 우리 여성들은 주입받았고, 롤모델로 강요받아왔다. 누가 주입했고 누가 강요했냐고 묻는다면, 500여년 아주 오랫동안 지난하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할만큼 은밀하게 꾸준히, 우리 사회 문화가 암묵적으로 그래왔다. 그런데 그 이미지를 5만원권에까지 넣으면서, 더 여성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하며 여성들의 롤모델로 만드려는 것이니, 여성단체가 반대할 수밖에.
현모양처라는 말에 주체적인 자아, "나"는 없다. 현명한 어머니와 어진 아내. "나"라는 자아의 주체성은 없고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역할만 있는 것이다. 송시열이 만든 신사임당 신화 이후 몇 백년간 사회(그동안 지배층에 속했던 남성)는 여성들에게 그 현모양처를 권하고 있었고, 이제 여성인물로서는 유일하게 화폐의 주인공으로 만들면서(마치 여성으로서 최고봉의 위치에 넣어) 더욱 그 현모양처를 권하는 느낌이다. 여성단체는 그것이 싫었을 것이다.
이제 그만 여성을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한정짓지 말고, 한 사람으로 주체적인 자아로서 살아야하지 않을까. 이는 물론 남성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남성도 누구의 아버지이거나 남편이 아닌, 그 자아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고, 여성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래서 신사임당 담론이 불편해졌다. 신사임당=현모양처 도식이 싫었다. 신사임당이 현모양처가 아닌 게 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는데,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신사임당=현모양처에 머물러 있고, 앞으로도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 남아주길 바라는 남성들(사회)의 인식을 마주하는 게 거북했다.
어제 남편에게 그 이야길 했다.
나 : "여보, 신사임당이 현모양처 아닌 거 알지? 그런데 사회는 여전히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이길 바래. 그래서 논문 주제로 신사임당을 하는 게 뭔가 거북해"
남편 : "그래? 근데 나는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데. 관심이 없을 뿐이야"
나 : (그래...)
남편 : "그래도 논문을 꼭 써야하니까, 그냥 교수님이 추천하신 주제로 써"
나 : "그래, 근데 왜 내가 논문을 꼭 써야하지?" "내가 장학사가 되거나 승진을 할 때 논문 패스가 도움이 되겠지만, 나는 지금 애들 봐줄 사람이 없어서 복직도 못하는 중인데? 내가 장학사가 되려면 지금 오빠가 일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근무를 해야하는데, 내가 장학사가 되도 되겠어?"
남편 : "아 그래? 그럼 안하면 더 좋지. 논문도 안 쓰고 장학사도 안 하면 되겠네(복직도 안하면 좋고)."
논문주제 이야기를 나누면서 논문을 안 쓰는 쪽으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남편은 논문을 안 쓰면 제일 좋다고 말했는데, 근데 그게 누구에게 좋은걸까? 내가고생 덜 하니까 나한테 좋은건가? 아님 애들 어디 맡기지않고 엄마손으로 키워서 애들에게 좋은건가? 아님 이런저런 잔소리도 푸념도 듣지않을 남편이 좋은건가?
둘째 아이에게 앞으로 엄마가 공부를 좀 해야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 : "엄마가 논문을 써야하니까 앞으로 시간을 좀 줘"
아이 : "왜 논문을 써야해?"
나 : "그래야 엄마가 훌륭한 사람이 되지"
(이건 아이 눈높이에서 그냥 하는 말이다. 논문을 쓴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아니거나 하진 않는다. 오해없으시길)
아이 : "훌륭한 사람 하지마! 엄마잖아!"
나 : (그래 너한테는 훌륭한 사람보다 엄마인 게 더 중요하지^^:)
남편의 퇴근 후 설거지와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잠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게, 둘째는 이만큼의 책을 가져오면서 읽어달라고 한다.
육아는 참 행복한 일이다. 모든 엄마들이 육아와 커리어앞에서 결국은 육아를 선택하게 할만큼 육아는 중대하고, 보람차고, 행복한 일이다.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로 행복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때때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왜 여자는 육아와 경력단절을 함께 겪어야 하는 걸까?
내가 박사과정에 입학할 때 석사과정에 입학했던 미혼의 여선생님과 기혼의 남선생님은 이미 작년에 박사 논문을 패스하고 학위를 받았다. 기혼의 엄마 여자는 박사학위를 받기 힘든 게 개인의 의지와 능력부족인 걸까? 서현진 아나운서처럼, 안타깝지만 당연한 현실이기에 그냥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게 현명한 걸까? 친정엄마 말대로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편하게 현모양처 노릇만 하면 되는 삶을 행복하다고 자족하며 살면 되는걸까? 아니면 새벽기상이라도 해서 그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논문을 쓰고 낮에는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는, 슈퍼우먼(현대판 신사임당) 같은 여자가 되기위해 더애를 쓰면서 살아야할까?
결혼을 하고 첫명절 양가에 방문했을 때, 남편은 우리집에서 손님이었고, 나는 남편집에서 일꾼이었다. 그 후 나의 불만은 남편과의 지난한 싸움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 더이상 남편(남자)과 싸울 생각은 없다. 남편 역시 유구한 가부장제 사회문화의 희생양인 부분이 있고, 내가 육아로 아주 힘들었던 시기에는 내가 힘든 것만 보였는데 이제 남편도 남자 가장으로 얼마나 어깨가 무겁고 힘이 드는지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도 그들만의 고충으로 힘들겠지만, 육아를 두고 경력단절을 겪어야할 때 당연한 듯 여성이 일을 포기해야한다는 인식은 바뀌면 좋겠다. 육아 앞에서 여성들이 육아와 커리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둘을 충분히 양립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면 좋겠다. 신사임당이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경력단절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신사임당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친정을 가졌고 또 인식이 깨어있었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주었던 부모님 덕분에 그녀는 끝내 화가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쓰면서, 내가 신사임당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논문은 자신없지만, 이미 연구된 신사임당의 진실을 여기 브런치에 써보고 싶다는 마음은 생겨났다. 신사임당에 대해 좀더 정확히 알리는 일..나름 의미가 있지않을까싶다.
지난주 화이자 백신접종이후 계속 몸이 좋지 않다. 남편 말로는 오래 가는 사람이 있다는데 하필 그게 나라니.. 이 글의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 걸 백신 탓을 해보며... 어쨌든 이 글은 신사임당을 권하는 사회문화, 그리고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그러나 신사임당은 겪지 않았던 그 경력단절, 그리고 송시열이 이미지한 현모양처가 아니었던 신사임당의 진실.. 이런 걸 이야기 하고 싶었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차차 신사임당의 삶에 대해 더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