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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l 05. 2021

조선 왕비들의 수명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35세(서울대 의대 황상익)이고, 조선 왕의 평균 수명은 46.1세라고 한다. 그러면 조선 왕비의 평균 수명은 어떨까?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겨 평균을 내보니, 51세 정도 나왔다(학술논문이 아니라 흥미로 해본 것이고, 집에 계산기가 없어서 정확하진 않다).


현대의 평균수명을 살펴보면 남성이 78세, 여성이 85세로 남성보다 여성이 7세정도 더 오래 사는데, 조선시대에도 왕보다 왕비가 약 5세정도 더 오래 산 것으로 나왔다. 평균 80대에 7세 차이와 50대의 5세 차이니까, 성별에 따른 수명 차이가 현대보다 조선시대에서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비보다 왕이 더 스트레스가 커서일까? 아님 왕비보다는 왕이 독살 등의 변수가 있어서일까? 지만 왕비도 사약을 받거나 타살되거나, 아기를 낳다가 젊은 나이로 죽은 사례가 꽤 있으니, 왕비가 왕보다 오래 산 이유로 왕보다는 스트레스가 적었던 것이 더 큰 이유일 것 같다.




다시 왕비들의 수명으로 돌아와서,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비인 신의왕후 한씨를 시작으로, 그 이후 추존왕비 중에서 살아생전 궁에서 살지도 않았던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를 제외하고, 총 46명의 왕비들의 수명을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80세 이상(3명) : 정순왕후 송씨(82세), 헌경왕후(혜경궁)홍씨(81세), 신정왕후 조씨(83세)


가장 장수한 세 왕비 삶의 공통점을 꼽아보자면, 모두 남편이 일찍 죽었다는 것이다. 정순왕후의 남편 단종은 17세, 혜경궁의 남편 사도세자는 27세, 신정왕후의 남편 효명세자는 22세에 이른 죽음을 맞는다.


자식을 살펴보면, 정순왕후는 자식이 없었고, 신정왕후는 이십대 초반의 아들(헌종)을 잃었다. 혜경궁은 첫아들은 일찍 잃었지만 둘째인 정조가 그래도 사십대후반까지 살았다. 혜경궁은 자신의 아들딸보다 더 오래 살았다.


즉 세 왕비 삶의 공통점을 굳이 꼽아 보자면, 남편을 일찍 여의었다는 것이다.그 외에 주목할만한 공통점은 내 지식안에선 찾기 어려웠다.(혹시 더 아신다면 알려주세요)



70세 이상(4명) : 단경왕후 신씨(71세), 인원왕후 김씨(71세), 효정왕후 홍씨(73세), 순정황후 윤씨(73세)


위 네 명의 왕비 중 단경왕후와 효정왕후는 남편과 일찍 헤어졌다(단경왕후는 스무살에 이혼당했고, 효정왕후는 헌종의 계비인데 남편 헌종은 이십대 초반의 나이로 일찍 죽음). 그리고 인원왕후와 순정황후는 계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후로도 계비인 왕비들이 장수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는데, 계비들이 장수하는 이유로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힘이 빠진 상태의 남편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인원왕후의 남편은 무려 숙종인데, 숙종은 여러 차례의 환국을 주도하며 스스로 부인을 갈아치운 남편이다. 첫번째 부인 인경왕후는 스무살에 병으로 죽었고, 두번째 부인 인현왕후와 세번째 부인 희빈 장씨를 자신의 정치에 이용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얻은 왕비가 인원왕후인데, 내 생각으로 마지막 결혼인 인원왕후와의 결혼에선 숙종도 힘이 많이 빠졌을 것 같다. 이미 희빈이 낳은 세자(경종)가 있었고 그 외에 후궁에서 얻은 다른 아들이 둘(그 중 한 명이 영조) 더 있었기에 인원왕후와의 사이에서 또다시 자식을 보고자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숙종은 그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고, 어쨌든 숙종도 늙고 힘빠진 상태라 인원왕후가 남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적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순정왕후의 경우 남편이 더욱 힘이 없고 무력한 존재였는데, 남편 순종이 재위 4년만에 일본에 의해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고 창덕궁에 그저 '기거'했기 때문이다. 즉 왕이라고 할 수도 없을만큼 힘이 없고 무력한 상태인 남편이었으므로, 남편으로부터 스트레스 받을 일이 극히 적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네 명 왕비 모두 공통점은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무자식이 상팔자인가? 자식이 주는 삶의 기쁨은 덜 했을지언정 최소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적었던 걸까? 아무튼 70세 이상 장수한 왕비들의 공통점으로 자식이 없다는 것이 있다.



