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만 원권 인물로 신사임당이 거론되자 여성단체에서는 거센 반대 운동을 펼쳤다.
화폐 인물은 단순히 위인을 새겨 넣는 차원을 넘어 국가가 국민에게 공유하고 싶은 가치를 드러낸다.
화폐는 국민 모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으로 국가의 역사, 철학, 이상을 전파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폐 인물로서 세종대왕을 통해 민족 정체성과 함께 훈민정음이나 과학 발전이라는 문화 자긍심을 가지도록 했다. 이이, 이황과 같은 학자, 사상가를 통해서는 한국의 지혜와 교양 및 문화적 자산을 강조했다.
이처럼 화폐 인물이 주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5만 원권 인물로 신사임당이 선정되었을 때 많은 논란이 있었다.
2007년 여성단체는 신사임당을 5만 원 지폐 도안으로 선정하는 안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서명운동을 펼쳤다.
2007년 10월 15일 토론회에서 (사)문화미래 이프 이사 김신명숙은 “새 화폐에 들어갈 여성 인물은 어머니나 아내 이전에 개인의 고유한 삶을 산 주체적인 여성,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와 공동체에 관심을 갖는 여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어머니·아내만이 보편적 여성상으로 자리 잡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예술가 나혜석, 허난설헌,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제주도민을 구한 제주 기생 김만덕, 선덕대왕, 소서노 등 자아를 실현한 여성 인물이 많은데,
남편을 훌륭히 보필하고 자식들을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키우고 게다가 개인의 예술적 재능까지 펼친 인물이라는 근거로 신사임당을 지지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가부장제 하에서 이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한 주부는 “솔직히 신사임당의 아들이 율곡이 아니라 망나니였으면 아무리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인정을 받거나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어요?
가뜩이나 아이들 성적표가 엄마 성적표이고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는 게 엄마의 평생 숙원 사업인데 신사임당을 매일 보는 지폐에 담는다는 건 자식 사교육 잘 시켜 명문대 보내라는 소리 아닌가요?”라며
교육열을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신사임당 담론이 여성부에서 불편한 이유는 남성들이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여성 인물이 신사임당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사임당이 여성 인물로는 ‘유일하게’ 화폐의 인물이 될 경우, 이는 남성 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른 남녀의 성별 역할을 정당화하고 공고히 하는 데 다시 기여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한국은행에서는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을 높이고,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며, 문화를 중시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자녀의 재능을 살린 교육적 성취를 통하여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하며, 신사임당을 5만 원권 인물로 최종 선정했다.
1504년에 태어나 1551년에 세상을 떠난, 48세의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았던 신사임당은 살아생전보다 더 유명하게 사후 500여 년을 보냈다.
하지만 위인이라 불리는 인물 중 신사임당만큼 그 실체와 거리가 먼 인물도 없을 것이다. 5세기에 걸친 신사임당 담론의 역사는 신사임당의 실체가 아닌 이미지에 의해 펼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생전 화가로 기록되었던 신사임당은, 조선 후기, 1900년대 이후, 새마을 운동기에 이르는 동안 점차 ‘현모양처’로 변모하며 여성 교육에 활용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신사임당 담론은 더 이상 현대의 여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신사임당이 정말로 ‘현모양처’가 아닐뿐더러, 그러한 신사임당의 이미지가 남성 위주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제 신사임당은 여성을 억압하는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로써 현대 여성들의 롤모델로서의 기능을 다한 듯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2007년 5만 원 고액권의 인물로 신사임당이 거론되었고, 결국 화폐 인물로는 ‘유일한 여성 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어쩌면 신사임당을 제대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그녀는 ‘예술가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훌륭한 예술가에 더해서 가족의 성공까지 이끈,
자신의 삶에서 주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여러 일을 수행해내는, 더욱 강력한 슈퍼우먼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현대의 이상적인 여성상은 단순 ‘현모양처’가 아닌,
‘자신의 일에서도 가정일에서도 모두 성공적인’ 여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