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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l 29. 2020

그때는 그때의 소중함을 모른다.

서른한살 12월, 직장생활 8년을 마치며 나는 많이도 지쳤다.

무조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 휴직을 내고자 했는데, 마침 대학원 파견근무를 처음으로 시행한다는 공문을 보게 되었다. 한달간 열심히 공부한 끝에 나름 치열했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그렇게 서른둘의 나는, 내가 학부를 다녔던 그 대학에, 파견근무로 다시 다니게 되었다.

말이 파견근무지 일반 대학원생들과 똑같이 주3일정도 수업만 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른둘의 나는 다시 학생이 되어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나이든 학생인 내가 대학생들처럼 낮에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영 어색했다. 나를 교수(또는 시간강사)로 볼까, 학생으로 볼까 괜히 나혼자 신경쓰면서 3월을 보냈다. 학부 4년을 낮밤으로 열심히 다녔던 모교이지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학생 같지 않내가 낮에 학교에 나가는 것이 괜시리 민망해서 수업이 없는 날은 앞산이나 수성못의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곳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낮시간에 나이든 젊은(?) 여자 혼자 하루종일 공부를 하다 가는 게, 나 스스로 좀 부끄러웠다고 해야하나, 외로웠다고 해야하나 여튼 무언가 어색한 기분인 건 틀림없었다.  

이전에는 대부분 친구나 연인, 동료와 함께 카페에 갔었는데, 혼자 카페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부끄러웠을 수도 있다. 그때만 해도 혼밥, 혼술 그런 것들이 유행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계속 하다보니 어느새 적응이 되어서 4월이 되고, 5월이 되고서는 아무 거리낌없이 카페에 가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2년 대학원 파견생활동안 아주 자주, 아니 거의 매일을 그런 생활을 했다. 그 곳에서 석사논문을 완성했다.


혼자서 카페에서 공부를 했던 그 시간들..

글을 썼고, 과제를 했고, 논문까지 써냈던 그 시간들..

행복했지만 그 행복한 마음 외에 쓸쓸하고 외롭기도 했던 시간들이었다.


다들 친구와 가족과 연인과 함께하는 그 카페라는 공간에서 나는 늘 혼자였다.

대학원 파견기간 에 나는 결혼도 했지만, 당연히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은 낮시간에 나와 함께 할 수 없고, 서른두살 나이의 여성들은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거나 육아를 하기에 나랑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늘 외롭고 쓸쓸했다.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렇다.


진한 커피향들, 달콤한 조각케익들, 그리고 노트북의 타자 치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가끔 손글씨로 일기를 쓸 때 그 펜의 느낌, 종이책의 그 촉감들

잘 정돈되고 고즈넉한, 낮시간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던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 그 카페의 창 너머의 훌륭한 풍경들.. 그 모든 것들이 완벽했지만, 그래서 행복했지만, 그래도 늘 쓸쓸함이 함께했다.


행복하면서도 완전히 행복하진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24시간 늘 함께하는 내 아이들과의 삶 속에서 나는 자주 그 과거의 시간들을 동경한다.

얼마나 좋았던가, 얼마나 행복했던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과 공간들을, 그때 느꼈던 그 외로움과 쓸쓸함마저도 아주 자주, 진하게 그리워한다.



그리고 또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돈가스를 구워주니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내가 돈가스 먹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았어?"하는, 나도 모르는 새 내 사진을 찍어와 보여주며 "엄마 봐봐 엄마 정말 예쁘지?" 해주는, 내가 화가 나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는데도 "엄마, 나랑 순순이가 늘 함께 있어줄테니까 걱정하지마"하는 나의 첫째 아들.


이제 겨우 몇마디 할 수 있는 둘째는 내가 화를 낼라치면 얼른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린다. 둘째아이는 뛰어다니는 엉덩이도 예쁘고, 뭐든 오물오물 잘 먹는 입도 귀엽고, 탐스러운 뺨과 작디 작은 코, 가느다란 머리칼까지 안 귀여운 데가 없을 만큼 다 귀엽다. 이제 막 입이 트여서 처음하는 그 말들에 자꾸 크게 웃게 되어 첫째에게 미안할 정도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들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지금도 힘들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두돌이 될때까지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본다.

두 아들이 사춘기가 되어 방문을 걸어잠그고 나오지 않을 날을.. 엄마의 품이 , 아니 엄마의 터치 정도도 부담스러워할 날을.. 더이상 엄마와는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날을.


그 날들이 되면,

지금 잠시도 내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화장실까지 따라와 볼일 보는 내 옆에서 놀고, 설거지를 할때면 앞치마를 만지면서 옆에 서있고, 남편의 표현대로라면 마치 자석이 달려있어 내가 가는 곳곳마다 꼭 따라오는 이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책을 들고서 번갈아 대기하는 이 두 아이들이.. 서로 엄마에게 안기겠다고 몸싸움을 하면서 더 내 품에 파고드는, 내 무릎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엉덩이를 더 내밀어보는 이 두 아이들이, 얼마나 그립고 또 그리울까.


지금 내가, 과거의 혼자만의 카페에서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농도보다 훨씬 더 짙고 간절하고 사무치게.. 지금 이 순간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원없이 원없이..

원없이 아기 냄새를 맡고, 원없이 피부들을 맞닿고, 목이 아플만큼 책을 읽어줘야 한다.

이 순간이 아쉽지 않도록,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비록 이런 생각들이 아이들이 잠잘 때만 일어나고, 두 아이들이 모두 눈을 떠서 돌아다니면 이런 생각을 한 것조차도 잊어버리게 되는 심각한 건망증이 있지만,

내일은 꼭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함께 웃는 날이 되도록, 더 애써보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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