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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l 27. 2020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읽고

여행에세이를 자기계발서로 읽은 이야기

이 책은 여행에세이이다.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자기계발서 부류인 줄 알았으나, 잠깐 살펴보니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의 여행기였다.


그래도 제목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 작가가 여행을 통해 알게된 어떤 대답이, 뭔가 거창하게 있을 줄 알고 책을 구입해왔다. 그런데 책을 다 읽어도 그런 내가 기대한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란 없었다. 그 대답이란 어 지역을 여행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답, 즉 시칠리아라는 그 여행지가 작가가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대답이었다. 순간 튀어나온 대답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오래 준비해왔던 듯하다는 것이다.


나는 벗어나려해도 어쩔 수 없이 자기계발서적이나 뭔가 깨달음을 주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끝까지 뭔가 깨달음을 주는 내용 없이 끝난 게, 괜히 제목에 낚였다싶게 약간 김빠진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작가가 주는 메시지를 다 못 읽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는 나대로 이 책에서 무언가 깨달음 같은 걸 얻어보려고 사색을 해봤다.


자제하려고 하지만 아직 세속적인 욕망이 넘치는 내게, 이 책의 첫 문장은 묘하게 이끌렸다.

"나의 마흔에 나는 꽤 많은 걸 이루었다."

 

작가는 나이 마흔에 꽤 유명한 작품들을 써낸 소설가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으며, 서울에 자가를 소유했고, 유명대학의 교수였으며,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또 새로운 소설의 연재를 계약한, 한마디로 나이 마흔에 이미 성공을 이루었고, 지금 잘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겨우.. 나이 마흔에..


예전에는 나이 마흔이면 저 정도는 기본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내가 마흔이라는 나이를 코앞에 두고 보니..

저 작가의 화려한 이력 앞에 나의 마흔은 좀 많이 보잘 것 없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만으로 40세가 되면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는다. 올해 그 건강검진의 대상자가 된 남편의 나이를 놀리지만, 나 역시 곧 한국나이로 4자를 달 예정이라 놀리는 그 마음이 썩 시원치만은 않다.

생애 전환기를 맞는다는 그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뭐 그리 거창할 것도 없는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나이 마흔에 이룬 게 저리 많은 저 작가의 마흔을 보고, 문득 곧 닥칠 나의 마흔은 어떠한가,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다.


작가에게, 작가가 인고의 시간을 거쳐 자식처럼 낳았을 책들이 있다면, 내게도 내가 인고의 시간을 거쳐 낳은 내 진짜 자식들이 있다. 나는 두 아이를 다 시험관으로 얻었다. 철저히 계획되었고, 고통의 시간이 수반된,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얻은 것(?)이다. 또한 그 육아는 어떠하랴. 다른 시험관 시술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나는 수월하게 한번만에 성공했기에) 나에게는 시험관 시술보다 육아가 몇 십배는 더 힘들었다. 그렇게 네돌, 두돌을 키운 두 아들은, 내게 그 어떤 성취보다 힘들었고, 소중하고, 보람된 성취이다.


작가가 한 여자의 남편이듯, 나도 한 남자의 아내이다. 그와의 결혼 역시, 나에게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이루어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성격이 원만한 남편이기에 결혼의 유지가 힘들다는 것은 아니고, 내가 그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주선된 만남을 족히 50번은 더 봤을 것이다. 주선된 만남을 열번쯤만 해본 사람들도 이해할 것이다. 50번 이상을 선 본 사람의 마음상태를... 왜 내게는 인연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포기할까하는 와중에 극적으로 인연이 될 그를 만났다. 아무튼 나는 그 과정이 많이 힘들었었다.


작가가 서울에 자가를 소유했듯, 나는 내가 사는 지역에 자가를 소유한다. 서울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비싼 축에 속하는 아파트이다. 비록 가진 돈 보다 빌린 돈이 더 많고, 그 빌린 돈을 30년 상환하는 대출을 끼고 사긴 했지만. 외제차도 끌고 다니고, 명품이라는 물건도 꽤 가졌으니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까지 나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안정적인 내 직업도 있다. 비록 육아를 위해 그 일을 쉰지가 5년이 넘었지만,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기관을 가게 되면 나도 그 안정적인 직장에 돌아갈 수 있으니 참 든든한 마음이다. 또 한국의 교육제도 하에서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은 다 이수했다. 논문만 쓰면 박사라는 타이틀도 받을 수 있다.


그래, 저 작가에 비할바는 못되겠지만, 내가 이룬 성취도 꽤 대단하고, 모든 성취들 중 어느 하나 쉽게 이룬 것도 없다. 갑자기 내가 참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도 든다.


그런데, 저 작가와 나의 성취가 다른 것은 그의 성취는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지향형인데 반해, 내 성취는 타인에게 의지해있고 현실에 안주해있다. 언제까지나 자식에게 남편에게 기대어 내 성취를 들먹일 순 없다. 언제까지 벌써 15년전에 이룬 그 직업 하나에 내 삶을 맡기며 살아갈 순 없다.


또한 앞으로의 내 삶은, 내가 이루어야 할 것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으면 한다. 그동안은 사회가 정해놓은 통과의례같은 일들을 잘 해내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그것을 해야하는지 아닌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서 살기에 급급했다. 고3담임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대로 내 수능점수에 맞추어 사범대를 진학했고, 사범대생이 다들 준비하는 그 시험을 준비했고, 직장생활을 좀 한 후에는 남들처럼 결혼을 해야했고,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아야했다. 그저 남들 하는대로 따라 살기 위해 애쓰고 애썼다.


그런데 이제는 좀 고민해보고 싶다. 내가 하려는 이 일이 내가 하고싶은 것인가, 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보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가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작가가 나이 마흔에 그 모든 외부적인 것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책, 집, 직업을 내려놓고, 여행하며 자신의 내면을 채워넣었듯, 나도 이제 그만 외부적인 것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을 멈추고, 내 내면을 돌보고 채워넣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 내가 마흔살이 될 때까지 이 외부적인 것을 이루려고 애쓰고 노력하며 살았듯, 앞으로 마흔부터는 내 내면을 돌보고 보다 성숙하게 하는 일을 소명으로, 애쓰고 노력하며 살고 싶다.


작가처럼 더 깊은 여행도 하고, 자주 글쓰기도 하고, 편견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독서도 할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을 돌보고 성숙되게 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나를 나눌 것이다. 사람들과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주고 받는 데에 시간을 들일 것이고, 그 속에서 그들과 다정한 진심을 나눌 것이다. 마흔 이전에 내가 이름모를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누렸던 그 혜택을, 이제 마흔 이후의 내가 돌려줄 차례이다. 그것이 이 세상이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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