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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Dec 13. 2020

불안과 의심

새집증후군

지난 주 목요일 이사 후 열흘 정도가 지났다. 입주 후 나는 눈이 심하게 따갑고, 자도 잔 것 같지 않게 머리가 무거웠다. 둘째는 배와 다리 쪽 피부가 거칠거칠해진 게, 눈에 띄게 피부가 나빠졌다.


올리모델링 공사를 했고 둘째가 평소에도 피부가 안 좋았기에, 입주 전, 아니 공사 전부터 새집증후군에 대한 불안이 컸다. 새집증후군 때문에 공사 자체도 안 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리석 바닥이 아이들에게 위험할 것 같고, 십년 넘은 아파트라 그냥 들어가기가 싫었다. 절충안으로 최대한 친환경 자재를 이용하여 공사를 진행했다. 어차피 크게 차이는 없다지만 그래도 원목바닥에 벽지도 친환경으로 하면서, 다른 것보다 친환경 자재 사용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붙박이 가구에서 정말 안 좋은 물질이 많이 나왔다. 여기서 1차로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둘째 아이 아토피를 걱정하며 친환경 노래를 불렀는데, 인테리어 업체 소장님은 이것에 관해서 언급이 없으셨다. 더 알아보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하나.. 어쨌든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소장님이 언급이라도 하셨다면 붙박이 가구를 줄이든지 더 좋은 걸 쓰든지 했을 건데, 1차로 소장님이 원망스러웠다.


2차로는 새집증후군 시공팀에게도 배신감이 들었다. 새집증후군 시공을 따로 받고 입주했는데도, 눈이 따갑고 냄새가 났다. 다른 새집증후군 업체에 물어보니 시공이 제대로 안 된 거란다. 그럴 경우 자신들은 소비자가 만족할 때까지 서비스를 해준단다. 하지만 내가 시공받은 업체에서는 수치 측정도 해주지 않았다. 겨울이라 수치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나.. 그러면서 내가 예민한 거니 더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25만원을 내란다. 싸울 힘도 없어서 여기와는 더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차라리 돈을 더 들여 신뢰감이 느껴지는 업체에서 다시 시공을 받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불안해 하는 나를 안심시키고자 어제 남편이 포롬알데히드 측정기를 대여했다. 남편은 내가 예민한 거라 말하며 수치가 괜찮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측정 수치(ppm)는 캐나다, 캘리포니아 기준치인 0.05 당연히 넘고, 우리나라 기준치인 0.16에서도 한참을 올라간, 3.0~4.0에 이르는 "눈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넘어, "눈물이 나오는 위험한 시기"로 나왔다. 남편과 나는 멘붕이었다. 나를 안심시키려던 남편은 엄청 당황했고, 나는 눈물까지 났다. 어린 아이 둘을 이런 공간에서 생활하게 했다는 자책감, 누구 좋자고 이렇게 고생해가며 인테리어를 했나 싶은 자괴감.. 등으로 나는 그냥 눈물만 났다.


그동안 찾아본 입주 후 새집증후군 시공은 다시 짐을 빼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선뜻 재시공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수치를 보니 그정도 번거로움은 일도 아니었다. 이런 집에서 아이들을 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장 새집증후군 업체에 연락해서 월요일 시공 약속을 잡았다.


나는 남편에게 그동안 나의 증상 호소에도 귀기울이지 않은 원망을 쏟아부었고, 남편은 남편대로 변명과 서운함을 내게 쏟아부으며 한바탕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새집증후군에 관해 수없이 검색을 했고, 값비싼 공기청정기를 한 대 더 주문을 했다. 밤새 새집증후군 생각에 잠을 설치고, 일어나자마자 시공을 위해 다시 이삿짐을 쌌다. 그러던 중 우리가 측정한 기계에 오류가 많다는 인터넷 글을 보게 되었다. 혹시나해서 오늘 아침 전문 측정 업체에 문의를 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되신다며 바로 와주셨다.


결과는 우리나라 기준치인 0.16 이하인 0.12가 나왔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었다. 물론 이 수치도 좋은 수치는 아니다. 독일은 0.1 이상인 제품은 판매 금지이고, 캐나다나 캘리포니아는 기준치가 0.05, 일본은 0.08이다. 우리나라가 매우 허용적인 수치인 것이다. 측정해주신 분은 이 정도는 애매하지만, 보다 나은 환경을 위해 재시공을 추천 한다고 하셨다. 예민한 사람은 이 수치에서도 충분히 새집증후군 증상을 느끼고, 아토피는 0. 04부터 발생하니 결코 좋은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최악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일단 너무 다행이었다.


실제로 내가 민감해서 새집증후군을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 새집증후군 증상은 나의 불안과 의심으로 인한 헤프닝수도 있다. 내가 원래도 불안감이 심하고 예민한 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나의 그 불안과 예민함은 더욱 심해졌다.


리모델링 추가금이 3천만원 가까이 더 나왔는데, 원래 다들 그정도 나온단다. 정확한 내역을 뽑아달라고 하니 돈을 줄여주었다. 그러면서 나처럼 돈 가지고 깐깐하게 구는 사람을 못 봤단다. 입주청소업체에서 왜 줄눈 시공을 하지않았냐며 깜짝 놀라듯 묻기에 소장님께 말했더니, 그 청소업체가 줄눈 시공업체라서 권유하는 거란다. 다 장사속이고 줄눈은 안하는 게 낫단다.

입주청소업체에서 블로그에 우리집 사진을 올려도 되냐기에, 소장님이 자신이 먼저 올린 다음에 올리라고 말하자, 청소업체에선 기분 나쁜 듯 그럼 안 올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글이 올려져 있었다. 주인인 나도 분명히 안 된다고 했는데, 우리집 인테리어 품평까지 해놓으셨다.


인테리어 업체는 입주청소팀을, 입주청소팀은 인테리어 업체를, 새집증후군 업체들은 또 서로의 업체들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며, 자기들만 잘하고 있고 다른 팀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만 하는데, 그 속에서 나의 판단력은 이미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알게모르게 나를 속이고 있는 듯한 행동들, 여기 말과 저기 말이 다른 경우들, 서로 업체에서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미루는 일들, 그러면서 나에게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렇다는 식의 말.. 공사 기간동안 나는 많은 무력감과 배신감을 느꼈고, 그 속에서 나의 의심과 불안 더욱 커졌다. 그 모든 것의 결과로 나는 새집증후군 증상을 더 예민하게 느꼈고, 측정기의 오류 그것 폭발되었다.


일단은 좀 쉬어야겠다. 이사 후 피로가 아직 다 풀리지도 않았는데, 다시 짐을 쌀 뻔 했다. 다시 싼 짐도 다 그대로 두고, 일단은 좀 쉬어야겠다. 내 판단력이 돌아올 때까지 일단은 좀 내려놓아야겠다. 사람은 믿지 못하고 수치만 믿을 수 있게 된 내 마음을 좀 쉬게 해주어야겠다.


리모델링 공사를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좀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많이 알아보고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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