60세 이상(10명) : 정희왕후 윤씨(66세), 소혜왕후 한씨(68세), 정현왕후 윤씨 (69세), 문정왕후 윤씨(65세), 인성왕후 박씨(64세), 장렬왕후 조씨(65세), 정성왕후 서씨(66세), 정순왕후 김씨(61세), 효의왕후 김씨(69세), 순원왕후 김씨(69세)


60세 이상의 정희왕후, 정성왕후, 효의왕후 제외한 7명은, 앞서 말했듯 남편 일찍 죽거나(소혜왕후, 인성왕후, 순원왕후) 계비(정현왕후, 문정왕후, 장렬왕후, 정순왕후)이거나 하는 경우이다.


앞서도 장수하는 왕비의 공통점으로 계비를 들었는데, 여기서도 계비가 많다. 왜 계비인 왕비들이 장수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왕이라 하더라도 결혼에 실패한 것은 자랑거리가 아닐 것이다. 특히 그 당시는 유교사회로 조강지처는 잘 대우해주었다. 그러니 왕도 첫번째 결혼에서 실패할 경우 무언가 마음가짐이 좀 달라질 것이다. 교훈도 얻을 것이고 마음의 여유도 좀더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정현왕후의 남편인 성종의 경우 정현왕후 전에 두 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특히 폐비 윤씨를 겪고서는 성종도 뭔가 마음가짐이 달라졌을 수 있다. 성종은 정현왕후가 폐비 윤씨와는 달리 후덕해서 좋다고 말했는데, 성종도 또다시 결혼에서 실패하는 것이 왕으로서 체면도 깎이므로,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문정왕후의 남편 중종 역시 첫번째 결혼은 강제 이혼, 두번째 결혼은 아내의 이른 죽음을 겪고, 세번째 부인까지 잃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뭐 중종은 그때 이미 경빈 박씨와 사랑에 빠진 상태여서 어떤 정식 부인이 와도 별 상관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세번째 부인인 문정왕후에게 크게 스트레스를 줬을 것 같진 않다.


또 장렬왕후 조씨나 정순왕후 김씨의 경우 남편들과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할아버지와 손녀뻘의 나이 차이에서 부부싸움이 나긴 어려웠을 것이므로, 장렬왕후나 정순왕후의 경우에도 남편과 크게 갈등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진 않았을 것으로 예상해본다. 물론 그 외적으로는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최소한 극심한 부부싸움이나 남편과의 갈등은 없었다는 말이다.


즉 계비의 경우 그 남편들의 마음가짐이 초혼과는 달리 좀더 여유있었을 것으로 예상해보고, 또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갈등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등 남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히 적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식유무는 반반인데, 5명은 자식이 있었고 5명은 자식이 없다. 그 중 정희왕후와 순원왕후는 자식이 이십대에 일찍 죽는다. 이 나이대 왕비들의 수명에서 자식 유무는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 같진 않다.



50세 이상(6명) : 신의왕후 한씨(55세), 정안왕후 김씨(58세), 원경왕후 민씨(55세), 소헌왕후 심씨(52세), 안순왕후 한씨(54세), 인선왕후 장씨(57세), 광해군부인 유씨(51세, 자결)


이 나이대는 평균 수명정도를 산 왕비들이다. 특이점은 죽음을 맞기 전 자식이 먼저 죽어서 큰 스트레스로 죽음이 앞당겨진 면이 있다는 것이다. 원경왕후와 소헌왕후가 그러하다.



