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이 5만 원권 화폐의 인물이 될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게 유명해지게 된 것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국가영웅화 사업에서부터이다.
사실상 그 이전까지는 허난설헌, 황진이, 논개 등 여러 역사적 여성 인물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신사임당은 국가 주도의 민족 영웅화 작업에서 한국의 대표 여성 인물로 기념되며, 1970년대 들어 사임당 기념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때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전형(이제까지 신사임당 담론에서 가장 주체성이 결여되고 유교적 전통에 갇혀있는 여성상)으로 자리잡는다.
해방 후 한국사회의 과제는 나라의 재건이었다. 여성의 역할 역시 국가 중흥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었다. 또한 시대 흐름과 경제 여건 상 여성의 사회활동도 불가피했던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여성에게 요구되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성실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이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불가피하던 시대였기에 여성의 사회 활동을 허용해야 했지만,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가정일이라고 세뇌되었다.
여성이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한 뒤 사회활동도 하기를 바랬던 남성 지배층은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현모양처, 신사임당을 내세웠다.
박정희 대통은 한 연설에서 "여성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남녀 평등에 이르는 길"이라고도 말했다.
이는 신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에도, 서인노론학파에 의해 현모로 왜곡되었던 18세기에도, 재능과 예술성이 부각되었던 1900년대에도, 심지어 남편을 현명하게 계도했다고 표현되었던 1930년대에도 보지 못한,
순종적인 열녀효부, 착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성실히 하는 여성으로,
그동안 신사임당의 모습 가운데 가장 주체성이 결여된 채 유교적 전통에 갇혀있는 인물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1970년대 신사임당은 국가만의 산물이 아니었다.
사임당상을 제정한 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 김활란 박사는 신사임당을 초여인, 슈퍼우먼으로 형상화했다.
집안 살림, 자녀 교육, 시부모 봉양, 친정 부모 효도, 학문과 예술, 남편을 출세시키는 내조, 이 모든 것을 잘 해내는,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초여인, 슈퍼우먼의 모습이다.
살아생전 산수화와 포도그림 화가였던 신사임당이 현모를 거쳐, 현모양처로, 또 초여인과 슈퍼우먼에 이르기까지,
500여년의 시간동안 그녀의 실제와는 상관없이 당대 지배층의 요구에 따라 그 모습이 변화해왔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는 그녀의 진실보다 그녀의 이미지에 의해, 그녀를 평가하고 그녀에 대해 반감 또는 부러움을 가지고 있다.
이제 유일한 화폐 속 여성 인물까지 된 신사임당에 대해
조금더 진실에 가까운 모습을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