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신사임당인가

by SOL

82년생인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장래희망란에 곧잘 현모양처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장래희망란은 대체로 직업을 적어 내는 것이었는데, 여자의 직업으로 현모양처를 적어내도 이상하지 않던, 아니 오히려 담임선생님께서 그 단어를 흐뭇하게 보시던 기억이 남아있는, 그런 시대였다.


하나의 직업으로까지 인정받을만 했던 현모양처, 그런데 그 현모양처의 화신같은 존재,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을 수식하기 위해 생겨난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마냥, 현모양처하면 떠오르는 인물, 신사임당이 있다.


한국에선 유일한 화폐 속 여성 인물인만큼 유명한 인물이만, 화폐 속 여성인물에 대해 지지할법한 여성계에서 오히려 반대했다는 인물.. 그러니 신사임당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복합적으로 혼재되어있다.


나의 유년시절에는 중요한 여성 롤모델로 교육되어왔지만, 나는 당연히 현모양처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남녀차별 없이 교육받았고 열심히 공부했기에 나만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지,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보니 현모라는 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긴 했다. 그렇게 반감 또는 부러움 등의 여러 석연찮은 감정들이 뒤섞인 채로, 나는 다시한번 신사임당이 궁금해졌다.


지겹도록 우려먹힌 신사임당을 다시 소환하여 무언가를 더 꺼내보려는 것이 나조차도 신물이 날만큼 고루한 느낌이었으나


모순된 평가가 혼재하고, 실제가 아닌 것이 실제가 되어있는, 그러면서 유일한 여성 화폐인물로 알게모르게 우리들(남녀모두)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 신사임당을 다시한번 제대로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근대 이후 일제강점기나 새마을운동기~1990년대까지의 신사임당은 완벽한 현모양처였다.

그러나 2007년 5만 원권 인물로 신사임당을 선정한 한국은행이 신사임당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한 이후, 신사임당은 보다 예술가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면서 집안일도 완벽하게 잘 해낸 슈퍼 워킹맘의 이미지를 그려내기도 한다.)


이숙인교수님에 의하면 신사임당이 이토록 우려먹힐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 있는 두 가지, 예술적 재능과 아들 율곡 때문이라고 한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만약 둘 중 하나만 있었더라면 신사임당은 이처럼 오래 이미지 변신을 거듭하며 스토리를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데 두 가지나 매우 성공적이었으니, 이토록 긴 시간 스토리의 소재가 될만하다.


신사임당은 여성이라는 제약 속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을 거둔 인물로, 그래서 많은 여성들의 욕망의 대상 또는 롤모델이 되었고,

또한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그 현모양처라는 면모 때문에 남성들이 추구하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충족시키는 인물이었다.


그리하여 남녀모두에게 의미있는 재창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사임당은 여성들에게 욕망의 대상이면서도 반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남성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대변하며 세상의 여성들을 훈계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에서 그러하고, 또 여성들에게는 욕망의 대상 또는 롤모델로 삼고자 노력해봐도 과연 다다를 수가 없는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신사임당이 어떻게 남성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충족시키는 인물로 변모해왔는지,

그리고 왜 도저히 여성들이 그녀에게 다다를 수가 없는지,

신사임당의 진실에 가까운 모습을 찾고자 한다.


남성들이 원하는 현모양처의 모습을 하지않았던 신사임당의 진짜 모습을 대중들이 좀더 구체적으로 알길 바라며,

또한 출발점이 매우 다르기에 우리는 신사임당 같은 인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진실을 통해, 여성들이 신사임당으로부터 느끼는 부담감과 피로감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