40세 이상(8명) : 신덕왕후 강씨(41세), 인순왕후 심씨(44세), 의인왕후 박씨(46세), 인목왕후 김씨(49세), 인열왕후 한씨(42세, 산후욕), 명성왕후 김씨(42세, 물벼락), 희빈 장씨(43세, 사약), 명성황후 민씨(45세, 타살)


조선 왕비들의 평균수명보다는 적게 산 왕비들이다. 왕비들의 삶을 살펴보면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 같다. 신덕왕후는 개국과 그 이후 권력다툼, 인순왕후는 시어머니 문정왕후와 결국 방계혈통으로 이어지게 된 것, 의인왕후는 남편 선조의 박대와 임란, 인목왕후는 폐모된 전력. 스트레스가 심각하지 않은 왕비가 없다. 그런데 사실 스트레스로 치면 다른 왕비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내가 본 모든 왕비들의 삶은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다. 인생사 굴곡이 심하지 않은 왕비가 없었기 때문에, 위 왕비들이 꼭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죽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아마도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마음가짐이나 성품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인열왕후는 늦둥이를 낳다가 늦둥이가 죽고 크게 상심한 뒤 얼마 후 죽었고, 명성왕후는 아들 숙종이 병이 들었는데 무속인이 명성왕후가 대신 물벼락을 맞으면 숙종이 살 수 있다고 해서 한 겨울에 물벼락을 맞고 큰 감기에 걸려 죽었다. 숙종이 엄마 명성왕후를 닮아 성정이 난폭했다고 하는데, 그런 명성왕후도 자식에게는 크고 큰 사랑을 베풀었으니, 자식은 참 그런 존재인 것 같다.

 


30세 이상(6명) : 연산군부인 신씨(33세), 인현왕후 민씨(35세), 단의왕후 심씨(33세), 선의왕후 어씨(26세, 자살의혹), 효순왕후 조씨(37세), 순명황후 민씨(33세)


연산군부인 신씨나 인현왕후의 경우 스트레스가 특히 많았을 것이지만 역시나 더 심한 스트레스에도 오래 산 왕비도 많으므로 스트레스로 단정지을 순 없고, 앞서 말했듯 본인 체력이나 심성(인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20대와 그 이하(7명) : 현덕왕후 권씨(24세, 산후병), 장순왕후 한씨(17세, 산후병), 공혜왕후 한씨(19세, 병), 장경왕후 윤씨(26세, 산후병), 인경왕후 김씨(20세, 천연두), 효현왕후 김씨(16세, 병), 폐비 윤씨(이십대후반, 사약)


20대와 그 이하 단명의 절반은 산후병이다. 당시 많은 여성이 산후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자는 때로 목숨 걸고 아이를 낳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가장 눈에 띄는 장수한 왕비들의 공통요인은 남편이 일찍 죽거나 이별한 경우이다. 그리고 계비인 경우이다. 이를 통해 당시 왕비들은 왕인 남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일찍 사라지거나 적었을 경우 장수할 수 있지 않았생각해본다.

그 당시 왕인 남편은 남편이라기보다는 무서운 직장상사같은 느낌이었을까? 아무튼 왕인 남편과 일찍 헤어진 왕비들, 남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었을 왕비들이 오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자식이 없는 경우 스트레스가 적었을까? 자식이 없는 왕비들이 오래 산 경우가 많다. 혹은 자식이 일찍 죽은 경우도 미리 초탈을 한 것인지 장수한 왕비가 세 명 있다. 권력 다툼이 심한 왕정에서 아들 때문에 노심초사하지 않고 일찍이 초탈하게  것이 오히려 행운인 것인가?


그리고 정순왕후 송씨나 단경왕후 신씨처럼 일찍이 궁에서 나와서 불교에 귀의하거나 소박한 삶을 살며 마음을 비운 것이 어쩌면 장수의 비결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왕비들은 모두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을 삶이다. 솔직히 왕비 중 그 누구의 삶도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마음을 편안히 가지려고 노력한 사람이 장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상황도 좋은 게 좋지만, 그게 안 된다면 마음가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혜경궁).


왕비들 각자 연도를 찾아서 나이를 계산하고, 통계를 내고 등등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내가 굳이 이걸 왜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개인적인 궁금함이 들어서 해봤고 나처럼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적어봤다. 지금은 둘째가 곧 낮잠에서 깰 예정이라 마음이 급하다. 지금 마무리하지 않으면 또 언제 마무리 될지 모르겠어서 우선 그냥 올리는데, 오타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것 같다. (언제든 알려주세요) 독자들이 그저 흥미로 읽어주길 바라며, 어쨌든 이 글을 쓰고 깨달음은 인생사 짧고 오래사는 게 좋은 거니(?) 스트레스를 덜 받고 마음을 편히 가져서 오~래 살아야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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