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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Oct 07. 2020

왜 여성사인가

나의 아버지는 4남 5녀의 9형제 중에 일곱째이시다. 경북의 보수적인 집안인 나의 친가의 명절 분위기는 그야말로 조선시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모습이었다.


큰아버지 두 분과 아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큰아버지의 자식들과 나는 거의 이십년 가까운 연배 차이가 있다. 내가 열 살 때 스물일곱의 새언니가 처음 시집왔고, 그 후로 연달아 그 또래의 세 명의 새언니가 더 생겼다.


그러니 그 집안의 며느리는 총 8명이 되었다. 아버지 대의 며느리 네 명과, 그 아들 대의 며느리 네 명.

그리고 류씨 집안의 명절 음식 준비는 류씨가 아닌 그 여덟 명의 며느리에 의해 이루어졌다.


큰엄마 두 분과, 엄마, 숙모, 그리고 새언니 네 명은 부지런히 음식들을 준비했다. 나는 그동안 송편빚는 걸 돕는다던가, 부쳐지는 전을 주워먹거나, 새언니들이 낳은 아기들을 돌보며 십대를 보냈다. 내가 보기에 하루종일 거의 한 번도 쉬지 않고 그녀들은 일했다. 일을 마친 저녁에는 모두가 한 소리로 "아이쿠 허리야. 이제사 한번 펴보자"했다. 하지만 큰엄마들이나 엄마, 숙모는 물론이요 새언니들 역시 아무도 그 일들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고, 모두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일을 했다. 나 역시 그 명절들이 참 즐거웠다.


그런데 무언가 늘 이상하긴 했다. 류씨가 아닌 여자들이 하루 온종일 부엌에서 부산스럽게 일을 할 때, 류씨 남자들은 뿔뿔히 방에 흩어져 낮잠을 자거나 티비를 보거나, 당구를 치러 나가거나 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방으로 모였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먹을 밥상을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냈고, 남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친 후 고대로 일어나면, 그제서야 밥상에 앉아 남은 반찬들을 모아 밥을 비벼 먹었다. 그리고 후다닥 치우고 다시 남은 일들을 했다.


한번은 일찍 식사를 마친 남자들이, 밥을 먹고 있는 여자들에게 후식 커피를 타달라고 말을 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참지 못하고, 오빠 두 명이 직접 커피를 타서 남자어른들께 드리는 "불상사"가 발생하자, 할머니께서는 눈살을 찌푸리셨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 큰엄마들이 "대단하다"며 칭찬하자, 그것이 우리 집안의 명절 관례가 되어 후식 커피는 오빠들이 타는 것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류씨 집안의 제사는 류씨 남자들만 모실 수 있다. 류씨 아닌 여자들이 준비한 음식을, 그 여자들이 상까지 나르면, 류씨 남자들은 음식을 예법에 맞게 상에 올린다. 그리고 남자들만 그 방에 들어가 절을 했다. 어릴 적 나도 들어가서 남동생처럼 절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절이 끝나면 다시 여자들이 들어가 음식을 다시 주방으로 옮기고 상을 치우고 새로이 식사준비를 했다.


우리 친가의 명절 풍경을 보면서 늘 생각했다. "제사를 모신 것은 누구일까?" 결과적으로 제사를 모신 것은 남성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사를 모시기"만" 했을 뿐, 그 앞뒤의 필요한 모든 일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우리 역사도 그렇진 않았을까.


우리 역사의 기록은 대부분 남성의 이야기이다. 여성의 역사란 거의 없고, 있으면 대체로 부정적인 내용이다.


<허생전>을 보면, 생계를 꾸리지 않았던 허생이 아내의 원성에 공부를 그만두고 장사로 대성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허생은 돈을 벌 수 있지만, 벌지 않은 것뿐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런 능력이 있는 허생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치부한 아내는 악처이다. 허생전은 아내에 대해선 매우 짧게, 허생의 위대한 능력에 대해서 거의 모든 분량을 할애한다. 소설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나는 허생의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작지만 어엿한 사업체라 부를만한 아빠 사업의 시작은 엄마와 함께 한 작은 가게였다. 가게에서 아빠는 사장님으로, 엄마는 사모님으로 불리었는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장님의 일을 제외한 모든 일, 그러니까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물건을 정리하고 물건을 팔고 다시 물건을 사고 세금계산서를 준비하고 어음을 막을 돈을 마련하 다시 가게 문을 닫는 등의 잡다한 모든 일은 사모님이라 불리는 엄마의 몫이었다. 아빠는 마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실제적인 일보다 중요한 결정에 집중하셨다. 엄마는 아빠의 사업 성공에 대해 아빠의 뛰어난 사업 감각과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 등 아빠의 공이 크다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가게에 나가 직원들과 함께 물건을 정리하고 계산서를 끊는 등, 엄마가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게 매우 바하루를 보내셔야 한다.


허생이 돈을 벌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었던 것, 우리 친가의 남성들이 제사를 지낼 수 있었던 것, 아빠가 사장님으로 불리며 사업을 일으킨 것, 역사에 남성들이 기록될 수 있었던 것, 나는 그 모든 것이 뒤에서 일한 여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주목되지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것.

허생이 돈을 벌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내의 노동이 뒷받침되었다는 것, 우리 친가의 남성들이 제사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하루종일 허리 한 번 못 펴고 일한 며느리들 덕분이라는 것, 아빠의 나름 자수성가라 할만큼의 사업체는 모든 잡다한 일을 도맡은 엄마 공이라는 것, 그리고 남성들의 역사 에 숨겨져있을 수많은 여성들의 노고들을.. 이제는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허생의 공부, 남성의 제사, 남성의 표면화된 역사들에 주목했다면, 어쩌면 더 가치있을지도 모를 그들을 뒷받침해준 여성들의 역사도 이제는 꺼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명절 전날 시댁에 가서 일하지 않았다는 "방자"한 소식이 엄마를 통해 새언니들에게 전해지자, 새언니 중 한 명이 내게 전화를 해서 "아가씨, 그러면 안돼요"했다. 나는 "아기가 어려서 가도 민폐뿐이에요"했지만, 새언니는 "그래도 아가씨, 며느리 도리는 해야죠" 라며 조심스럽게 충고한다.


우리 새언니의 그 고운 마음 덕분에, 나는 십대시절 즐거운 명절의 기억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들이 희생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기꺼이 해준 그 희생들 덕분에, 나의 그동안의 명절은 참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들 대에서 끝나길 바란다. 앞으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롭게 시댁(아직 시가라는 말은 익숙치 않다)혹은 가족과 화합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앞으로 역사의 주인공 역시 남녀가 구분되지 않는, 아니 이제까지는 그러하지 못했던 여성이 보다 제 이름으로 설 수 있는 역사가 되길 바란다. 그 새역사는 앞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새로 써나갈 새로운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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