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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ug 27. 2020

이상과 현실의 괴리

미니멀라이프와 육아와 모자란 나

어제 약속된 조선왕비 이야기를 올렸고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기도 했기에, 가뿐한 마음으로 이른 아침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내가 가장 추구하는 가치관이지만 자주 흔들리는,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끄적여보았다.


나만의 미니멀라이브

첫째, 단순한 삶에의 지향,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삶이다.

복잡한 삶을 가지치기하여 의미있는 것만 남기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들만 챙기는 삶이다. 그 중요한 키워드는 아이들, 나, 건강, 꿈, 행복, 남편 정도이다. 나머지 시댁, 친정, 집안일 등은 내가 챙겨야 할 삶에서 과감히 제외시키기로 다시 한번 결심해본다.


둘째, 소유보다 생활에 더 힘을 쓴다.

물건이나 사치품을 소유하는 데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나의 매일의 생활, 즉 먹고 자고 매.일. 입는 옷에 더 힘을 쓰겠다는 다짐이다.

또한 물건의 소유가 아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일, 즉 경험을 중시한다. 외면을 그럴 듯하게 치장하기보다 내면을 더 풍요롭게 하는 데에, 나의 소중한 돈과 시간을 쓰겠다는 다짐이다.


셋째, 소유하지 않고 생활한다.

나는 값비싼 물건들을 사놓고 아끼느라 잘 쓰지를 못한다. 전시해두지 말고 매일의 일상에서 다 누리며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나만의 미니멀라이프를 정리해보며 산뜻한 기분을 누려보려 했는데, 그 산뜻한 기분은 커녕 미처 정리도 마치지 못했는데, 두 아들기상했다. 그리고 하루는 시작되었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가장 본질적으로 소중한 나의 두 아들.


하지만 일어난지 십분만에 버겁다. 온몸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두 아들과 십분정도 침대에서 뒹굴었을 뿐인데, 더는 안 될 것 같아 힘들게 빠져나와 아침을 준비한다.

더워서 그런지 통 밥을 먹지 않는 둘째를 위해 나는 루피가 되어 연기를 펼친다. 야채가 듬뿍 들어간 계란말이에, 갓지은 밥을 주려다 딸기잼을 듬뿍 바른 빵과 함께 주니 그럭저럭 먹는다. 평타는 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오늘은 이모님이 오시지 않는다고 하니 이제 눈치가 빤한 첫째는 아침부터 뽀로로가 보고 싶단다. 이모님이 오시지 않는 날은 나도 힘들어 미디어를 보여주었는데, 그걸 기억하는 첫째이다.

"그래 곧 나갈거니까 잠깐 보자." (사실 너희가 뽀로로를 보면 너희보다 내가 더 좋단다)


아침을 먹은 아이들은 각각 응가를 했고, 응가를 씻으며 각각 물놀이도 잠깐씩 했고, 옷을 갈아입히는 사이 둘째는 매트 위에서 쉬야도 했다. 매트 사이사이에 끼인 쉬야들을 다 닦아낸 수건들은 삶음 기능으로 세탁기를 돌렸다. 물놀이를 한 화장실을 정리했고, 설거지를 했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틈틈이 외출 준비도 마쳤으니, 너희가 티비를 보는 시간은 나도 즐기겠다. 나는 아침에 미처 다 정리 못했던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마저 정리해 보기로 한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에게는, 최근 5년간 한번도 들지 않은 가방을 포함해 한두번 든 가방까지 모두 합하면, 열 개 가까운 명품 가방이 있다. 매일 처분할까 말까를 고민만 하다가 끝내 다시 옷장 속에 보관되어지는 가방들이다. 미니멀라이프를 논하자면 늘 그 가방들이 가시처럼 걸린다. 텔레비전의 뽀로로가 아직 끝나기 않았기에, 생각난김한번 꺼내보았다.


더스트백에서 가방들을 꺼내놓은 그 찰나, 약속을 잘 지키는 첫째는 약속된 네 편의 뽀로로가 끝나자마자 바로 티비 전원을 껐다. 한 편에 오분인데, 떼쓰면 한두편 더 보여주려고도 했는데, 정말 착실한 우리 첫째이다. 형아가 티비를 끄면 둘째는 서럽게 울어댄다. 나는 꺼내놓은 가방을 미처 다시 넣지 못한 채 둘째를 달래러 갔다. 약속의 중요성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듣고, 두돌의 둘째는 속상한 마음을 억지로 추스려본다. 하지만 분한 마음이 남아있었던 둘째는 나의 가방들을 엉덩이로 깔고 앉으며 마음을 풀어보고자 했다. 제일 비싼 가방에 앉으려던 찰나 내가 좀더 빨라서 뺏는 에 성공했다. 나의 민첩성에 잠시 기뻤으나 또다른 가방에 돌진한 둘째는 어느덧 가방을 배로 깔아뭉개며 좋아하고 있다. 화를 내색하지 말자 다짐하면서 가방을 빼앗았다. 뭉그러진 가방을 툭툭 털어보며 다시 넣고 있는데, 갑자기 밀려오는 짜증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엄마의 기분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분이 풀리지 않은 둘째는 드럼세탁기에 가서 전원 버튼을 눌러버린다. 아... 그 빨래가 다 되어야 나갈 수 있단 말이다! 눅눅한 여름날에 건조기에 들어가지 않은 빨래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다시 그 빨래가 될 때까지 기댜려야한단 말인가. 나는 드디어 둘째에게 날카롭게 소리를 쳤다. "너는 왜 가는 데마다 말썽이야." 




나만의 미니멀라이프 1번,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치기하고, 정말 소중한 것에만 집중한다.

그걸 정리하고 뿌듯했던 게 십분이 채 안 되었을 다. 이상과 현실이 이렇게 멀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엄마는 오늘도 자책한다.

이론만 알고 실천은 할 줄 모르는 나를, 욕망이 넘치고 넘치는 나를, 고상한 척은 다 하면서 연약한 아이에게 소리치는 나를.


윤동주 시인이 잎새에 이는 작은 바람에도 아팠듯, 나 역시 매일매일 작은 일들에 아프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이 아프기만 하고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은 못했듯, 나 역시 아프기만 하고 행동은 못하는 것으로, 대신 합리화해본다. 그 유명한 분도 못한 걸 내가 어떻게 하냐고. 차차 나아지겠지. 차차 나아져보자.







덧) 오늘밤에도 세탁기는 다시 돌아갔고, 그 세탁이 끝나고 빨래를 건조기에 넣어야 나는 잠을 잘 수 있다. 그런데 잠이 오면 잠투정을 하는 둘째가 세탁실에 가있다. 순간적으로 나는 또 소리를 쳤다. "안돼" 하는 날카로운 나의 목소리에 둘째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거세게 손을 흔들며 세탁기를 끄지 않았다고 어필한다. 나는 방금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미안해서 "이젠 세탁기도 안끄고 대단하다"며 어정쩡하게 칭찬을 건냈는데, 정말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미안하다. 아가야ㅜㅜ


그리고 윤동주님 제가 많이 좋아하는 거 아시죠? 이렇게 활용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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