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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May 28. 2021

아빠에게 물려받은 것

나는 아빠에게 받은 것이 많다. 사랑도, 물질도, 추억도 많이 받았다. 나는 엄마에게는 양가적인 감정이 있지만, 아빠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은 거의 없고(하나도 없기는 힘드니까) 좋은 마음이 대부분이다.

초등 저학년 때 평소 무뚝뚝하고 바쁘셨던 아빠랑 동네서점에 갔던 일(그때 산 책이 무엇인지 지금도 기억난다), 내 손을 잡으실 땐 늘 소중한 걸 소중하게 꼭 잡는 듯 하시던 그 두툼하고 따뜻했던 아빠의 손.

운전연수를 아주 빡세게 시켜주시던 일, 그런 어느날 주차에 서툰 내가 주차하던 중에 지나가던 자전거가 나를 재촉해서 어쩔 줄 몰라했는데, 갑자기 아빠가 화를 내셨다. 운전연수를 받던 여느때처럼 당연히 나를 혼는 건 줄 알았는데, 아빠는 그 자전거 탄 사람에게 화를 내셨다. "애한테 왜 그러냐"는 류의 이야기를 하신 것 같은데, 늘 남에게 피해주는 일을 무척 경계하셨던 아빠였지만, 그래도 본심은 내가 더 소중하셨던 걸 느꼈다.

나쁜 기억 있는데, 사춘기 때 내가 엄마에게 반항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가 내 방에 들어오셔서 내 스탠드를 던져서 깨뜨리셨다. 무서웠는데, 그래도 아빠가 나를 때리거나 하진 않을 거란 믿음은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빠가 내게 사과하진 않으셨지만, 나보다 더 오래 마음 아파하실 거란 확신도 있었다(이건 엄마가 중간역할을 참 잘하신 덕인 것 같다. 엄마는 아빠가 엄청 미안해하고 마음 아파하신다고 전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저런 내 기억 속에 아빠는 무뚝뚝해서 사랑한다는 말만 안하셨지, 늘 나를 아주 끔찍히 사랑해주신 기억이 대부분이다. 엄마는 아들인 내 남동생을 나보다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했는데, 아빠는 남동생보다 확실히 나를 더 사랑한다고 어린 나는 굳게 믿기도 했다(성인이 되고 남동생 군대를 보낼 때에야 알았다. 아빠가 남동생도 많이 사랑하신다는 걸). 여튼 나는 아빠에게는 충분히 사랑받은 기분이다.

그런 아빠가 내 나이 스물여섯, 아빠 나이 겨우 쉰다섯에 뇌경색으로 중환자실까지 계시다가 퇴원하셨다. 그 병으로 아빠는 많이 약해지셨다. 바다수영을 즐기고, 당시 키로 장신이라 버스천장에 머리가 닿인다는 농담을 하실 정도로, 내겐 언제나 크고 강한 분이셨는데.. 그 병 이후로 아빠는 많이 늙으셨다. 엄마보다 외모가 출중하셨던 아빠는 얼핏보기에 할아버지처럼 보일 정도로 오십대중반에 기력을 많이 잃으셨다.

그때 아프신 아빠를 위해 함께 등산을 다녔다. 내가 다이어트를 해야하니까 같이 가달라고 졸라서 아빠를 모시고 등산을 다녔다. 일상생활에서 아빠는 늘 얼굴 반쪽이 시리셔서 고통스러워하셨고, 무슨 일이든(오래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하지만 등산을 할 때는 그 모든 증상이 완화되셨다. 그래서 주2회는 아빠를 졸라 등산을 갔다. 그 등산을 하면서 속이 상했다. 나를 업고도 산을 오르시던 분이 나보다 잘 못 걸으시니..그래서 등산 초반에는 마음이 많이 시렸다.

하지만 등산을 거듭할수록 그 시간이 즐거워졌다. 등산을 할수록 아빠는 몸이 나아지셨고, 등산 중에는 아빠가 다시 나의 보호자처럼 행동하셨다. 아빠는 그 전처럼 어떤 순간에도 나를 지켜주셨다. 내가 개를 무서워하면 발로 차주실 준비가 돼있었고, 절벽같은 곳에선 그 묵직한 손으로 나를 끌어올려주셨다. 물을 적게 가져간 날은 나에게 물을 양보하셨다. 어느덧 나는 아빠와의 등산으로, 아빠가 편찮으신 후 받은 내 나름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걸 치유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산을 좋아한다. 남편이 등산을 너~무 싫어해서 결혼 후에는 거의 산에 가본 적이 없는데, 오늘 둘째랑 예전에 아빠랑 자주 다녔던 산엘 갔다. 평소 늘 기력이 달려하는 나는, 모든 운동기구의 시범을 요구하는 둘째에게, 모든 시범을 신나게 다 보여주었다. 아마 아빠랑 왔던 그 곳을 오랜만에 다시 와서 신이 났던 것 같다.

아빠가 내게 주신 많은 것 중.. 함께 등산했던 그 추억이 참 소중하다. 그래서 내가 산을 좋아하게 된 게 참 고맙다. 소중한 추억과 건강한 취미를 아빠께 물려받았다.


끊임없이 산으로 더더 들어가자는 둘째를 막기 위해 결국 "더 들어가면 호랑이가 나온다"는 거짓말 카드를 꺼내고서야 길을 되돌아 나왔다. 더더 들어가자고 해놓고 갑자기 다리가 아프다는 둘째를,  플랫슈즈를 신은 채(등산계획이 없었다) 업고 내려오는 길.. 내가 어릴 적 다리가 아프다면 늘 업어주셨던 아빠가 생각났다. 언제나 기꺼이 업어주셨기에 나는 다리 아플 게 두렵지가 않았다.

업힌 채 내 목을 꼭 잡은 아이가 "엄마 사랑해"하면서 내 고생을 퉁치려하는데, 나 역시 어릴 적 그랬던 게 기억이 났다. 부모님께는 사랑한다는 말로 퉁쳐도 된다 생각하고 살게끔 해주신 나의 아빠, 엄마께 문득 많이 감사드린다.

이제 내 아들둘은 스스로 해나갈 게 점점 많아질테고, 내 부모님은 내가 해드려야할 게 많아질테다. 내가 지겹고 지겨워질만큼 나를 부려먹고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내가 아빠께 바라는 건 오직 그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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